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을 만들려다 의학계에 이름을 남긴 대학원생

브레이킹 배드, 현실에선 가능한 걸까요?

2026.08.28 | 조회 472 |
2
|

'브레이킹 배드'라는 드라마 보셨나요? 걸작으로 자주 언급되는 드라마인데, 저는 원체 드라마를 잘 못 보는 사람이라 종영한 지 13년째가 되는 올해에서야 다 보았습니다. 이 드라마는 뛰어난 화학자이지만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월터 화이트가 암에 걸리고 난 뒤, 가족들에게 돈이라도 잔뜩 남겨주고자 전문적인 화학 지식을 이용해 마약을 제조한다는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궁핍한 화학자가 자신의 지식을 활용해 마약 제조를 시작하다, '브레이킹 배드'
궁핍한 화학자가 자신의 지식을 활용해 마약 제조를 시작하다, '브레이킹 배드'

이 작품을 보면서 들었던 의문이 있었습니다. 마약이라는 게, 뛰어난 화학자가 만들면 퀄리티가 달라질 정도로 제조가 어려운 물건인 걸까요? 화학과 학사가 만든 마약이랑 박사가 만든 마약은 그렇게까지 차이가 날까요? 이 의문에 대해 엉뚱하게도 현실에서 답이 될 만한 사건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1976년, 미국 메릴랜드의 화학 전공 대학원생 배리 키드스턴은 법의 빈틈을 발견합니다. 당시 법은 금지 약물을 하나하나 목록에 올리는 방식으로 마약을 규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만약 금지된 물질의 구조를 살짝 비틀어 목록에 없는 물질을 만든다면, 효과는 내면서도 법망을 피해 갈 수 있었습니다.

그는 MPPP라는 물질에 주목했습니다. 1947년에 한 제약회사 연구진이 모르핀보다 덜 중독적인 진통제를 찾다가 만든 물질인데, 기존 약보다 나을 게 없어 상용화 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논문은 남아 있었습니다. 키드스턴은 이걸 직접 만들어 몇 달간 사용했습니다.

다만 키드스턴은 실수를 하고 맙니다. 마지막 단계에서 반응 조건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약에는 원래 없어야 할 부산물이 섞여 들어갔습니다(브레이킹 배드에서도 월터 화이트가 아닌 인물이 마약을 만들면 이런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그 약을 주사하고 사흘이 지나자 그의 몸이 굳기 시작했습니다. 말이 나오지 않고, 표정이 사라지고, 손이 떨리고, 움직임이 멎었습니다.

증상으로만 보면 파킨슨병 같았는데, 파킨슨병은 노인들이 주로 걸리는 병으로 23살 청년에게 발병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습니다. 이에 국립정신건강연구소 연구진이 조사에 나섰습니다. 그가 쓰던 유리 기구에 남은 찌꺼기를 분석하니, MPPP 말고도 MPTP라는 부산물이 함께 검출되었습니다. 매우 의심스러웠는데, 막상 이걸 쥐에 주입해 보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햄스터도, 기니피그도 멀쩡했습니다.

키드스턴은 발병 18개월 만에 사망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증거를 찾지 못한 연구진은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사건을 덮었습니다.

그로부터 6년 뒤, 캘리포니아에서 키드스턴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이 속출합니다. 이들에게서 한 가지 공통점이 발견되는데, 신종 합성 헤로인을 사용했다는 점이었습니다. 경찰 단속과 딜러들의 협조로 시료를 확보해 분석하자 답이 나왔습니다. MPTP가 바로 원인이었습니다. 더불어 6년 전에 실패했던 이유도 함께 밝혀졌습니다. MPTP는 영장류에게는 파킨슨병을 일으키지만 설치류에게는 훨씬 덜 취약했고 특히 쥐는 거의 면역이었던 것입니다.

키드스턴은 월터 화이트가 되는 데 실패했습니다. 대신 역설적으로 의학계에 유산을 남겼습니다. 그 전까지 파킨슨병 연구는 매우 어려웠습니다. 치료법을 시험해 보기는커녕, 병을 재현해 볼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MPTP가 그 문을 열었습니다. 원숭이에게 MPTP를 주입하면 사람과 똑같은 파킨슨병이 만들어졌습니다. 그 덕분에 병의 기전과 치료법을 연구할 수 있었습니다.

키드스턴의 죽음은 안타깝고, 어쩌면 어리석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쨌든 그는 한 몸 바쳐 의학계에 이바지한 셈이 되었습니다.


funfact.wiki를 소개합니다.

funfact.wiki 는 페퍼노트를 위키의 형태, 숏폼의 형태로 만든 새로운 웹사이트입니다. 그동안 페퍼노트를 재밌게 읽으셨던 분들이라면 좋아하실 펀팩트들을 300자 이내의 짧은 카드로 공유하는 위키 사이트입니다. funfact.wiki 에서 새로운 재밌는 지식들을 많이 가져가시고 또 나눠주시길 바라겠습니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페퍼노트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2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 Hyungnam의 프로필 이미지

    Hyungnam

    0
    13분 전

    뇌 혈관-뇌 장벽(BBB)을 통과한 뒤, 성상교세포에서 MAO-B 효소에 의해 독성 대사물질인 MPP⁺로 변환됩니다. 이후 도파민 신경세포에 선택적으로 흡수되어 미토콘드리아의 전자전달계(복합체 I)를 억제하고 세포 사멸을 유도합니다.

    ㄴ 답글
  • Hyungnam의 프로필 이미지

    Hyungnam

    0
    8분 전

    전문적인 화학 지식과 숙련된 기술을 활용하면 제조된 마약(불법 약물)의 순도, 부작용, 그리고 합성 효율성 면에서 격차가 매우 큽니다. 비전문가가 음성적인 방법으로 만든 마약과 전문 화학 물질 합성 기술이 적용된 마약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발생합니다. 1. 극단적인 순도(Purity)의 차이 비전문가(야매 제조): 불완전한 화학 반응으로 인해 목적 물질 외에 수많은 유독성 부산물과 불순물이 그대로 남습니다. 길거리에서 유통되는 마약의 순도가 낮고 위험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전문 전문가: 정확한 화학 양론(Stoichiometry) 계산, 정밀한 온도·압력 제어, 그리고 결정화(Crystallization)나 크로마토그래피 같은 고도화된 정제 공정을 사용해 불순물을 완벽히 제거한 고순도 물질을 만들어냅니다. 2. 입체 이성질체(Isomer)의 분리 많은 약물은 분자 구조는 같지만 거울에 비친 것처럼 방향만 반대인 두 가지 형태(광학 이성질체)로 존재합니다. 보통 한쪽은 강력한 효과를 내는 반면, 다른 쪽은 아무 효과가 없거나 치명적인 독성을 가집니다. 전문적인 지식이 있으면 원하는 효과를 내는 특정 이성질체만 선택적으로 합성(비대칭 합성)하거나 분리해 내어, 적은 양으로도 극단적인 효과를 내고 부작용을 줄인 '고품질' 약물을 만들 수 있습니다. 3. 원료 수급 및 대체 경로 설계 정부가 마약 차단을 위해 주요 원료(전구체)의 유통을 엄격히 통제하면 비전문가들은 제조를 포기하거나 조잡한 대체품을 씁니다. 반면, 고도의 화학 지식을 갖춘 사람은 통제되지 않은 일반 화학 물질로부터 시작해 원하는 전구체를 스스로 합성해내는 새로운 우회 경로(Synthetic Route)를 설계할 수 있습니다.

    ㄴ 답글

다른 뉴스레터

© 2026 페퍼노트

당신의 삶에 양념 같은 지식을! '그런 건 어떻게 알았어?' 할 때 '그런 것'들을 전해 드립니다.

뉴스레터 문의pppr.note@gmail.com

메일리 로고

도움말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채팅으로 문의하기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대표번호: 070-8027-1409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송파구 위례광장로 199, 5층 501-2-31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