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철학

20세기 중반, 미국 철학의 예언자들 — 2026년 1월의 신간 소식

1월에 발간된, 읽어볼 만한 철학 신간들을 구독자님께 소개합니다!

2026.02.04 | 조회 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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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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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중반 미국 철학을 가장 잘 대표할 수 있는 흐름은 이른바 ‘분석철학’이라고 하는 전통일 것입니다. 이 전통에 속하는 철학자들은 전형적으로, 헤겔과 하이데거로 대표된다고 주장되는, 심오하고 모호한 철학의 방식을 배격하고, 우리의 언어적 삶을 엄밀하게 조직화하는 데에 몰두하곤 합니다. 오늘날의 미국 철학, 나아가 영어권 철학(anglophone philosophy) 일반은 바로 이 분석철학을 뿌리로 두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철학사나 문학 연구의 경우를 예외로 두면 말이죠.

이 전형적인 분석철학의 면모는 때로 독자들을 당황시키곤 합니다. 철학에 대한 통상적 기대와 반대로, 이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 세계가 진정으로 어떤 것인지 따위에 대해 철학자에게 물어서는 안 된다는 답을 주기 떄문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우리가 알아낼 수 없는 문제에 해당하고, 이 세계가 진정으로 어떤 것인지는 역시나 알아낼 수 없는 것이거나 기껏해야 자연과학자들의 보고를 통해 알면 그만인 문제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모든 오늘날의 영어권 철학자들이 전형적인 분석철학자의 면모를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분석철학이 그 안티테제로서 발생한 계기인 헤겔이나 하이데거를 다시 포용할 수 있으며, 이로써 언어 바깥의 실재에 문제에 대해서도 충분히 답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몇몇 가치들을 윤리적으로 근본적이라고 간주하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관한 근본적인 지침을 발견할 수 있길 기대합니다. 주류 분석철학의 시선으로 보자면 이는 일종의 ‘일탈적’ 철학들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오늘 소개할, 2026년 1월에 발간된 두 책은 이러한 일탈들의 시조격이라 할 만한 작품들입니다. 셀라스의 《경험론과 마음 철학》은 분석철학과 미묘한 관계를 맺고 있는 철학 그룹인 ‘피츠버그 학파’의 출사표와 같은 저작이고, 마이어로프의 《돌봄의 철학》은 ‘돌봄 윤리’라는 이름 아래 형성되고 있는 독특한 규범 윤리학 전통의 중심 주제인 ‘돌봄’에 주목한 첫 번째 철학서입니다. 두 책은 이들과 관련되는 이후의 철학 운동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발표되었다는 점에서, 일종의 ‘철학 예언서’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현대 영미 철학의 한 흐름을 만들어낸 철학계의 이단아

《경험론과 마음 철학》

윌프리드 셀러스 저·정문열 역. 도서출판 b. 26,000원. 
윌프리드 셀러스 저·정문열 역. 도서출판 b. 26,000원. 

윌프리스 셀라스는 피츠버그 학파의 대표적 인물인 로버트 브랜덤과 존 맥도웰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인물입니다. 그가 제안한 “이유들의 논리적 공간”(the logical space of reasons) 개념은 언어의 의미와 사고의 대상에 관한 피츠버그 철학자들의 관점을 논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경험론과 마음 철학》은 바로 이 이유들의 논리적 공간 개념이 처음으로 소개되는 저작입니다. 로티의 서문과 브랜덤의 해제를 제외하고 약 190 쪽 정도의 분량으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셀라스는 그가 ‘비정합적인 세 문장’(inconsistent triad)이라고 일컫는 경험론 철학의 세 논제 사이에 놓인 모순을 지적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시도합니다. 

셀라스의 문제 제기와 그에 대한 접근 방식은 한편으로는 아주 익숙한 분석철학자들의 스타일을 따릅니다. 언어적 문제에 관심갖고, 이를 논증적으로 해결하고자 시도하지요. 그러나 한편으로 그의 저술은 주류 분석철학자들의 저술과 매우 이질적이기도 합니다. 특히 그의 아주 과감하고, 때로는 지나치게 사변적인 것도 같은 논증 방식에서 그와 같은 이질적임을 느낍니다.

그의 독특하면서도 중요한 위치에도 불구하고 셀라스는 일부 철학 ‘매니아’들 사이에서만 회자되어 왔고, 로티 등 현대 실용주의자들의 저작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셀라스의 저작, 그것도 주저가 이렇게 번역되었다는 것은 매우 반가운 소식입니다.

다만 약간의 아쉬움은 있습니다. 철학 전공자의 번역이 아닌 탓에, 번역에 있어 철학계에서 통상적으로 취해지는 번역어가 사용되지 않은 부분이 더러 보입니다. 영어 원문에 대한 번역자의 충분한 이해에도 불구하고, 번역어 선택에 있어서 생기는 문제는 철학계 내부의 낱말 선택 방식에 익숙하지 않다면 피할 수 없는 문제이다보니, 국내 철학 전문가의 검수를 얻었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10년 일찍 돌봄 윤리를 예견하다

《돌봄의 철학》

밀턴 마이어로프 저·이수영 역. 민들레. 12,000원. 
밀턴 마이어로프 저·이수영 역. 민들레. 12,000원. 

셀라스가 ‘실제로’ 현대 영미 철학의 한 흐름을 만들어냈다면, 이쪽은 살짝 애매합니다. 밀턴 마이어로프의 1971년 저작, 《돌봄의 철학》(On Caring)은 ‘돌봄’에 대한 (적어도 현대 이후) 첫 번째 철학적 연구서로 언급됩니다. 돌봄이 본격적으로 철학적 화두가 된 계기인 ‘돌봄 윤리’가 캐롤 길리건(Carol Gilligan), 넬 나딩스(Nel Noddings)의 1980년대 저작들에 기초했다는 걸 생각해 보면, 마이어로프의 작업은 십 년 정도 앞서 ‘돌봄’을 앞세운 선도적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이어로프의 영향력이 실제로 어떠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돌봄 윤리가, 마이어로프에게도 많은 영향을 준 듯한, 실용주의 철학자 존 듀이의 철학 사상과 큰 연관을 맺는 듯 보이기는 하지만, 여기에서 마이어로프 내지는 그의 저작이 어떤 식으로건 영향을 주었다는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돌봄을 주제로 하는 많은 글들에서 마이어로프의 저작은 ‘언급은 되지만’ 거기에서 그치는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그 영향력과 별개로, 《돌봄의 철학》은 한 번 읽고 가기에 나쁘지 않은 책입니다. 원서로는 60여 쪽 밖에 되지 않고, 번역되어서도 150여 쪽에 그치는 짧은 분량의 저술에서 저자는 돌봄 개념에 관한 그의 이해를 제시하고, 인접 개념들과 돌봄이 어떤 관계를 맺는지에 관해 간략히 소개합니다. 논증하기보다는 자신의 견해를 담담히 풀어쓰는 데에 그친다는 점에서, 일견 그의 저술은 잠언같기도 합니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한국어판 서문〉입니다. 편집장 이름으로 쓰인 서문에서는 책에 대한 꼼꼼한 이해와 깊은 애정이 느껴집니다. 친절한 서문은, 민들레 출판사가 《돌봄의 철학》을 ‘단지 책 한 권’으로서가 아니라 공들여 낸 하나의 작품으로 낸 것이겠다는 생각을 들게 하기도 했습니다. 

 

방금 시작했던 것 같은 1월이 지나가고 어느새 2월입니다. 이 달을 보내면 겨울도 넘어가고 봄에 차츰 들어서겠네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음달의 〈이달의 철학〉에서 다시 만나요.


※ 모든 사진은 교보문고 책 정보 페이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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