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줍게의 쓰줍레터
2025. 6. 2.
Vol. 7
'축제가 끝나고 난 후'
CURATION
쓰줍게가 모은 콘텐츠
세계 책의 날을 맞아 산림청이 현대 산림문학 100선을 선정했습니다. 산림문학이라는 장르가 한편으로는 생소하게 다가오는데요. 산림청에 따르면, 산림문학은 숲, 나무, 풀 등 산림을 주요 배경 또는 주제로 삼아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탐구하고, 자연 속 삶과 경험, 철학을 담아낸 작품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리스트에는 유독 환경과 자연보호, 생태계에 관한 주제를 다룬 책들이 많았습니다. 직접적으로 이를 다루지 않았다 하더라도, 자연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것 자체가 큰 힘을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자연의 위대함과 소중함을 느낄수록, 그것이 지켜져야 할 이유를 체감하게 되기 때문이겠죠.
쓰줍게도 리스트 중 읽어본 책들이 여럿 있었는데요.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쓴 자연에 대한 에세이인 <월든>, 김초엽 작가의 SF 소설 <지구 끝의 온실>이 대표적입니다. 특히 제가 원래부터 정말 좋게 읽었던 <두 번째 산>이라는 책도 포함되어 있어 인상적이었는데요. 자연의 원리를 삶에 빗대어 공동체와 타인, 가치와 헌신의 의미를 풀어낸 좋은 책입니다. 책에서 제가 밑줄 그었던 문장들을 공유해요. 아래에서 산림문학 리스트도 직접 확인해보세요.
첫 번째 산이 자아(ego)를 세우고 자기(self)를 규정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 산은 자아를 버리고 자기를 내려놓는 것이다. 첫 번째 산이 무언가를 획득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 산은 무언가를 남에게 주는 것이다. 첫 번째 산이 계층 상승의 엘리트적인 것이라면 두 번째 산은 무언가 부족한 사람들 사이에 자기 자신을 단단히 뿌리내리고 그들과 손잡고 나란히 걷는 평등주의적인 것이다.
두 번째 산을 오르는 방식은 첫 번째 산을 오르는 방식과 전혀 다르다. 첫 번째 산은 정복한다. ‘나’가 이 산을 정복하는 것이다. 정상이 어디인지 멀리서 확인하고는 그곳을 향해 기를 쓰고 올라간다. 그런데 두 번째 산은 다르다. 두 번째 산이 ‘나’를 정복한다. 나는 어떤 소명에 굴복한다. 그리고 그 소명에 응답해, 내 앞에 놓여 있는 어떤 부당함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다한다. 첫 번째 산에서는 야심을 품고 전략적으로 접근하며 독립심을 발휘하지만, 두 번째 산에서는 인간관계를 중시하고 친밀하며 무엇에도 굴하지 않는 태도로 일관한다.데이비드 브룩스, <두 번째 산>, 부키(2020), 21-2쪽.
ESSAY
축제가 끝나고 난 후
나에게 5월은 축제와 함께했던 달로 기억되고는 한다. 흔히 대학 축제가 열리는 시즌이 5월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학교를 다니던 시절, 이맘때가 되면 나는 축제에서 노느라 신남을 감추지 못했다. 화려한 공연과 좋은 음악으로 눈과 귀를 가득 채웠다. 화면에서나 보던 아티스트를 눈 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친구들과 휴대폰 플래시를 한껏 흔들며 분위기를 만끽했다.
대학 축제는 대개 캠버스 한복판에서 열린다. 축제가 끝나고 난 후 학교는 바로 일상으로 돌아간다. 화려한 무대 구조물은 순식간에 철거된다. 사람들이 있던 자리에는 항상 쓰레기가 남겨진다. 푸드트럭에서 먹고 남은 음식, 주점에서 사용되고 길에 버려진 일회용품들, 그리고 온갖 종이컵과 테이크아웃 컵들까지. 축제 다음 날의 학교는 유독 더러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자신이 만든 쓰레기는 자발적으로 가져가는 것이, 의무가 아닌 '매너' 정도로만 여겨지던 때였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매년 5월이 지나갈 때면, 신문기사에 대학 축제의 쓰레기 문제가 전면적으로 등장한다. 주된 포인트는 크게 세 가지다. 일회용품이 지나치게 많이 사용된다는 것, 바닥에 버려진 쓰레기가 너무 많다는 것, 쓰레기통에 버렸더라도 분리수거가 제대로 안 된다는 이다. 특히 준비된 쓰레기통 자체가 분리수거를 할 수 없는 구조라는 점이 지적된다. 별도의 분리수거 장소 없이 단일 쓰레기통으로만 운영이 된다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도 있어 왔다. 서울대학교는 2년 전부터 일회용기 없는 축제를 표방하고 있다. 다회용기를 전면적으로 도입했고 실제로 일회용품 쓰레기가 대거 줄었다. 건국대학교는 올해 축제 기간 동안 플로깅 행사를 열어 학생 주도의 미화 활동을 추진했다. 이외에도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며 점진적인 개선이 이루어지는 듯하다. 그러나 비판이 매년 되풀이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기사들을 읽으며 내가 떠올린 장면이 하나 있다. 바로 얼마 전 있었던 유명 밴드 콜드플레이Coldplay 의 내한 공연이다. 콜드플레이는 콘서트 때 LED 팔찌를 배부하고는 이를 다시 회수한 후, 전세계 도시별 회수율을 공개하는 행보로 눈길을 끌었다. '우리도 질 수 없지!'하는 긍정적인 경쟁심은 자연스러우면서도 즐거운 친환경 참여로 관객들을 초대했다. 결국 서울 관객들은 99%라는 회수율을 기록하며 전 세계 1위에 올랐다.
축제만이 줄 수 있는 재미가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때 만들어지는 분위기는 특유의 고양감을 선물한다. 그러나 몰입해 잘 노는 것만큼, 축제가 끝난 후의 마무리도 중요하다. 일상으로 돌아가는 첫 걸음은 자신이 남긴 흔적들을 꼼꼼히 정리하고 치우는 일이다. 결국 개개인이 가지는 의식의 문제이다. 솔직히 몇 년에 걸쳐 계속되고 있는 지적들을 보며 조금은 냉소적으로 변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느리지만 분명하게 일어나는 변화들을 살펴보며 나는 그 냉소가 조금은 부끄러워다.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사람들의 단단한 의지만 있다면 변화는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 그 변화의 가능성을 믿고 냉소를 거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품으며 나는 5월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ARCHIVE
쓰줍게가 만든 콘텐츠
쓰줍게가 지난 2주간 만든 특별한 콘텐츠들을 소개합니다.
1.
기후위기가 바꿔놓은 식탁
기후위기는 조용하게 찾아온다고들 합니다. 아직 체감되지는 않지만, 언젠가 전 지구에는 눈으로 보이는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이야기하죠.정말 이 변화는 ‘눈에 보이지’ 않게 다가오고 있는 것일까요? 이미 변화는 일어났지만 우리가 그것을 못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쓰줍게는 눈에 덜 띄는 변화들에 주목해보려 합니다. 기후위기가 가져온 파급효과가 우리의 앞에 어떻게 존재하는지 생생하게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그 첫 번째는 의식주의 기본을 이루는 식, 우리의 식탁입니다. 보러 가기
2.
[선거 특집 1] 정당 현수막이 거리에 난립하게 된 이유
선거 기간이 다가왔습니다. 다들 사전투표는 참여하셨나요? 선거철이 되면 쓰줍게는 현수막과 환경 문제를 떠올리곤 합니다. 예전부터 현수막 난립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을 다뤄보고 싶었는데요. 이러한 현수막 난립 문제는, 2022년 국회에서 정당은 지자체의 허가나 신고 없이 자유롭게 정당 현수막을 걸 수 있도록 '옥외광고물' 개정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입니다. 쓰줍게가 친절하게 해설해보았습니다! 보러 가기
3.
[선거 특집 2] 판결로 알아본 정당 현수막 문제
이어지는 정당 현수막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번엔 정당 현수막에 관해 읽어보기 좋은 최근 대법원 판결을 소개해드려요. 정당 현수막 난립 문제가 심각해지자, 일부 지자체는 조례를 제정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정당 현수막이라도 완전히 마음대로 걸 수는 없도록, 현수막의 내용이나 개수를 제한하는 규정을 둔 것이죠. 그런데 대법원이 그 조례의 효력을 부정한 판결을 최근 내렸습니다. 우리는 이 판결을 어떻게 이해해볼 수 있을까요? 쓰줍게가 알기 쉽게 소개해드립니다.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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