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직장생활을 마무리하고 동네 생활자로 막 전향한 시점. 사교육 애호가로서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을 기웃거렸다. 전보다 가벼워진 지갑 사정에 한번에 수만원에서 수십만원하는 비싼 클래스를 턱턱 들을 수는 없으니 가성비로 가보자는 전략이었다. 게다가 동네에서 하는 수업이니 이동도 용이했다. 그렇게 처음 듣게 된 수업이 터프팅.
낯선 장르였지만 사부작사부작 만들기를 좋아했던지라 결과물을 만들어 집으로 가져갈 수 있다는 점에 메리트를 느껴 신청했다. 재료비를 포함해 6번의 수업이 7만원도 채 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확하진 않지만 정말 혜자로운 수업이었던 것은 틀림없다. 터프팅은 터프팅 건이라는 기계에 실을 연결해 도안을 따라 실을 '탁탁탁' 한땀한땀 심어 넣어 작품을 만드는 공예다.


캔버스에 그려놓은 모양대로 실을 바꿔가며 총을 쏘면 그 반동과 소음에 온 몸이 떨린다. 떨림에 잠깐 무아지경이 되어 실을 채워 넣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한 곳에 실이 몰리거나, 선 밖으로 엇나가기 일쑤다. 하지만 선생님을 찾으면 능숙한 솜씨로 수습을 해주신다 ㅎㅎ 터프팅은 한땀의 실이 끊어져 박혀 뜨개질 같이 하나의 실로 계속 엮어 만드는 작업보다 수정이 쉽다. 겁먹지 말고 일단 쏘고 수정하면 되고, 과정이 매끄럽지 않았어도 마무리 단계의 가위질로 만회할 기회도 있다. 그렇게 6주간의 수업이 끝나고 기어코 만들어진 발매트를 보니 뿌듯함만 남았다.

그렇게 과정과 결과물 모두 만족스러웠던 첫 수업은 다음 수업으로 날 이끌었다. 그렇게 도착한 두번째 수업은 우쿨렐레. 터프팅 수업이 진행됐던 때는 대학교의 여름방학 즈음이어서였을까? 동네 대학생도 보이고, 내 또래 프리랜서도 보이고, 어머님도 계셨는데. 가을학기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은 달랐다. 간과했다. 평일 오전 11시, 동네에서 우쿨렐레를 배울 수 있는 사람은 자녀들도 모두 사회로 나간 어머님들 혹은 퇴직한 아버님이라는 사실을. 우쿨렐레 선생님이 나를 제외하고 가장 젊은 50대였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나도 회사에서는 연차가 제법 찬 30대 후반이었지만 우리 엄마보다 더 나이가 많은 같은 반 친구들?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계산이 안 섰다. 게다가 활짝 웃으며 앞으로 앉으라는 선생님의 친절한 대응에 도망갈 수도 없었다.
설렘보다 당황스러움이 더 큰 첫 수업이었지만, 오늘 수업이 끝나면 4곡은 연주할 수 있을 거라 장담하는 선생님의 기세에 그렇다면 이렇게 된 거 배워보자 싶었다. 시작은 가장 기초적인 C, F, C7 코드 익히기. 코드 운지를 가르쳐주시더니 냅다 노래를 불러보자는 선생님. 우쿨렐레를 들쳐 메고 수강생 사이를 돌며 더 크게 노래하라고 외치는 선생님의 목소리와 몸짓에 떠밀리다 보니 어느 새 손은 더듬 더듬 코드 2~3개를 짚어내고 있었고, 입은 ‘올챙이와 개구리’(올챙이 뒷다리가 쑤욱~ 나오는 그 노래다)를 부르고 있었다.
아! 말려 버렸다. 입이 부르는 노래가 우쿨렐레 소리를 대신해 어쨌든 연주를 완성했다. 호기롭게 4곡은 완성할 수 있다고 했던 선생님의 말에 ‘설마’ 했지만 크게 부정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자리에 앉자마자 건넨 두툼한 교재와 수업 중간에는 필기를 몇페이지에 하라는 상세한 지시, 끝날 때는 다음 시간에 교제비를 입금하라는 철두철미한 마무리까지. 교재비에 발목 잡혀 다음 수업에 불려 나갔다.

수업 참석자체가 큰 도전이었으나 긍정적인 점도 있었다. 교재비를 포함한다고 해도 꽤나 저렴한 가격의 수업인 것은 분명했고, 수강생 연령이 높아 A-Z까지가 아니라 A부터 A’, A’’까지 정말 하나하나 차근차근 알려줬다. 박치인 나도 몸에 익을 정도로 반복해 스트로크를 알려 주었고, 우쿨렐레로 박자를 연주하기 전 몸부터 리듬을 익숙해지는 법을 배웠다.
한번은 박자 맞추기가 어렵다며 하소연하는 어머님과 2인 1조로 연습하게 됐다. 선생님은 젊은 사람(나)이 선생님을 대신 해 옆에서 잘 봐 드리라는 임무를 부여했다. 수업은 초급과 중급이 섞인 20명의 수강생이 뒤섞여 있었기에 서로의 편의를 봐주며 하자는 노련한 선생님의 대처가 돋보였다. 엉겁결에 역할을 받았으니 어쨋든 어머님 옆에서 상체 바운스로 강약중강약을 세며 박자를 맞춰 나갔다. 그렇게 연거푸 연습하다 보니 드디어 어머님도 박자 맞추기에 성공했다. 수업이 끝난 뒤 어머님은 내 허벅지를 꽉 잡으며 “덕분에 할 수 있었어. 고마워요” 강렬하게 감사를 전하셨다.

‘오히려 좋아, 아니 좋을지도 몰라’를 외치며 꾹 참고 수업을 이어가던 몇 주가 지나고 항마력이 딸리는 순간이 도래했다. 수업을 듣던 시기는 10~12월, 또다른 말로는 김장철. 어머님들은 하나 둘 각자의 김장 스케줄을 공유했고, 파티를 기획하게 된다. 한 어머님이 이민을 가신다고 하니 김장 김치와 수육을 가져와 송별회를 하자고 말이다. 그 이야기에 손주의 등학교를 책임지는 몇몇 어머니는 난색을 표했고, 선생님은 굴하지 않고 그럼 수업을 일찍 시작해 오후 1시 전에는 송별회를 끝내주겠다 단언했다. 수업은 1시간 당기고, 송별회는 선생님이 아는 가게를 빌리겠다며.
엄청난 추진력과 기획력에 화들짝 놀란 내향인은 그 수업에 나갈 용기가 없었다. 모임장소 였던 ‘○○○ 7080’이라는 가게 이름부터 발목을 잡았다. 그 후 다행?스럽게도 오른팔에 금이 가는 사건이 생기면서 수업을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날의 흥겨움을 담은 단톡방에는 계획했던 김장김치와 보쌈이 있고, 우쿨렐레를 곁들인 노래 자랑도 있었다. 술 또한 빠지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오전 11시에서 오후 1시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는 사실 또한 잊혀지지 않는다.
나의 우쿨렐레 실력은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갔고, 터프팅도 집에 깔린 발매트로 흔적만 남았을 뿐이다. 마치 모든 것이 ‘아, 여름이었다’로 급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 같은 시간들. 그래도 뭘 배운다고 기웃거리면서 잠만 자던 동네와 친해지고, 세상엔 다양한 연령의, 직업의 사람들이 함께 산다는 당연한 이치도 몸으로 배웠다. 그렇게 우리 동네에만도 다양한 삶의 모양이 있음을 알게 되니 막막한 개학 후 모습에도 조금은 배짱을 갖게 됐달까? 방학이 끝나면 한 뼘 크는 어린이들의 키만큼 어른이의 방학도 끝이 나면 무엇이든 자라긴 자란다.😆
*이 글은 브런치에 연재한 ‘김장하면 자동 완성되는 우쿨렐레’ 중 일부를 발췌,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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