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과 장르를 독특하게 조합하면 재밌는 작품이 탄생할 때가 있습니다. 조선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는 좀비물을 시도한 '킹덤', 사이버펑크를 조합해 본 '산나비', 페퍼노트에서 소개한 적이 있는 웨슬리 스나입스를 모델로 한 홍길동전 '은탄' 등의 작품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에 마치 이런 작품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 외계인을 연상시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1470년도에 해당하는 성종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백정 박석로라는 인물이 "보성군 부잣집에 귀신이 있는데 사람 모습을 했지만 키가 한 길(2.4 m 또는 3 m)이 넘고 몽두(죄인의 얼굴을 싸서 가리는 물건)만 쓰고 하늘로부터 내려왔다고 한다"라는 말을 퍼뜨렸다고 합니다. "그 부잣집 사람이 밥을 먹을 때마다 한 말의 쌀로 밥을 지어 먹였더니 귀신이 말하기를 '나의 아우도 곧 내려오는데 오면 큰 풍년이 들 것이다'라고 말했다"라는 부연 설명이 있습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왔다는 점과 얼굴에만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는 점, 키가 비정상적으로 크다는 점에서 외계인이 아닐까 상상케 만드는 기록입니다. 외계인이 나타나도 일단 밥은 푸짐하게 먹이는 게 참 조선 사람들답습니다.
그래서 이 외계인에 대한 조선의 국가적인 조사가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괴력난신으로 대중을 꾀는 행위에는 얄짤 없었던 조선은 박석로가 요사스러운 말로 사람들을 현혹한다 하여 장 100 대를 치고 유배를 보냈습니다.
1609년도에 해당하는 광해군일기에는 꼭 UFO처럼 들리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 기록은 앞서 소개 드린 것과 다르게 어중이떠중이가 퍼뜨린 유언비어가 아니라 강원 감사가 보고를 올린 내용으로 강원도 일대에서 집중적으로 관측된 현상으로 보입니다. 직접 인용한 간성군 외에도 원주목, 강릉부, 춘천부 등에서도 비슷한 관측이 이뤄졌습니다. 현대의 학자들은 아무래도 대낮에 유성이 폭발한 것을 강원도 곳곳에서 관측한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습니다.
다만 양양부에서의 관측은 조금 특이합니다.
비행접시 형태의, 전형적인 우리가 생각하는 UFO의 모습입니다. 이 관측이 믿을 만한지, 이것이 정말 비행접시일지 등에 대한 해석과 상상은 여러분 각각에게 맡기겠습니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박지은 작가도 바로 이 기록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데, 여러분께도 어떤 재미난 영감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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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7권, 성종 1년 8월 3일 무신 4번째기사
광해군일기[정초본] 20권, 광해 1년 9월 25일 계묘 3번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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