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인사드리는 것 같네요. 김오늘입니다.
오늘은 고른 책 이야기 대신 책 고르는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저는 2021년 3월부터 지금까지 다섯 해, 일 년의 휴재 기간을 고려해도 네 해가 넘는 기간 동안 《오늘의 철학 뉴스레터》를 통해 신간 소개를 해 왔습니다. 어떤 달에는 소개할 책이 많아 두 번에 나누어 〈이달의 철학〉을 내보내기도 했고, 어떤 달에는 소재가 없다며 휴재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8월호처럼요).
이 지면에서 모든 신간이 소개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 달에 적어도 십여 권의, 많으면 수십 권의 철학 신간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 전부를 일일이 읽어볼 수도 없을 뿐더러, 설령 모든 신간을 살폈다고 해도 전부를 여러분께 소개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어떤 책들은 분명 읽을 가치가 있지만 (이런 책들을 소개하는 것이 애당초 〈이달의 철학〉의 목적이죠), 읽어보라고 권할 이유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책들도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비교적 단순한 전략이 통했습니다. 온라인으로 신간 현황을 살핍니다. 서점에 갑니다. 온라인으로 확인한 신간들을 찾습니다. 목차를 읽고, 목차가 괜찮아 보이면 책을 슥슥 훑으며 서술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역서인 경우) 번역이 잘 되어 있는지 확인합니다. 하는 김에 조판은 잘 되어 있는지, (학술서인 경우) 색인은 되어 있는지 함께 살핍니다. 끝!

그런데 싸늘합니다. ‘딸깍’이 날아와 꽂힙니다. 연초를 즈음해 이상한 책들이 서가에 잔뜩 놓이기 시작했습니다. 판박이인 표지, 심지어는 대놓고 AI 슬롭임을 드러내는 표지의 책들이, 세상 만사를 다 알려줄 것 같은 제목으로 신간 목록을 뒤덮기 시작했습니다. 초장에 걸러내면 된다고야 하지만, 노이즈의 절대수가 커질수록 정상 정보를 집어내기가 어려워지는 법입니다. 나는 혼자이고, 사람의 인지 능력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제부터 한정하자
퀴즈입니다. 지수는 매학기 여섯 과목을 수강하고 있었고, 그만큼이 자신이 한 학기에 감당 가능한 최대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한 과목의 수업 시수를 주당 3시간에서 6시간으로 올렸습니다. 다음 학기에 지수가 감당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과목을 수강하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정답: 세 과목만 듣는다. 처리 단위 당 감당해야 할 부담이 커진다면, 처리 대상의 수를 줄이는 것이 당연합니다.
마찬가지로, 서점에 이상한 책들이 너무 많이 쌓인다면 내가 검토할 책의 범위를 한정하면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한정하죠? ‘철학책’보다 하위의 범주가 있나요? 있습니다! 철학에는 하위 분야와 세부 주제들이 있으니, 우리는 철학책들을 그것이 다루는 분야나 주제에 따라 한정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모든 종류의 철학 서적을 읽고 이해할 수 없으니, 내가 읽고 대강의 요지를 파악할 수 있는 책으로 범위를 좁혀봅니다.
여기에서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아니, 책이라는 게 사람이 읽고 이해하라고 만든 것 아닌가? 내가 이해 못하는 책이라면 그게 이상한 거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셔도 상관이야 없습니다. 그 생각이 맞다고 해도, 내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책을 내가 살펴볼 책의 범위에서 배제하는 것은 여전히 합당한 전략이 됩니다. 아무튼, ‘이상한 책’을 배제하기 위한 빠른 방법이 되니까요.
물론 변명은 해 두어야겠습니다. 내가 읽고 이해 못하는 책이 잘못된 책인 것은 아닙니다. 가령, 내가 산수를 배우지 않았다면 산수로부터 특정한 물리 현상을 설명하는 책을 읽고 이해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산수를 배우지 않은 몇 사람을 고려해 그와 같은 책을 ‘이상한 책’으로 분류하거나, 나아가 책, 특히 교양서로 그와 같은 책을 내서는 안 되는 걸까요? 그렇지는 않겠죠. 산수의 사용이 필수적이라면, 설령 교양서라 하더라도 산수의 내용에서 시작해 그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제 연구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철학적 문제, 가령 ‘기계는 수학자를 대체할 수 있을까?’ 따위에 관해 소개하는 교양 서적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 책은 주제의 특성상 계산 가능성 이론이나 산술의 불완전성 정리 등을 소개해야 하고, 이를 읽고 이해하려면 기초 논리학의 공부가 선행되어야만 합니다. 내가 논리학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열심히 읽어도 이해가 어렵겠죠. 그렇다면 일단 신간을 스캔하는 단계에서는 이와 같은 부류의 책들을 배제해 보는 겁니다.
두 종류의 기초 다지기
그런데 두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 내가 갖고 있는 지식으로 이 주제의 책을 읽을 수 있을지 어떻게 알 수 있죠? 둘, 내가 정말 공부하고 싶은 주제가 있는데, 내가 갖고 있는 지식으로는 이 주제의 책을 이해할 수 없는 경우에는 어떻게 하나요? 그 답은… 별 거 없습니다. 공부를 해야죠. 철학책을 선별할 때이건 다른 분야의 책을 선별할 때이건 이치는 다르지 않은 법입니다.
먼저 다양한 자료를 가리지 않고 읽으며, ‘특정 철학자 집단에게만 특징적으로 사용되는 낱말’이 있는지 살펴보세요. 가령, ‘함축’(entailment), ‘반사실’(counterfactual), ‘수반’(supervenience) 등의 어휘는 이른바 ‘분석적’ 전통의 전문 어휘입니다. 반면 ‘탈존’, ‘지평’, ‘생명정치’ 등의 어휘가 사용되었다면, 이는 화자가 유럽의 철학 전통에 깊이 매여있는 사람임을 시사합니다.
어떤 분야의 경우, 여러 철학 전통의 어휘들이 뒤섞이기도 합니다. 가령, 예술철학자들은 분석적 전통에 속하는 단토나 비어즐리의 개념과 함께 유럽 전통에 해당하는 프랑크푸르트 학파나 실존주의의 어휘를 함께 사용합니다. 한편 현대 과학철학은 포퍼와 같은 초기 분석철학자들을 라투르 등의 유럽 이론가들과 함께 소개하기도 합니다.
주제와 어휘를 연관짓는 것이 중요한 까닭은, 특정 주제를 주로 다루는 분야에서 훈련받지 않은 철학자가 해당 주제를 다루는 경우가 있는 탓입니다. 가령, 분석적 전통에서 훈련 받은 철학자가 ‘불안’에 관해 철학적 논평을 하는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실존주의 문헌들을 읽으며 기초를 잘 쌓았다면 불안을 주제로 하는 어지간한 글들을 이해할 수 있겠지만, 이 철학자의 논평은 이해하기 쉽지 않을 터입니다. 글의 개요를 읽고 빠르게 ‘아, 이건 내가 못 읽는 글이군’ 하고 결론을 내린다면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죠.
하지만 내가 선행 지식이 없더라도 어떤 주제에 대한, 내지는 아주 특정한 어떤 글을 읽어야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해당 문헌들과 관련된’ 자료로 범위를 좁혀서 ‘가리지 않고 읽기’를 반복하면 됩니다. 자료들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면 새 저작들 역시 큰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습니다.
목차를 검증하자 (어쩌면 저역자도?)
이제 주제를 한정했으니, 신간을 전부 체크하더라도 내게 주어진 후보의 수는 상당히 줄어듭니다. 후보들 중 관심이 가는 몇 권의 책들을 골라봅시다. 그러고 나면 이제 내가 진짜로 해야 할 일이 시작됩니다. 이 책들 중 무엇이 똥이고, 무엇이 된장인지 식별해 내야 하는 것이죠. 이때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목차’를 읽어보는 겁니다.
목차는 이 사람이 자신의 주제를 다룰 때 어떤 개념들을 핵심적인 것으로 사용하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이미 우리는 어느 정도 ‘철학의 전문 어휘’에 어떤 것이 있는지 알게 되었으니, 이 개념들을 이 주제에 붙이는 게 자연스러운지 아닌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정신 에너지’ 같은 이상한 낱말을 사용하거나, ‘반사실 조건문의 의미론’이 주제인데 ‘해석학적 순환’ 같은 낱말이 핵심 어휘로 쓰인다면 고개를 갸웃하는 식으로요.
목차를 통한 검증만 잘 끝내도 대부분의 ‘AI 슬롭’이 걸러집니다. (으레 POD 출판사들을 통해 나오는) 전문성 없는 수준 미달의 철학 서적들의 경우, 제목은 그럴싸하더라도 저자의 지식 기반 자체가 약한 탓에 엉뚱한 방식으로 논의를 전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AI 얘기 하다가 상대성 이론 얘기를 하더니 헤겔의 변증법 얘기를 하고 마르크스 얘기로 맺는, 그런 책들 말이죠. 목차 수준에서 이런 책들은 정리됩니다.
다만 목차만으로도 걸러지지 않는 책들이 가끔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 걸러진 채로 남은 책이 너무 많다면 곤란하겠죠? 이때 어쩌면 저자나 역자의 프로필을 확인하는 것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역자가 철학적으로 인증 받은 자격을 갖고 있다면 조금 더 신뢰하고, 회사 다니다가 어느날 산에서 깨달음을 얻어 철학책 천 권을 사흘 만에 읽을 사람이라고 한다면… 바로 버리고.
하지만 저역자 프로필을 통한 필터링이 충분히 신뢰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경우, 그럴듯한 학문 경력을 가진 사람이 영 엉뚱한 책을 내기도 합니다. 반대로, 경력에는 마땅히 적힌 게 없지만 교양 수준에서는 아주 훌륭한 기여를 하는 책이 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제 경우, 저역자 프로필을 우선 순위 조정 용도로만 참고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사기꾼도, 숨은 보석도 많더라구요.
출판사를 통해 책을 거를 수 있을까?
POD 출판사 언급을 한 김에 짧게 짚고 가겠습니다. 출판사를 통해 책을 일차적으로 거르는 분들도 있으신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이것이 그렇게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해외 학술서의 경우에는 사정이 조금 다릅니다만, 국내 서적의 경우 교양서와 학술서를 막론하고 내용에 따라 책을 걸러낼 마땅한 장치가 없는 탓입니다.
‘POD 출판사’라는 말 자체가 다소 어폐가 있음을 확인해둘 필요가 있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른바 ‘자비 출판’(저자가 출판의 전 비용을 부담하고, 출판사는 배포만 담당하는 형태)을 전문으로 하는 출판사를 POD 출판사라고 합니다만, ‘POD’(print-on-demand)란 인쇄가 구매마다 이루어진다는 말일 뿐 편집과 홍보 등의 과정까지 저자의 몫이라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가령, 저명한 학술 출판사인 Springer나 Wiley에도 POD 서적이 많지만, 해당 책의 편집은 전문가들을 통해 엄격히 진행됩니다.
왜 Springer의 POD 서적은 여전히 ‘스프링어니까 믿을만하다’라고 생각이 될까요? 그 유통과 별개로, 원고 심사와 편집의 과정이 신뢰할 만한 덕입니다. 원고를 제출하면 해당 분야 서적을 다수 편집한 편집자가 원고의 담당자가 되고, 편집자는 해당 분야 전문가들을 통한 (이중) 익명 심사를 위탁합니다. 자비 출판 도서가 문제되는 건 바로 이 과정이 결여되었다는 점에 의합니다. 즉 자비 출판의 문제는 ‘POD’로써 지칭되는 유통 단계가 아닌 이에 앞서는, 편집 단계에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국내 기성 출판사들의 편집 절차는 얼마나 믿을만할까요? 해외의 학술 전문 출판사들처럼 전문적인 편집 업무 분담과 엄격한 심사가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이를 위한 여건 자체가 마땅하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철학 서적을 내고 있다 하더라도 분야별로 능숙한 편집자들이 준비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책을 수락할지 결정하는 주된 요인 역시 학계 전문가들의 평가보다는 회사의 여러 현실적인 사정들인 탓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우리말로 쓰인 철학책을 출판사를 보고 걸러내는 것에 대해 저는 회의적입니다.
이러한 사정이 마냥 우리 출판사들을 평가절하하거나 비난할 이유가 되지는 못합니다. 단행본 출판에 동료 평가가 필수적인 것도 아니며, 학술적 전문성을 갖춘 편집자들이 많지 않은 것은 우리 출판계의 규모, 출판사들의 재정 구조, 독자들의 성향, 원고 편집 방식(!) 등 다양한 여건들이 맞물리며 자연스럽게 나타난 결과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런 상황을 비판하거나 이렇게 저렇게 바꾸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출판사를 보고 책을 고를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물론 ‘여기는 분명 신뢰 가능하다!’라고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생각하는 출판사들도 있습니다. 다수의 잘 알려진 전집을 내는 출판사들, 국가지원사업에 의해 쓰인 책들을 전담하다시피하며 내는 출판사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그 출판사들에서 나온 책만 읽고 살기엔 철학의 세계가 너무 넓고 우리가 읽어야 할 책들은 훨씬 많습니다. 우리에게는 더 많고 다양한 철학 도서 출판사들이 필요합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말이 길어졌네요. 두 주 후에 조금만 더 이야기하겠습니다. 그 동안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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