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늘보, 나방, 녹조류의 기묘한 공생관계

나무늘보가 그렇게 게을러도 잘먹고 잘사는 이유

2024.08.10 | 조회 8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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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노트

당신의 삶에 양념 같은 지식을! '그런 건 어떻게 알았어?' 할 때 '그런 것'들을 전해 드립니다.

'공생'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동물은 역시 악어와 악어새일 텐데요, 실제로는 악어의 이빨 사이를 청소해주는 새 같은 건 없다고 합니다. 아래 사진에서 보이듯 악어의 이빨은 모두 뾰족한 모양인데다 인간처럼 빽빽하지 않아서 딱히 이빨 사이에 낄 것도 없습니다. 설령 이빨이 썩는다고 하더라도 악어는 이빨이 계속해서 새로 나서, 일생동안 수천 개의 이빨을 간다고 합니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대부분의 동물들이 양치질 없이 살아가는데 유독 악어만 입 안에 날아든 새를 먹지 않고 칫솔로 쓴다는 게 이상합니다.

양치요? 제가요?
양치요? 제가요?

악어와 악어새에 비해 알려지지 않았으면서 훨씬 재밌는 공생 관계가 있는데요, 나무늘보, 나방, 녹조류 간의 기묘한 공생관계입니다. 나무늘보가 어떻게 멸종되지 않았을까 궁금했던 적 없으신가요? 아프리카코끼리보다 거대한 몸집을 자랑했다는 땅늘보도 멸종했는데 1분에 4m를 겨우 움직이는 나무늘보는 생존했습니다. 그 비결 중 하나는 나방, 녹조류와의 공생 관계일 수 있습니다.

나무늘보 중에서도 특히 느린 세발가락나무늘보는 매주 나무에서 내려와 바닥에 똥을 누고 그 자리를 덮습니다. 그냥 나무에 매달린 채 싸면 될 텐데 굳이 내려와서 똥을 누는 건 언뜻 생각하기에 미친 짓입니다. 이 행동으로 나무늘보는 하루에 쓸 수 있는 에너지의 8%를 소모합니다. 게다가 이 느린 짐승은 천적으로부터 도망도 잘 못 치기 때문에, 나무늘보의 사망 중 50%는 땅 위에서 일어납니다. 매주 화장실에 목숨을 걸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이상한 행동의 원인은 바로 나방에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나무늘보의 털에는 수많은 나방들이 살고 있습니다. Cryptoses choloepi라고 하는 이 나방은 오직 나무늘보의 털에서만 발견됩니다. 나무늘보가 땅에 내려와 똥을 눌 때, 나무늘보의 털에 살고 있는 암컷 나방은 나무늘보에서 내려와 나무늘보의 똥에 알을 낳습니다. 유충은 나무늘보의 똥에서 자라고 성충이 되면 나무늘보의 털에 다시 자리를 잡습니다. 

나방들은 나무늘보의 똥으로부터 양분을 얻고, 나무늘보의 몸으로부터 은신처를 얻는 등 나무늘보를 중심으로 한 생태계에서 이득을 얻습니다. 그렇다면 이 과정에서 나무늘보가 얻는 이득은 뭘까요? 나방이 세대를 거듭해 나무늘보의 몸 속에서 살아가면서 일으키는 생체 활동들로 인해, 나무늘보의 털에는 질소가 축적됩니다. 질소는 나무늘보의 털에서만 자라는 특이한 녹조류, trichophilus welckeri를 성장시킵니다. 녹조류로 뒤덮인 나무늘보는 보호색을 얻습니다. 그리고 나무늘보는 이 녹조류를 먹기도 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2014년 조나단 파울리의 연구에서 이 녹조류가 나무늘보의 위장 안에서도 발견된 것입니다.

나무늘보의 털에 살고 있는 나방들. 녹조류가 자라는 부분의 털이 녹색으로 보입니다.
나무늘보의 털에 살고 있는 나방들. 녹조류가 자라는 부분의 털이 녹색으로 보입니다.

정리하면, 나무늘보는 목숨을 걸고 똥을 누어서 나방을 키우고, 그 나방들은 나무늘보의 몸에 녹조류를 키워냅니다. 그렇게 나무늘보는 자기의 몸을 간식창고로 만듭니다. 힘들게 사냥을 하지 않아도, 때때로 먹을 게 부족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나무늘보는 몸에 항상 비상식량을 두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나무늘보의 생존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직장인으로서 제 꿈은 직장을 다니지 않아도 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크게 일하지 않아도 알아서 수익을 내는 사업들이 있어서 더 이상 일할 필요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나무늘보야말로 일일이 어려운 사냥을 하지 않아도 자기 등에서 떼어 먹으면 되는 간식 농장을 차린 셈이니, 제 롤모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똥 눌 때마다 목숨 걸어야 한다는 점만 빼면 말입니다.


더 알아보기

나무위키, 이집트물떼새
Texas Parks & Wildlife Department, Gator Facts
유튜브 Zattwo ZVS 채널, 나무늘보가 멸종하지 않은 이유 (Feat.이끼 그리고 나방)
Jonathan N. Pauli, Jorge E. Mendoza, Shawn A. Steffan, Cayelan C. Carey, Paul J. Weimer and M. Zachariah Peery, A syndrome of mutualism reinforces the lifestyle of a sloth
MONGABAY, Sloths, moths and algae: a surprising partnership sheds light on a mystery
INDEPENDENT, Sloth mystery solved: How moths and algae shape this unusual creature's toilet habits
오마이뉴스, 나무늘보 털에서 사는 120마리의 나방을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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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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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네

    1
    about 1 month 전

    아우 재밌어!

    ㄴ 답글
  • 골빈지노

    1
    23 days 전

    늘 감사합니다.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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