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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Algorithm

연인들의 계산법

2026.03.23 | 조회 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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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Hye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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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뤽 고다르 <네 멋대로 해라>

 

"최악이야(C'est vraiment dégueulasse)."흑백 화면 속, -폴 벨몽도의 헝클어진 머리와

입에 문 담배,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진 세버그의 무심한 눈빛. -뤽 고다르의 영화 <네 멋대로

해라(À bout de souffle)>의 이 불온하고도 매혹적인 한 장면은, 사랑에 대한 가장 솔직하고도

파괴적인 선언으로 시작됩니다. "최악이야." 뒤이어 날아드는 고백. "사랑에 빠졌어."

더할 나위 없이 '엉망진창(Mess)'이네요. 이처럼 사랑은 우리를 충만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속수무책의 대책 없는 상태로 내던집니다. 고다르의 연인들이 보여주는

그 대책 없는 솔직함과 서로를 끝내 소유하지 못하는 거리감이야말로, 사랑의 진짜 얼굴이

아닐까요? 그 엉망진창 사랑의 궤적을 수학의 언어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1 -> π

              -> i

                   -> aₙ→0 (n→ ∞)

 

 

우리는 흔히 사랑을 '결합'이라 부르며, 11이 만나 온전한 2가 되는 기적을 꿈꿉니다.

하지만 실제 사랑의 궤적은 정수의 산술을 배반합니다.

 

1+1 -> π

 

고다르의 대사처럼,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질서 정연했던 삶이 최악의 엉망진창으로

변모하는 순간입니다. 이렇게 나락에 빠지네요. 사랑은 결코 무언가를 완성해가는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고착된 에고를 탈작동(Désœuvrement)시키고, 타자라는 심연 앞에서

완성하기를 멈추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별자인 11이 만났을 때, 결과는 딱 떨어지는

2가 아니라 무리수인 π로 나아갑니다. 이는 관계가 시작되는 순간, 우리가 세계를 떠나

끝이 없는 비결정성의 영역으로 진입하는 것을 의미하죠.

 

우리는 각자 '1'이라는 단단하고 완결된 껍질 속에 숨어 살지만, 사랑은 그 껍질에 치명적인

균열을 냅니다. 껍질이 깨진 틈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은 규정할 수 없는 감정의 파편들과

불안입니다. π라는 숫자가 3.141592...처럼 소수점 아래로 끝없이 갱신되듯, 연인들의 사랑은

결론에 도달하기를 거부하며, 오직 서로의 곁에서 영원히 진동할 뿐입니다.

이 불확정성이야말로 고다르가 말한 '최악'의 상태이자, 사랑이 주는 경이로운 역설이겠죠.

 

π→i

 

사랑은 곧이어 허수의 영역에 진입합니다. 제곱하여 -1이 되는 수, 눈에 보이거나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수학적 체계 안에서 엄연히 제 몫을 하는 이 숫자는 사랑의 본질과 꼭 닮아있습니다.

비록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연인들에게는 그 무엇보다 생생한 실재. 그것이 바로

허수로서의 사랑입니다. 당장 연인이 곁에 없어도, 그가 앉았던 자리의 온기가 피부에 닿을 때,

이미 없는 그 사람이 몸 안에서 선명하게 살아있는 순간처럼요.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눈빛

속에서 세상이 보지 못하는 허수를 읽어낼 수 있는 것이 연인들이니까요.

 

aₙ→0 (n→ ∞)

 

시간이 무한히 흐를 때 수열은 0으로 수렴합니다. 이것이 이 알고리즘의 가장 역설적인 결론이자,

낭시가 말한 무위(無爲, inoperative)의 핵심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작동(operate)

라고 요구합니다. 완벽한 커플이 되어야 하고, 효율적인 관계를 맺어야 하며, 무언가를 성취해야

한다고 말이죠. 하지만 사랑의 알고리즘은 우리를 탈작동(Désœuvrement)하게 만듭니다.

, 자아의 효율성을 정지시키고, 모든 의지적 계산을 멈추게(inoperative) 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수열이 0으로 수렴된다는 것은 자아의 소멸을 의미할까요? 아니면 관계의 실패일까요?

 

낭시에 따르면, 0은 파괴가 아닌 자아의 한계(Limit)입니다. 나의 고집, 나의 유능함, 나의

소유욕이 멈출 때, 타자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비로소 내 밖의 존재인 당신을 진정 만나게 되는

거지요. 그러므로 연인들이 0으로 수렴된다는 것은 사랑의 불가능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개별자의 작동이 멈추고 타자의 존재가 비로소 시작되는 기적을 의미하지는 않을까요?

 

1 + 1 = 0

최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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