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PHumanités의 세 가지 원칙

살롱 드 PH

어깨에 새겨진 7kg의 한숨: 만져야 할 슬픔의 물성

안티고네, 다르덴 형제 그리고 책가방

2026.03.29 | 조회 26 |
0
|
from.
Hyeyoon

 

 

 

"나는 증오하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는 국가의 명령과 개인의 양심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발생합니다. 테베의 왕 크레온은 반역자로 낙인찍힌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거리에

방치하여 들개와 새들의 먹이가 되게 하라고 명합니다. 이는 단순히 죽은 자에 대한

모독이 아닙니다. 그에 대한 기억과 애도마저 금지하려는 거대한 국가 폭력입니다.

크레온의 법 아래에서 폴리네이케스는 더 이상 오빠도, 인간도 아닌 '치워야 할 오물'

불과합니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이 국가 시스템에 정면으로 맞섭니다. 그녀의 무기는 거창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한 줌의 흙입니다. 그녀는 부패해가는 시신 위에 흙을 뿌리고

그 몸을 만집니다. 그리고 그녀는 차가운 흙의 감촉을 통해 죽은 자의 고통을 자신의

손등에 가져와 애도합니다. 안티고네의 행위는 단순히 종교적 의례를 넘어, 국가가

지워버린 이름을 다시 고유한 존재로 회복시키려는 근원적이고도 촉각적인 저항이

됩니다.

 

우리는 흔히 슬픔과 애도를 눈에 보이지 않는 정동의 문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추상적인 감정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애도는 물리적인 행위와 사물을

경유해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고통스러운 몸의 작업입니다. 침묵을 강요당하고 진실이

왜곡될 때, 몸과 감각을 통해 진실을 증언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소명임을 안티고네의

거친 손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애도의 물성'은 벨기에 영화 감독, 장 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 형제의 영화

<아들>(Le Fils, 2002)에서 새롭게 변주됩니다. <아들>의 주인공 올리비에는 벨기에

소도시의 목공 훈련센터에서 소년원 출소자들을 가르치는 목수입니다. 그는 엄격하고

과묵한 중년 남성으로, 5년 전 어린 아들을 잃고 아내와도 이혼한 후 혼자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느 날, 16세의 소년 프란시스가 훈련센터에 새로 배치됩니다.

올리비에는 처음에는 무관심해 보이지만, 곧 그는 소년을 집요하게 감시하고, 몰래

소년의 열쇠를 훔쳐 그의 허름한 아파트에 침입합니다.

 

충격적인 사실은 프란시스가 바로 5년 전 올리비에의 아들을 살해한 살인자라는 것입니다.

라디오를 훔치기 위해 자동차에 침입한 어린 프란시스는 그 과정에서 올리비에의 아들을

살해했던 것이지요. 아버지는 아들을 죽인 원수를 제자로 둔 채, 복수와 용서 사이의 벼랑

끝에 서 있습니다. 여기서 영화는 올리비에의 고뇌를 독백이나 눈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카메라는 오직 올리비에의 거친 손과 그 손이 만지는 나무의 결, 그리고 소년과 함께

운반하는 무거운 목재의 무게를 집요하게 따라갑니다.

 

올리비에가 나무의 결을 따라 쓰다듬고 대패질하는 행위는, 이제는 영원히 만질 수 없게 된

아들의 부드러운 살결을 대신 만지는 것과도 같습니다. 올리비에에게 소년은 증오의 대상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좁은 목공소 안에서 서로의 살이 맞닿고, 무거운 나무를 함께 들어

올리며 땀 냄새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변화가 일어납니다. 거친 나무판자를 옮길 때 전해지는

소년의 떨림, 서툴지만 목재를 다듬으려 애쓰는 소년의 손짓 속에서 올리비에는 비로소

프란시스를 한 명의 '인간적 물성'을 지닌 존재로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올리비에는 프란시스를 목 졸라 죽이려는 충동에 휩싸입니다.

5년 전의 증오가 갑자기 표면으로 솟아오릅니다. 하지만 그는 이 충동을 잠재우고 손을

뗍니다. 얼마 후 프란시스가 다시 돌아옵니다. 그리고 둘은 말없이. 다시. 함께. 나무를

만지기 시작합니다. 그제야 관객은 그의 용서를 만질 수 있게 됩니다. 이는 마치 다르덴

형제가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만져야 한다고 관객에게 조용히 말을 걸어오는

것 같습니다.

 

이제 고대 그리스나 유럽의 목공소가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겠습니다. 바로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아이들의 일상입니다. 그들의 어깨에는 매일 평균 7kg에 달하는 책가방이 얹혀

있습니다. 조사에 따르면 1970년대부터 이미 '무거운 책가방'은 사회적 문제였으나,

5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무게는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견고한 물리적 실체가 되어

아이들을 압박합니다.

 

대한민국 고등학생 책가방의 평균 무게는 약 5kg에서 7.5kg 사이를 오간다고 합니다.

특히 내신과 수능을 동시에 준비해야 하는 고3 학생들의 경우, 수십 권의 교재와 문제집이

담긴 가방은 10kg를 훌쩍 넘기기도 하고요. 이 무게가 과연 단순히 책의 무게일까요? 이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사회적 기대, 그리고 승자독식의 경쟁 체제가 아이들의 몸 위에

직접 투사된, 보이지 않는 정동의 물성입니다.

 

하교 후 방바닥에 가방을 내려놓을 때 나는 둔중한 소리를 들어본 적 있나요? 그 순간

아이들이 내려놓는 것은 무엇일까요? 단순히 가방을 내려놓은 것만은 분명 아닐 겁니다.

혹시 하루 종일 참아야 했던 아이의 몰아쉬는 숨은 아닐까요?

 

안티고네는 국가의 칙령에 맞서 죽은 오빠의 시신을 만졌습니다. 올리비에는 아들을

죽인 소년과 함께 나무를 만지며 용서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만져야 할 것'

외면하지 않고 기어이 손을 뻗음으로써, 인간의 존엄과 사랑을 지켜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어른의 소명은 무엇입니까? 단순히 힘들지?’라고

건네는 공허한 위로가 아니라, 7kg의 책가방이 아이들의 어깨에 남긴 붉은 자국을 손으로

느끼고, 그 속에 들어 있는 한숨의 무게를 들어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단지, 책가방의 무게를

줄여주는 옅은 배려를 넘어, 기성세대가 설계한 이 기괴한 풍경이 아이들의 얼굴을 어떻게

지우고 있는지 그 물성을 감각 해야 합니다. 안티고네가 흙을 쥐었듯, 올리비에가 대패를

잡았듯, 아이들의 삶을 직접 만져야 합니다.

애도하는 인간의 회복은 만짊으로 이루어지니까요.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PHumanites Line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6 PHumanites Line

피쥐마니테 - 인문,예술 기반 입시 연구소

메일리 로고

도움말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채팅으로 문의하기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송파구 위례광장로 199, 5층 501-8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