만화나 영화를 보다 보면, 스파이가 적에게 붙잡혔을 때 빠른 자결을 하기 위해 치아에 독극물을 넣고 다닌다거나, 반대로 붙잡은 스파이가 자결하지 못하게 재갈을 물린다거나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저는 이런 장면들이 인간의 살고자 하는 본능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고도로 훈련된, 의지가 강한 스파이라도 스스로 숨을 참아서 죽는 건 어렵다는 얘기니까요.
이처럼 사람의 본능을, 특히 살고자 하는 본능을 이긴다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살을 뺀다고 한 끼 굶는 것도 쉽지 않은데,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러서도 음식을 참아낼 수 있을까요? 오늘 소개할 과학자들은 음식이 가득한 곳에서 오직 이타심으로 그 음식들을 참아내며 굶어 죽기를 선택했습니다.
이야기는 한 농학자의 집념에서 시작합니다. 니콜라이 바빌로프(1887-1943)는 러시아의 식물학자이자 유전학자였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가뭄, 병충해, 혹한으로 작물이 초토화되는 것을 목격하며 자랐습니다. 그 경험이 그에게 하나의 꿈을 심었습니다. 세계 각지의 종자를 모아두면, 어떤 재앙이 닥치더라도 인류의 식량을 되살릴 수 있지 않을까?
바빌로프는 115차례의 탐험을 통해 64개국에서 약 250,000점의 식물 샘플을 수집했습니다. 그리고 1920년 레닌그라드 응용식물학국의 국장이 되어 이 컬렉션을 세계 최초이자 최대의 종자은행으로 발전시킵니다. 시각에 따라선 이 세상의 어떠한 보물창고, 박물관, 아카이브보다도 중요한 곳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바빌로프의 운명은 비극적이었습니다. 트로핌 리센코라는 인물이 멘델 유전학을 부정하는 사이비 이론을 내세워 스탈린의 지지를 얻었고, 정통 유전학자들을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빌로프는 1940년, 우크라이나에서 종자를 수집하던 중 간첩 혐의로 체포됩니다. 11개월간 심문이 이어졌고, 때로는 하루 12시간씩 진행됐습니다.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20년형으로 감형되었지만, 감옥에서 동료 수감자들에게 식물학 강의를 하며 버티던 그는 1943년 1월, 사라토프 감옥에서 영양실조로 사망합니다. 세계 최대의 종자은행을 만든 사람이, 자신은 굶주림 속에서 생을 마감한 것입니다. 리센코 사건으로 3,000명 이상의 정통 생물학자가 해임되거나 투옥됐습니다.
바빌로프가 감옥에서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941년, 그가 평생을 바쳐 일군 종자은행이 있는 레닌그라드에 재앙이 닥칩니다. 독일군이 도시를 완전히 포위한 것입니다. 레닌그라드 공방전은 1941년 9월부터 1944년 1월까지, 무려 872일간 이어졌습니다.
포위된 도시에서 약 70만 명이 아사했고, 총 사망자는 약 150만 명에 달했습니다. 1인당 하루 빵 배급량은 125그램에 불과했는데, 그마저도 절반 이상이 톱밥 같은 비식용 혼합물이었습니다. 가장 참혹했던 1942년 1~2월에는 매달 10만 명이 사망했습니다. 주민들은 립스틱, 가죽 모자, 털코트까지 먹었고, 식인 행위로 체포된 사람도 약 2,000명에 달했습니다. 기온은 영하 30도까지 떨어졌습니다.
이 지옥 같은 도시 한가운데에, 바빌로프의 종자은행이 있었습니다. 약 250,000점의 종자, 뿌리, 열매 샘플. 120톤 규모의 종자와 견과류, 6,000 품종의 감자. 그중 약 40,000 품종이 식용 가능한 작물이었습니다.
독일군이 마지막 철도를 차단하면서 종자를 대피시키려던 계획은 무산되었습니다. 약 50명의 식물학자가 남아 종자를 지키기로 결심합니다. 그들은 종자를 박스에 담아 지하실로 옮기고, 교대로 24시간 감시했습니다. 독일군의 소이탄, 영하의 추위, 그리고 밤새 금속 막대로 쫓아내야 하는 쥐떼. 하지만 가장 큰 적은 자기 자신의 배고픔이었습니다.
히틀러 역시 이 종자의 가치를 알고 있었습니다. 세계 식량 공급을 통제하는 것이 인구 통제의 열쇠라 판단한 나치는 SS 대원이 이끄는 특수부대를 보내 소련 점령지의 농업 연구소를 약탈했고, 제2차 세계대전 중 수만 점의 식물 샘플이 파괴되거나 탈취당했습니다.
과학자들은 이 모든 위협 속에서 종자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최소 9명이 아사했습니다. 땅콩 전문가 알렉산드르 시추킨은 1942년 1월 자신의 책상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그의 땅콩 샘플은 온전했습니다. 쌀 연구자 드미트리 이바노프는 수천 포대의 쌀에 둘러싸인 채 굶어 죽었습니다. 귀리 컬렉션 관리자 릴리야 로디나, 약용식물 전문가 게오르기 크리예르 역시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굶주림 속에서도 어떻게 한 톨의 종자도 먹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생존자 중 한 명인 감자 전문가 블라디미르 레흐노비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었고, 일어서서 옷을 입는 것도 힘들었다. 하지만 정신만 차리면 종자를 지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들에게 종자는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미래였습니다. 자신이 죽더라도, 이 종자들이 살아남으면 언젠가 수백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바빌로프의 종자은행은 현재 VIR(바빌로프 전러시아 식물유전자원연구소)이라는 이름으로 32만 점 이상의 유전자원을 보유한 세계 최대 규모의 종자은행 중 하나로 이어지고 있으며, 매년 1,000~3,000점의 새로운 샘플이 추가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 시대에, 이 종자들의 가치는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바빌로프는 1920~30년대에 스칸디나비아를 방문하며 종자 보존의 중요성을 역설했는데, 그 영향은 훗날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 지하의 국제종자저장고, 이른바 '최후의 날 저장고'로까지 이어졌습니다. 현재 VIR의 종자 일부도 이곳에 기탁되어 있습니다. FAO는 20세기 동안 세계 작물 유전 다양성의 75%가 소실되었다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레닌그라드의 과학자들이 목숨 걸고 지킨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이 숫자가 말해 줍니다.
살고자 하는 본능 앞에서, 그들은 더 먼 미래를 선택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식탁 위에 놓인 다양한 작물들 속에, 어쩌면 그들이 지켜낸 종자의 후손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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