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생 인류가 네안데르탈인과 혼혈이라는 얘기를 전해 드린 적이 있는데요, 수만 년 전이 아니라 고작 100년 전에, 현생 인류의 새로운 교배종을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소련의 생물학자 일리야 이바노프(Ilya Ivanovich Ivanov) 박사는 만화 속 매드 사이언티스트나 할 법한 발상을 했습니다. 그는 인간과 침팬지의 교배종을 만들고자 했으며, 현재 이 실험은 '휴먼지(Humanzee)' 프로젝트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바노프는 20세기 초 동물의 인공 수정 분야에서 선구적인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의 방법으로 한 마리의 종마가 500마리의 암말을 임신시킬 수 있었는데, 이는 자연 수정의 20배가 넘는 효율성이었습니다. 이 성과로 그는 과학계의 큰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바노프의 야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적 유사성에 주목하여, 두 종의 교배종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현대 과학은 인간(23쌍의 염색체)과 침팬지를 비롯한 다른 유인원(24쌍의 염색체)의 염색체 수 차이로 인해 이것이 불가능함을 알고 있지만, 이바노프가 연구하던 1920년대에는 아직 인간의 염색체 수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바노프 박사는 아프리카의 프랑스령 기니에 있는 킨디아 영장류 센터에서 침팬지의 난자에 인간의 정자를 주입하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당연히 이 실험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방법을 바꿔 침팬지의 정자를 인간의 난자에 주입하고자 했는데, 여성들이 동의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건강검진 명목으로 비밀리에 난자를 취득하려 했습니다. 그의 이 계획은 프랑스 총독에 의해 저지됐고, 고국인 소련에서 실험을 이어가게 됩니다.
어째서인지 소련에서는 이 실험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었고, 5명 이상의 여성지원자도 있었다고 합니다. 소련이 이 실험을 밀어주었던 이유로는 여러 가설이 있습니다. 공산주의의 경쟁자인 종교를 무너뜨리기 위해 과학을 지원해주었다는 가설, 이 실험이 회춘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는 가설, 휴먼지를 군사, 노동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 가능할 거라 계산했다는 가설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실험은 역시 실패했고, 이바노프는 후에 정치적인 이유로 카자흐스탄으로 추방당해 2년 만에 뇌졸중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과학은 어떤 일을 해도 되고 어떤 일을 하면 안 되는 걸까요? 휴먼지 프로젝트는 그런 질문을 던져 줍니다. 만약 인간과 침팬지의 교배가 유전학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더라면 어땠을까요? '혹성탈출' 시리즈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가 어쩌면 먼 이야기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같이 볼 링크
페퍼노트, '탈모와 비만을 남기고 떠난 네안데르탈인'
New Scientist, 'Blasts from the past: The Soviet ape-man scandal'
위키피디아 영문, 'Humanzee'
유튜브 채널 '당신이 몰랐던 이야기', '인간과 침팬지를 이종교배한 미친 과학자 이바노프의 휴먼지 프로젝트'
나무위키, '누가 이런 끔찍한 혼종을 만들어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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