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맛 팝콘] 사연 가득한 ‘즐거운 집'

안녕하세요 옥수수🌽 여러분, 묘나😽입니다. 우워어얼(월)요일부터 순식간에 사라지는 주말까지 정신 없이 지내다 보면 한달이 금방 흘러, 꽤나 멀게 느껴졌던 무대맛 팝콘 발행일이 다가와 있습니다. 이렇게 한달 주기로 옥수수 여러분께 인사를 드릴 때마다 일상의 모습과 태도가, 바깥 공기의 온도와 습도가, 심지어는 사회 분위기가 바뀌어 있는 걸 느끼는데요. 같은 모양새로 반복되고 있는 줄만 알았던 하루들이 모여 예상할 수 없던 새로운 날에 우릴 안착시켜 놓는 걸 보면 새삼 살아(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지난달엔 없던 오늘의 더위도 더욱 뽀송한 날에 도달하기 위한 관문이라 여기며 스멀스멀 상승하는 불쾌지수도 즐겁게 극복해보자구요.🫠

요즘같이 날씨가 극단을 향해 갈때면 “집”이라는 공간에 대해 새삼 감사한 마음을 품게 되는데요. 성인이 되자마자 부모님으로부터 반강제적인 독립을 하여 여러 집을 거쳐온 덕인듯 합니다. 특히 집순이인 묘나에게 집은 ‘추위나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한 공간’이라는 사전적 의미 그 이상으로,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넓은 거실이 있어서 친구들과 특별한 날을 기념하는 파티룸이 되어주기도 했지만, 어느 장마철, 인생 첫 바퀴벌레를 마주한 뒤 악몽의 시작이 된 집. 밤낮 없이 외출한 주인을 찾아 끙끙대며 벽을 긁던 옆집 강아지 덕에 층간소음보다 무시무시한 횡간소음을 경험하게 한 집. 예산 내 선택지가 많지 않았던 대도시에 안착하느라 비싼 월세에 치이며 값 비싼 숨을 내쉬게 한 집. 늘 만족스럽지만은 않았지만 그때마다 온갖 사연을 안고 울고 웃던 나를 품어주었던 집들이 고맙고 아련해집니다. (이러다가.. <내가 사랑했던 집들에게> 영화 한 편 나오겠네요.🥹)

여러분은 어떤 공간에서, 어떤 사연들을 안고 지내시는지 궁금해지는데요. 내가 사랑했던 집들에 대한 애증을 안고 오늘의 작품을 소개하려 합니다. 묘나가 만나고 떠나온 집들이 그러하듯, 모든 집들이 밖에선 보이지 않는 사연들을 안고 있겠죠. 역시나 사연 가득한 ‘즐거운 집’, 뮤지컬 <펀 홈(Fun Home)>을 만나보시죠.

뮤지컬 <펀 홈 : FUN HOME>

뮤지컬 <펀 홈>은 작가 앨리슨 백델의 동명의 회고록을 원작으로 2014년 오프브로드웨이에 등장한 이후, 이듬해 토니 어워즈 5관왕의 영예를 안으며 큰 주목을 받은 작품입니다. 그래픽 소설 작가인 43세 주인공 앨리슨은 평범해 보이기 위해 고독을 삼켜야 했던 자신의 지난 날과 가족들의 삶, 특히나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와의 관계를 이해해 보려 노력합니다. 성인이 된 앨리슨과 성 정체성을 고민하던 19세의 앨리슨, 구두보단 운동화, 드레스보단 셔츠가 좋았던 9세의 앨리슨이 각각 1인칭 시점으로 등장하여 현재와 과거의 시간들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들려주며 관객들을 이 가족의 삶으로 불러냅니다. 자신의 깊은 욕망을 숨기며 모순과 거짓으로 살아온 그녀의 아빠 브루스, 남편과 세 자녀들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감이 사라져 가는 날들을 살아내는 그의 아내, 누구 하나 쉬운 인생이 없어 보이는 이들의 처절한 삶은 모순적이게도 관객들로 하여금 가장 인간적인 위로를 안겨줍니다

✔️앨리슨 벡델(Alison Bechdel) - 백델 데이

이 작품을 논하며 영화 산업에도 의미 있는 업적을 남긴 원작의 작가 앨리슨 벡델 이야기를 안 하고 넘어갈 수가 없겠네요. 앨리슨은 영화의 성평등 지수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벡델 테스트’를 고안한 인물로 영화를 사랑하는 옥수수 여러분께도 익숙한 이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안타깝게도 여전히 많은 영화가 예술 작품 내 성 불균형 해소를 위한 기본적이고 최소한의 기준을 제시하는 이 지표를 통과하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차별이 없는 평등한 사회의 실현이 중요한 이유에서 뿐 아니라 미디어에 등장하는 스토리와 캐릭터는 우리를 둘러싼 사람과 현실에 영향을 끼치기에 영화 산업에서 성평등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2020년부터 한국영화감독조합과 문화체육관광부가 함께 성평등 인식 개선을 위한 ‘벡델 데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양성평등주간을 맞아 벡델 테스트를 활용한 기준을 통과한 10편의 한국 영화를 선정한 ‘벡델초이스 10'을 공개하기도 했는데요. 더욱 많은 작품들이 벡델 테스트, 그 이상도 거뜬히 통과하는 다양성을 담게 되길 기대해 보며 다시 즐거운 우리집, <펀 홈>으로 돌아와 소개를 이어나가 보겠습니다.

벡델데이 로고 ‘균형의 눈' - 벡델의 대문자 B와 영화계 성평등을 향해 끊임없이 지켜보는 우리의 시선을 형상화했다고 합니다.

🏠 FUN 하지만 FUN 할 수 없는 FUN HOME

뮤지컬 <펀 홈> 원작 소설의 부제는 ‘가족 희비극(희극과 비극과 아울러 이르는 말)’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웃픈 책”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출간 되기도 했습니다. 부제만으로도 제목의 단어 ‘fun(재미있는, 즐거운)’이 단편적으로 해석되지 않을 가능성을 보여주는데요. 그렇습니다. 사실 <FUN HOME>은 미국식 가정 장례식장을 의미하는 ‘Funeral Home’을 줄여서 부른 말이니, 정말 극적이고 입체적인 제목 아닌가요?

집이 예뻐보여서 들어와 봤어요

당연히 모르셨겠지만, 묘나는 뮤덕에 이어 원색덕후라는 또 다른 강력한 취향을 갖고 있습니다.(오늘도 내맘대로 던지고 가는 묘나 TMI..) 선명한 색감의 무언가를 보면 마음을 빼앗기는 제가 삼원색(빨강,파랑,노랑)이 그득한 <펀 홈>의 포스터를 본 이상 개나리 같이 밝은 마음을 품고 이 즐거운 집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죠.

저와 같이 일부러 혹은 피치 못할 상황으로 작품에 대한 일말의 사전 정보 없이 한 작품을 관람해 보신 적이 있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 결과가 경탄 혹은 실망, 벅찬 감동 혹은 배신감.. 어떠한 감흥을 남겼던 간에 꽤나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렇게 예쁜 포스터에 속아(?) 들어간 이 집에서 묘나는 100분 내내 아픔과 공감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에 즐거운 감정의 소용돌이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밖에서 기대한 것만큼 예쁘고 유쾌하지만은 않은 현실을 담은 집이었지만, 그 안을 살아가는 아름다운 존재들의 삶에 슬픔이 조금이나마 덜 하기를 기도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말이죠.

🏠 전지적 관객 시점

그 날 밤, 제 계획에도 없던 눈물을 흘릴 정도로 이 작품의 몰입도를 증폭시킨 일등공신은 신선한 무대 연출이었습니다. 무대보다 낮은 위치의 관객석에서 무대 속 세상을 정면으로 올려다 보는 대부분의 뮤지컬 무대와 달리 뮤지컬 <펀 홈>은 🏟콜로세움(고대 원형 경기장)과 같이 바닥에 놓인 무대를 내려다 보는 새로운 시각을 관객에게 선사합니다. 여러 시.공간을 한 눈에 내려다 보는 전지적 관객 시점은 자신들의 시간을 살아내는 극 중 인물들의 삶을 더욱 입체적으로 체험하며 함께 호흡할 수 있게 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이 점이 <펀 홈>의 영화화에 우려되는 점이기도 합니다. 무대극이 영화화될 때의 거대한 강점은 시.공간의 제약을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일텐데요. 오히려 이 작품은 관객의 넓은 시선을 평면적인 스크린에 구현하는 과정에서 시선에 제약을 가져오는 한계를 보이진 않을지, 그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지 궁금해지게 만듭니다.

무대를 사방으로 둘러싼 관객석에 앉으면 인물의 정면과 뒷모습까지, 인물의 삶 그 자체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 제이크 질렌할 - 아버지 ‘브루스’역 출연 확정

다소 무거운 주제를 독특하게 다룬, 조금은 낯선 이 작품의 영화에는 주인공 앨리슨의 아버지 역으로 배우 제이크 질렌할이 캐스팅되었습니다. 제이크 질렌할은 <펀 홈>의 음악을 맡은 지닌 테소리와의 이미 2017년 뮤지컬 <조지와 함께한 일요일 공원에서>에서 한 차례 주연배우와 작곡가로 만난 적이 있다고 하니, 새로운 작품으로 다시 만난 두 사람의 호흡이 영화에 힘을 실어주길 기대해 봅니다.

🎵이 넘버, 리멤버

1. <Come to the Fun Home> : 귀여운 벡델가(家) 삼남매가 여러분을 펀 홈으로 초대합니다. 말 그대로 “우리집에 놀러오세요”라고 외치는 넘버인데요. 어두운 슬픔만이 떠오르는 공간인 장례식장에서 관을 무대 삼아 해맑게 춤추고 노래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무거워진 관객들의 마음을 다시금 말랑하게 만들어줍니다

“아니, 너네 집은 장례식장인데 그렇게 해맑게 환영의 노래를 부른다고?”

2. <Rings of Keys> : 9세의 앨리슨이 우연히 마주한 여자 우편 배달부를 본 후 그녀의 행동, 말투와 물건.. 시선이 가는 곳마다 느끼는 마음의 움직임을 초롱초롱한 눈으로 불러내는 넘버인데요.이 작품의 작사가 리사 크론은 어린 앨리슨이 동성의 인물에게 감정의 요동을 느끼는 이 곡에 어떠한 편견이나 웃음거리의 요소를 담지 않기 위해 고심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고민 덕인지 이 넘버를 듣는 동안은 어린 앨리슨의 눈망울이 세상의 전부가 되는 듯한데요, 스크린에서도 이 순수한 눈이 담는 시선을 차별과 편견의 시선 없이 고스란히 따라가는 경험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