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도 병인 양하여 : 차마 전하지 못한 마음
- 김경미의 시 〈다정이 나를〉을 중심으로
누가 다정하면 죽을 것 같았다
장미꽃나무 너무 다정할 때 그러하듯이
저녁 일몰 유독 다정할 때
유독 그러하듯이
뭘 잘못했는지
다정이 나를 죽일 것만 같았다
- 김경미, 〈다정이 나를〉
죽을 것 같은 다정함
김경미 시인은 뜻밖의 고백을 던집니다. 시 속의 화자가 겪는 다정함은 자신을
아프게 하는 '병'과 같습니다. 장미꽃나무가 너무 다정할 때, 저녁 일몰 유독 다정할 때
‘다정’이 자신을 죽일 것만 같다고 말이죠. 영국의 시인 존 키츠는 '부정적 능력(Negative
Capability)'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는 정답을 빨리 찾으려 서두르지 않고, 모호하고
불안한 상태를 참고 견뎌내는 힘을 의미합니다. 김경미 시인이 느꼈던 ‘뭘 잘못했는지’
모를 정도의 죽을 것 같은 다정함 속에는 바로 이 '견디는 시간'이 녹아 있습니다.
다정함이 나를 죽일 것 같아 뒤척이는 밤, 우리는 비로소 관계의 깊이를 형성합니다.
인공지능(AI)은 참 다정합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즉각 반응하고 또 화를 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다정함에는 나를 위해 잠을 설치는 고통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다정함은
그렇지 않습니다. 당장 내가 피곤하고 힘들어도 상대를 생각하느라 마음을 졸이는 것,
내 시간과 에너지를 기꺼이 내어주는 유한한 자원입니다. 진정한 다정함은 단순히
친절한 말을 건네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존재를 내 삶 안으로 깊숙이 들이는 일이니까요.
AI는 결코 알 수 없는 아픈 다정함이 되겠네요.
AI의 다정함은 나를 비추는 '거울'과 같습니다(실제로 AI GEMINI의 뜻도 거울입니다).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해주며 안심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과 관계는
나를 통과해가는 창(窓)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때때로 아프기도 합니다. 비가 들이치고
밤새 잠을 설치기도 하지만, 그 창을 통해 타인의 진정한 슬픔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매끄러운 위로대신 망설이는 마음
심리학자 셰리 터클은 기술이 우리에게 '관계의 지름길'을 제공하면서, 정작 소중한 대화의
가치를 잃어버리게 한다고 경고합니다. 지름길은 빠르고 효율적이지만 그 길 위엔 꽃도,
바람도, 무엇보다 우리가 서로를 위해 견뎌야 할 '뒤척임'이 없습니다.
조금 느리고 답답하더라도, 상대를 향해 기꺼이 '병들 준비'가 되어 있는 우리의 다정함
이야말로 우리를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 아닐까요? 때로는 나를 죽일 것만 같은 그 무거운
다정함 때문에 아파도 보고 밤을 지새우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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