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구꽃 살인사건

화학 지식을 안 좋은 곳에 활용한 비극적 사례

2023.10.07 | 조회 7.39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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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독제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독으로 독을 없앤다는 뜻으로, '이이제이'와 비슷한 말입니다. 비유적인 표현이지만 현실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있습니다. 

복어는 독을 품고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독은 '테트로도톡신'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데, 이름 자체가 '네 개의 이빨을 가진 녀석(=복어)의 독'이라는 뜻입니다. 복어가 친숙한 동물이라 이 독도 만만하게 생각할 수 있는데 맹독입니다. 독 중에서 손에 꼽히게 유명한 데다 구하기도 쉬운 독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해독제가 없습니다. 테트로도톡신은 신경의 나트륨 채널의 작용을 방해하여 일정량 섭취할 경우 모든 근육이 마비 되는데, 호흡도 결국 근육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숨을 못 쉬며 죽게 됩니다. 

한편, 전에 독을 왜 보라색으로 표현하는지 설명드렸던 메일에서 '아코니틴'이라는 독을 품은 투구꽃을 소개드렸었습니다. 이 독 또한 사약의 재료가 되거나 각종 암살에 쓰이는 등 역사가 깊고 널리 쓰인 맹독입니다. 아코니틴은 신경의 나트륨 채널을 활성화시켜 일정량 섭취할 경우 부정맥 등을 유발하여 끝내 심정지로 죽게 됩니다.

여기서 묘한 부분을 발견하셨나요? 복어 독은 신경의 나트륨 채널을 방해하고 투구꽃 독은 신경의 나트륨 채널을 활성화합니다. 즉, 두 독은 사람을 죽음으로 끌고 가는 맹독이지만 작동하는 원리가 서로 반대입니다. 따라서 두 독을 함께 섭취하면 두 독이 서로를 방해하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복어 독을 먹었을 때 투구꽃 독을 먹이면 살 수 있다거나, 그 반대인 것은 아닙니다. 죽음을 조금 늦출 수야 있겠지만 둘 다 워낙 맹독이기 때문에 결국엔 죽음에 이를 수 있습니다. 절대로 어떤 실험도 직접 해보지 마세요.

문제는 이 두 독이 서로를 방해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 이 지식을 범죄에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1986년 일본에서 일어난 '투구꽃 살인사건' 이야기입니다. 범인 카미야 치카라는 사망 보험금을 노리고 결혼을 하여 아내를 독살했습니다. 경찰도 카미야 치카라를 의심하긴 했습니다. 특히 그가 직접 만든 영양제를 아내에게 주곤 했다는 사실이 의심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확실해 보이는 알리바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아내가 사망하기 3시간 전에 이미 아내와 헤어졌던 것입니다. 어떤 독극물을 어떤 캡슐로 포장하더라도 3시간이면 위산에 캡슐이 녹기 때문에 약을 먹이고 3시간 뒤에 사람이 죽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나중에 밝혀진 그의 방법이 바로 복어 독과 투구꽃 독을 함께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두 독이 섞여 서로를 방해하는 바람에 아내는 3시간이나 지난 후에야 사망했던 것입니다. 자세한 사건의 전개는 제 설명보다 이미 나무위키와 유튜브에서 잘 찾아볼 수 있어서 링크를 거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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