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맛 팝콘] a tempo: 본래의 빠르기로

By 초록🍀

음악영화를 좋아하시나요? 아니라면, 영화음악을 좋아하시지는 않나요? 사실 저는 음악영화도, 영화음악도 특별히 좋아하진 않지만 영화와 음악은 둘 다 좋아하는데요. 팝콘레터를 구독하신 분이라면 이 셋 중에 어느 한 가지 카테고리에는 반드시 속한다고 99% 장담합니다.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트레일러]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포스터] 요즘 이런 보색 대비 포스터가 유행인가 봐요.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2005년부터 이어온 아시아 최초의 음악영화제로, 음악영화제라는 이름에 걸맞게 음악영화 혹은 음악이 인상적인 영화를 선보이는 영화제입니다. 2022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슬로건은 ‘a tempo’인데요, 본래의 빠르기로, 즉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상영으로 전환했다가 3년 만에 정상 개최되었거든요. 설레는 마음으로 제천을 찾은 초록과 도로시는 8/13-14(토-일) 총 이틀 동안 제천에 머물렀어요. 물론, 무주에서 얻은 교훈으로 숙소도 한참 전에 미리 예약했습니다. (그러나 순진한 두 아가씨에게 곧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는데… 역대급 영화제 괴담 to be continued)

초록🍀(춘천쥐) 루트

춘천시외버스터미널 -> 원주시외버스터미널 -> 제천버스터미널

도로시🌪️(부천쥐) 루트

부천 -> 청량리역 -> 제천역

*사당역, 강남역, 종합운동장역에서 정차하는 유료 셔틀버스 존재

영화제 약도 (공식ver. / 야매ver. By 도로시) 'ㅡㅡ' 이런 거 제가 한 거 아닙니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제천 시내에서 진행되는데요, 메인 행사장끼리 서로 거리가 꽤 있는 편이에요. 주요 상영관인 CGV랑 메가박스 사이가 차로 10분, 공연장과 굿즈샵·푸드트럭 등이 모여 있는 비행장무대는 중간지점인 메가박스에서 차로 15분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셔틀버스가 3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는 점인데, 애석하게도 버스터미널에서는 셔틀버스가 멈추지 않더라고요?! 저와 도로시 둘 다 뚜벅좌인지라… 제천역에서 먼저 내린 도로시가 CGV에서 현장예매 상황을 봐줬어요.

왜 도로시가 현장예매를 하러 갔느냐… 무주산골영화제에 갔을 때는 볼 영화들을 미리 다 예매했었는데, 막상 그때 가보니 현장예매한 도로시 좌석이 더 좋은 거예요. ;;; 제가 주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다 보니 예매 자체가 그렇게 빡세지도 않았고요. 그리고 취켓팅(취소+티켓팅)의 달인 도로시가 있으니, 저도 이번에는 아무 계획도 안 하고 거의 영화제 당일에 영화 정보들을 찾아봤었던 것 같아요. 그랬더니 글쎄… 보고 싶은 영화들은 거의 다 매진 세례. ^^ 더 놀라운 건 버스 타고 있는 동안 홈페이지 몇 번 들락날락했더니 취켓팅에 성공했다는 거. 역시 최고의 계획은 무계획인가 봅니다. (머쓱) 바로 첫 번째 스팟인 ‘하소생활문화센터 산책’으로 이동했어요.

초록🍀 루트: 시내버스를 타고 터미널 -> ‘하소생활문화센터 산책’으로 이동

도로시🌪️ 루트: 셔틀버스를 타고 CGV제천 -> ‘하소생활문화센터 산책’으로 이동

‘하소생활문화센터 산책’은 원래 도서관에 가까운 공간인데요, 올해 새로 지어져서 그런지 화장실이나 휴게공간 등이 전체적으로 깨끗해서 좋았어요. 영화제 기간 동안 이곳에서 ‘히든 트랙’이라고 해서 라이브 공연이 결합된 영화 상영이 이루어졌어요. 제천 음악영화 제작지원 공개 피칭도 이곳에서 진행되었구요. 참고로 이곳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은 모두 무료라는 거!

CGV명동 씨네라이브러리랑 비슷한 느낌?(근데 등받이 없어서 힘들었어요 진심…)

이곳에서 저희가 본 영화는 ‘한국경쟁4’이라는 이름으로 묶음 상영된 두 영화였습니다. 둘 다 현재 가장 주목받는 인디뮤지션들이 등장하는 영화였어요.

프리스피릿

감독: 정제현

Korea | 2021 | 20min | DCP | Color, B&W | Experimental | World Premiere

듬성듬성 죽은 풀만 나있는 광야에 검은 옷을 입은 남자 셋이 걸어 다닌다. 이들은 까데호(Cadejo)의 멤버다. 죽었다는 인식도 없이 객귀가 된 세 남자. 영화에는 대사가 없다. 대신 무작정 길을 걷는 남자들의 모습 위로 밴드의 연주곡이 흘러나오고. 이들의 존재 역시 자막으로 유추할 수 있다. “여기서 무엇을 찾으시나요, 종종 이런 경우가 있지요 떠나지 못하고 헤매는” 뮤직비디오처럼 영상이 중첩되고 세 남자의 연주 무대가 등장하기도 했다가 이내 흑백으로 전환된다. ‘프리스피릿’이라는 제목처럼 정해진 틀 없이 자유롭게 사유하고 음악하는 영화다. (김송희)

버텨내고 존재하기

감독: 권철

Korea | 2022 | 64min | DCP | Color | Documentary | World Premiere

오래된 극장에서 뮤지션들이 극장에 대한 오래된 기억을 소회한다. 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에 대한 기억, 어떤 영화를 보고 자랐으며, 어떤 감독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는지. 매표소, 계단, 영사실, 객석. 낡은 극장 곳곳을 비추던 카메라는 뮤지션의 얼굴로 옮겨가고 이들은 극장에서 “나의 노래”를 하기 시작한다. ‘버텨내고 존재하기’는 1935년 개관한 광주극장을 배경으로 김일두, 김사월, 곽푸른하늘,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등 뮤지션들이 인터뷰와 공연을 이어 붙인다. 공간과 음악이 그 자리에서 오래오래 “버텨내고 존재하기”에 대해 기록하고 노래하는 영화. (김송희)

‘프리스피릿’은 까데호 음악을 듣고 정말 좋다고 느낀 적이 있어 꽤 기대를 했었는데, 영화 자체가 너무 난해해서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실험 영화이니 당연히 맥락보단 순간의 느낌이 중요하겠지만, 솔직히 뭘 표현하려는지 잘 모르겠고 기억에 남지 않았어요. 그리고 연기를 하긴 하는데 잘 못할 때 느껴지는 오글거림 때문에도 몰입이 안 됐습니다. 까데호 음악은 여전히 좋았어요.

‘버텨내고 존재하기’는 굉장히 몰입해서 보았는데요, 일단 이자람, 김사월, 김일두, 최고은 등 제가 관심 있게 보던 뮤지션들이 잔뜩 등장해서 그렇기도 했어요. 뮤지션 최고은 씨가 출연뿐 아니라 프로듀서 역할을 했는데, 그녀와 권철 감독의 고향이 바로 광주입니다. 그래서인지 광주극장과 음악을 향한 그들의 애정을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기도 했어요. 세월만큼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광주극장이라는 공간과, 각자 다른 음악세계를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를 정말 잘 포착해서 아름답게 담았더라고요. 저 사람이 저렇게 매력적인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던 것 같아요. 광주에 가면 광주극장이 존재하는 모습을 꼭 내 눈에 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저도 라이브 음악이 삽입되는 다큐멘터리를 몇 번 만들어본 적이 있었는데, 이 작품을 보면서 이렇게도 촬영·편집이 가능하구나 하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버텨내고 존재하기’는 이번 영화제에서 한국경쟁 작품상을 타기도 했습니다. 짝짝짝! 토크 내용에 따르면 10월 말 광주극장에서 영화 상영도 하고 공연도 할 예정이라고 하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소식 찾아보시면 좋을 거 같아요.

두 번째 스팟은 메가박스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레스트리 리솜이었는데요, 고급스러운 리조트더라구요. 사전 예약 상품 중에 리조트 숙박권과 영화 예매권을 묶어서 판매하는 상품이 있었는데, 귀찮아서 대충 흘려본 제 자신을 원망했던… 생각보다 리조트가 정말 좋아 보였어요. 다음에 여기 또 온다면 돈을 좀 쓰더라도 저기서 잘 것 같습니다. (단호)

천 명의 락커, 하나의 밴드 We Are The Thousand

감독: 아니타 리바로리

Italy | 2020 | 79min | DCP | Color | Documentary

천 명의 이탈리안 뮤지션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의 목표는 푸 파이터스의 ‘Learn To Fly’를 함께 연주하고 그들을 초대하는 것이다. ‘천 명의 락커, 하나의 밴드’는 하나의 사운드를 위해 천 명이 합을 맞추는 과정을 담으면서도 연령, 직업 등이 전부 다른 개별 멤버들의 스토리도 놓치지 않고 조명한다. 누군가의 꿈이 현실이 되는 과정은 언제 봐도 즐거운 일. 음악을 사랑하고 연주 자체를 즐기는 이들의 거대한 에너지가 영화 곳곳을 빈틈없이 메운다. (조현나)

이곳에서는 작년 국제경쟁 대상작이었던 ‘천 명의 락커, 하나의 밴드’ 앙코르 상영이 이루어졌는데요, 300석 객석이 3분의 2는 찰 정도로 찾아오신 분들이 많더라고요. 참고로 레스트리 리솜 상영작도 무료 상영이랍니다. 의도치 않은 가성비 여행. 그런데 저는 이때부터 이미 체력이 너무 고갈되어서, 영화를 제대로 보지를 못했어요. 셔틀버스 시간 때문에 쫄려서 편의점을 계속 못 가니까 수분 보충도 안 되고, 당 보충도 안 되고… 졸고 있는 내 자신이 밉다… ^_ㅠ 제가 고른 영화인데, 도로시가 오히려 재밌게 봤다고 합니다. 이 영화 후기가 궁금하신 분은 도로시에게 ☞귓말☜ 주세요.

레스트리 리솜 -> 메가박스에서 환승 -> 비행장 무대로. 비행장 무대 와서야 받은 페스티벌 팔찌 & 저스틴 허위츠 콘서트 팔찌

비행장에 푸드트럭만 이용하러 나오신 제천시민들도 많았어요. 배고프니까 어찌나 맛있던지!

굿즈 살 생각은 없었는데, 영화제 배지를 수집하는 도로시를 보니 뭐라도 사야 할 것 같아서 가성비로 스티커 구입

토요일 일정의 마지막 스팟이었던 비행장 무대에 오니 그제서야 사람들이 북적북적한 것이 영화제 느낌이 나더라고요. 여러모로 무주 생각이 안 날 수가 없었는데, 무주에서는 등나무운동장이 메가박스 바로 옆에 있고, 굿즈샵이나 푸드존이나 부대행사장이 다 그 근처에 있어서 참 편했거든요. 사람들이 한 곳에 다 몰려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축제 분위기가 연출되었구요… 어쩌겠습니까 이곳은 제천인 것을! 부랴부랴 20분 만에 푸드트럭에서 저녁을 해치우고, 미리 예매해둔 저스틴 허위츠 콘서트에 입성하였습니다!

우천 때문에 취소될 뻔했지만 무사히 진행된 저스틴 허위츠 콘서트 저스틴 허위츠

미국 출생의 저스틴 허위츠는 하버드에서 작곡과 오케스트레이션을 전공했으며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모든 영화 음악을 작곡했다. ‘위플래쉬’(2014), ‘라라랜드’(2016), ‘퍼스트맨’(2018)으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크리틱스 초이스 등 유수 시상식에서 여러 차례 수상해 실력을 인정받았다. 저스틴 허위츠는 영화 ‘라라랜드’로 아카데미 시상식과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주제가상, 음악상을 동시에 수상했고,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 음악상을 수상했다.

초록과 도로시의 모든 불평을 잠재운 갓스틴 킹위츠의 공연

사실 공연 티켓값이 1장에 55000원이라, 예매하기 전에 고민이 많았거든요. 영화나 실컷 보는 게 낫지 않나 하고. 게다가 비 맞으면서 공연을 보게 될 상황이라 당일에도 괜히 예매했나 하는 생각을 했고요. 그런데 팝콘레터에 쓸 말이 별로 없을까 봐 예매한 나 자신… 아주 칭찬해… 팝콘레터 덕분에 1년치 귀 호강을 여기서 다 해버렸습니다! 저스틴도 저스틴이지만, 서울그랜드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재즈빅밴드 연주자분들의 실력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던… 제 이상형은 이제부터 관악기 잘 부는 남자랍니다. ^^ 그리고 개인적으로 ‘퍼스트맨’ 테마 연주가 정말 정말 좋았어요. 저스틴 허위츠가 직접 피아노 연주도 해줬다구요. (황홀)

뮤지컬 배우 민경아와 이충주의 듀엣 공연

그런데 제일 기대했던 ‘라라랜드’ 테마 공연에서 실망스러운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민경아, 이충주, 전나영, 이수정, 연지 리, 문은수 뮤지컬 배우들이 보컬로 참여했는데요. 전체적으로 연습이 부족했던지 가사 실수 같은 기본적인 실수가 너무 많아서 관객들은 다들 박성웅성웅성... 저스틴 허위츠 자기 전에 허공에 대고 화 몇 번 냈을 듯… 그리고 공연 중에 모기가 어찌나 많던지 과장이 아니라 양 다리에 20방 정도 물렸더라고요. 독한 모기인지 보라색으로 다 흉이 져서 반바지를 못 입고 있어요. ㅠ 어쨌든 나름의 좌충우돌은 있었지만, 하루의 피로를 다 씻어주는 아주 행복한 공연이었답니다.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가 되는 줄 알고 숙소에서 맥주나 한 잔 하려 했던 도로시와 나……

숙소 가는 택시가 안 잡혀서… 20분 정도 아주 깜깜하고 인적 없는 길을 쬐그만 여자 둘이서 걷는데 그때부터 너무 무서운 겁니다. 무주 때는 건장한 청년 윤프라도 있었지. ㅠ 어쨌든 힘을 내서 숙소까지 왔는데, 숙소 주인 曰…

“어머 미안해서 어쩌지… 방이 다 차 버렸는데…”

이유인즉슨… 7월에 미리 예약해 놓은 저희 방을 실수로 현장에서 먼저 온 다른 손님한테 팔아버린 겁니다. ㅠ 사장인간이 다른 숙소 구할 수 없겠냐 해서, 타지에서 온 우리가 여기서 뭘 어떻게 구하냐 따지니… 근처의 숙소를 새로 구해주긴 했으나 그 숙소는 바로…

따라라라라~~~~~~~(러브하우스 bgm)

김기덕 영화에서나 보던 여.관.방 되시겠다

진짜… 화장실을 한번 보셔야 하는데, 여러분의 심신안정을 위해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사실 제 갤러리 썩을까 봐 안 찍었어요) 기자 정신의 도로시는 심지어 옷장 위에서 의문의 주사기를 발견하는데… 누가 여기서 마약 한 거 아니냐는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정말 무서워서 잠을 못 자겠더라고요. 보기보다 곱게 자란 저 자신… 도로시 양의 허리를 끌어안고 겨우 잠든 힘겨운 밤이었습니다. 자, 내년에 제천 가실 분? 세 번 따라하십시오. 레스트리 리솜! 레스트리 리솜! 레스트리 리솜을 예약하자!!

그래도 사온 건 먹어야 해서 다 먹음. 메가박스 옆 빨간오뎅도 기억해 주세요*사진 속 도로시가 하고 있는 게임은 불법 사행성 게임이 아니라 보드게임입니다*

어떻게 잠을 자긴 했는데, 밤새 뒤척이느라 오전 영화를 놓치고 말았어요. ‘캘린더 걸즈’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꼭 보고 싶었는데. ㅠㅠ 이렇게 된 김에 아예 1시 영화를 예매해 놓고, 점심으로 햄버거 & 커피를 땡겼습니다. 그리고 여관 화장실이 너무 무서웠던지라, CGV에 와서야 제대로 세수를 했습니다. ㅎ 제천 CGV도 지은 지 얼마 안 된 곳 같았어요, 시설이 정말 넓고 좋더라고요. 2관에서 ‘낮과 달’이라는 영화를 관람했는데, 좌석이 리클라이너로 되어 있어서 너무 편하고 아늑했습니다.

낮과 달

감독: 이영아

Korea | 2021 | 112min | DCP | Color | Fiction

민희는 죽은 남편이 좋아하던 제주로 혼자 살러 온다. 제주에 와서도 상실감을 느끼던 민희는 이웃 목하, 그녀의 아들 태경과 가까워진다. 거침없고 당당한 성격의 목하는 민희에게 선뜻 다가오고, 민희는 목하의 아들에게서 왠지 모를 친근함을 느낀다. 민희의 죽은 남편과 목하, 태경의 관계가 드러난 후, 두 여자는 죽은 남편을 사이에 두고 대립하는 것처럼 보인다. 민희가 내성적이고 정적이라면 목하는 우렁차고 씩씩하다. 상반되는 성격의 민희, 목하를 연기하는 유다인, 조은지 배우의 에너지는 극을 예기치 못한 곳으로 끌어간다. (김송희)

처음에 작품 설명만 보고 서정적이고 아련한 감성의 이야기겠거니 싶었는데, 작품을 보고 나니 꼭 그렇지만은 않더라고요. 감정의 클라이맥스 속에서 의외로 튀어나오는 유머를 느낄 수 있는, 어디서 느껴보지 못한 묘한 매력이 있는 작품이었어요. Q&A 시간에 들어보니, 감독이 처음부터 의도한 장면이 아닌데 의도치 않게 관객들이 웃어준 부분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유다인 배우가 연기하는 민희가 외로이 궁지에 몰리는 상황 속에서 거의 광기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줄 때가 있었는데, 그 광기가 이상하게 귀엽다는 생각이 드는 광기라서 저절로 웃음이 나왔던 것 같아요. 그리고 어쩌면 저런 게 더 현실적인 것일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남편이 죽었다고 해서 하루 종일 울고만 있겠어요? 웃고 싶지 않아도 웃음이 나오는 순간이 있을 거고, 그 순간이 연속적으로 이어져서 삶이 되는 거겠죠.

10월에 개봉한다고 하는데, 기회가 되면 꼭 추천 드리고 싶어요! 감독님 자체가 엉뚱한 매력이 느껴지는 분이더라고요. 유다인, 조은지 두 배우의 열연도 인상적이었고요. 그래도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기대보다 훨씬 좋아서, 즐거운 기분으로 집에 갈 수 있었어요.

글을 다 써 놓고 보니 너무 불평불만 많은 사람이 되어버렸는데, 사실 이번 영화제에서 육체적으로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다음 날 정말 피곤하더라고요. ㅋㅋ 일단 8월 중순이니 한여름 아닙니까. 덥고 습하고 비까지 오는데 이동거리는 길고, 셔틀버스를 타야 되니 운신이 자유롭지도 않고, 비가 와서 버스가 연착되기도 하니 부랴부랴 택시를 타야 하고… 그렇게 되면 기분이 좋진 않더라고요. 주최 측에서도 비 때문에 정말 고생을 많이 할 것 같았어요. 실제로 일요일 야외 공연은 비 때문에 아예 취소되기도 했더라고요. 날씨는 누구의 탓도 아니지만, 뚜벅이 분들은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물질적 준비를 하시고 가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 경우에는 이미 제천에 도착했을 때부터 컨디션이 안 좋은 상태였고, 당일에 숙소 때문에 잠도 잘 못 자서 더 예민했던 것일 수도 있어요.

그래도 내년에 제천에 가신다면, 영화도 영화지만 메인 공연을 꼭 예매하시길 추천해요! 저스틴 허위츠 공연뿐 아니라 다른 공연들도 라인업이 꽤 화려하더라고요. 힙합, 어쿠스틱, 발라드 등 뮤지션들의 장르도 다채로웠고요. 클래식공연과 영화상영이 결합된 필름콘서트도 있었는데, 짧은 일정 때문에 보지 못한 게 아쉬웠어요. 내년에도 만약 저스틴 허위츠 정도의 임팩트가 있는 사람이 초청된다면…? 이런 고생고생 속에서도 또 올 것 같기는 합니다. 그만큼 공연이 좋았다는 거.

또한 영화 상영과 공연 외에도 포럼, 마스터 클래스, 공개 피칭, 영화음악아카데미, OST 마켓 등 음악영화와 영화음악에 관한 전문적인 프로그램이 다양해서, 이런 면에서 영화제의 내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영화음악인들에게는 그야말로 대체 불가능한 영화제. 영화 상영 후 바로 라이브 연주를 들려주는 ‘히든 트랙’ 프로그램도 이 영화제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기회였고요. 18회째 들어서는 영화제는 깊이 면에서 다르다고 느꼈던 이틀이었습니다.

저의 영화제 후기는 여기서 끝인데요, 어떻게 읽으셨을지 모르겠네요. 우당탕탕 그 자체인데, 같이 읽어 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 -)(_ _) 저는 다음부터 더욱 철두철미하게 준비해서 영화제를 방문해야겠다는 다짐을 남겼고요, 당장 9월에 또 다른 영화제에 기웃거릴 예정이랍니다. 어떤 영화제인지는 비밀~ (제가 다큐 특집 에디터인 거 아시죠?)

그럼, 조만간 또 즐거운 영화제 기행, 좋은 다큐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안녕~🍀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특집 발간으로 8월 다큐맛 특집은 쉬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