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시간 - 원테이크, 그리고 악인의 서사

안녕하세요, 영평🏃🏻‍♀️입니다. 실로 오랜만에 레터를 쓰다보니 민망 그잡채..😅이지만 오늘은 해야지 해야지 하고 미루어두던 넷플릭스 4부작 <소년의 시간>에 대해 짧게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사실 본지는 꽤 되었고 써야지 써야지 하다가 이제야 썼습니다...ㅎ...😩)

그...그럼 바로 시작! (인트로 쓰는법도 많이 잊었다고한다..차차 회복해볼게요🫠)

소년의 시간 - 원테이크, 그리고 악인의 서사

By 영평🏃🏻‍♀️

넷플릭스에서 4부작 영드를 공개했습니다. 국내에서는 <소년의 시간>이라는 이름으로 공개되었고 원제는 <Adolescence> (직역하면 사춘기, 청소년기, ~~즉 질풍 노도의 시기~~)입니다.

원제가 사춘기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에 하이틴 드라마로 생각될 수 있겠으나..메인 포스터 속 주인공의 눈빛이 심상치 않죠? 이 작품은 청소년들의 로맨스나 우정을 그려낸 하이틴 스토리가 아닌, 살해 혐의로 체포된 13세 소년 제이미와 주변 인물들을 따라가는 (꽤나 심각한) 범죄물입니다.

저는 사실 이 작품이 공개되자마자 '어어..!? #$%$^'하는 반응을 보였는데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제가 감독님의 전작들을 주의 깊게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잠시 감독님 이야기로 새보겠습니다.

필립 바란티니 (Philip Barantini): 배우에서 원테이크 전문 감독으로

작품이 심각한 편이니 사진은 활짝 웃으시는걸로 골라봤어요 감독님

이름 필립 바란티니, 1980년 영국 리버풀 출생. 특이점은 원래 배우로써 커리어를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2001년 HBO의 시리즈 <Band of Brothers>에 출연했던 이력이 있네요. (Wayne A. Sisk 역) 아래는 당시 모습입니다.

세월이여,,

그런데 그는 훗날 배우로써의 크레딧보다 감독으로써의 크레딧으로 더 주목받게되는 작품이 있었으니..그것은 바로 레스토랑 홀 뒤의 주방, 쉐프들의 살벌한 세계를 다룬 <보일링 포인트> 입니다. (2021년 작품)

여기도 <소년의시간>에 제이미의 아빠역으로 출연하는 Stephen Graham이 나옵니다. 둘은 거의 영혼의 단짝(?)

국내에서도 개봉을 했었는데요. 당시 이 작품 상영관을 찾기가 힘들어서 아주 먼 극장까지 갔다가 "헐 이거 머야 미쳤따 찢었따 !@#%%@#@ 멀리 오길 잘했다" 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영화 속 한 장면을 아래 첨부해보겠습니다.

<보일링 포인트> 내 한 장면. (쉪님 무서움 주의..거의 직내괴ㅠ 직장 내 괴롭힘 PTSD가 있으신 분들은 클릭을 금합니다.)

위 영상을 보셨으면 아마 이 장면이 원테이크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눈치채셨을거에요. 중간에 숏 사이즈가 변경되지 않죠? 카메라가 끊기지 않고 쭉 이어집니다. <보일링 포인트>는 러닝타임 92분이 하나의 숏으로 촬영된 작품입니다.

원 테이크 (One Take)기법: 하나의 장면을 중간에 끊지 않고 끝까지 한번에 촬영하는 기법. 액션/ 전쟁 영화 장르에서 특히 엄청난 몰입감과 생생함을 선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단점으로는 가령 20분짜리 장면을 원테이크로 찍는다고 했을때, 19분 57초에서 NG가 나면 처음부터 다시 찍어야한다..^^ 촬영감독의 부담이 (특히 허리쪽에 - 무거운 장비를 계속 장착하고 있어야하기에) 매우 커진다. + 배우들의 부담도 커질 것. (절대 NG를 내선 안돼..!)

좀 더 와닿으실 수 있게, 롱테이크(*)로 유명한 영화 <Children of Men>의 한 장면을 아래 소개해드립니다. 롱테이크/원테이크 기법이 전투/전쟁 장면에서 쓰일 때 어떤 느낌인지 감이 오실거에요.

(*)롱테이크(Long Take): 일반적인 컷보다 상대적으로 긴 시간 동안 끊지 않고 촬영한 장면. 고로, 원테이크보다 넓은 범주의 개념입니다.

롱테이크 ⊃ 원테이크
- 모든 원테이크는 결국 하나의 긴 롱테이크이지만, 모든 롱테이크가 원테이크 전체 영화는 아님.

00:09초 가량 숏 전환 후 쭉 이어집니다. 마치 내가 함께 전쟁터에 있는 느낌..약간 게임 같기도 하죠? 03:14 가량에는 카메라에 피까지 튀깁니다. 어우 생생해

5분 정도만 롱테이크로 찍어도 동선, 미술 등등 이것 저것 고려해야할 것이 많아 상당히 빡셀것입니다. 그런데 92분 러닝타임 전체를 끊지 않고 원테이크로 찍다니..<보일링 포인트>는 대학생 때 롱테이크 영화 찍겠다고 나댔다가 호되게 당했던 저에게 충공깽 그 잡채였던 것. 대체 언제 끊는거야? 어디야? 어딜 속인거야? 하는데 그대로 영화가 끝나더랍니다. 어안이벙벙좌가 되었던 영평...

<보일링 포인트>는 총 이틀에 걸쳐 4개의 테이크를 시도하였고, 그 중 3번째 테이크가 최종 개봉 버전이 되었습니다. 영화가 성공한 이후 BBC에서 2023년, TV시리즈로 각색된 시퀄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BBC의 시퀄 메인 트레일러. 영화 시점으로부터 6개월 후, 메인 쉐프가 변경된 이후의 이야기. 시리즈는 원테이크로 촬영되지는 않았다고하네요. 필립 바란티니가 1,2화를, Mounia Akl이 3,4화를 연출하였습니다.

소년의 시간 - 한층 더 복잡미묘해진 원테이크

그리하여 <보일링 포인트>로 일종의 커리어하이를 찍었던 필립 바란티니 감독이 2025년 <소년의 시간>으로 더 대담하지만 섬세하기도한 원테이크 기법을 선보입니다. (그 사이에도 몇 번의 작품 활동이 있었으나 본 레터에서는 분량상 건너뛰도록 하겠습니다.)

<보일링 포인트>가 레스토랑과 주방으로 동선이 한정되어있던 반면, <소년의 시간>에서는 훨신 더 넓은 범위의 로케이션에서 원테이크 기법을 선보입니다. 주인공의 집에서 경찰서까지, 경찰서 내부에서 층을 오르락 내리락하고 심지어 학교에서는 창문을 넘나들기까지 합니다. 공중으로 부양하는 드론샷도 있습니다. (그냥 진짜 온동네를 휘젓고 다니는...) 창문을 넘는 2화속 장면은 정말 와우!!!!모먼트였는데 마침 그 장면의 영상이 있네요.

<소년의 시간> 2화 중 일부. 도망치는 제이미의 동급생을 쫓아 카메라가 창문을 넘는다.

대체 어떻게..?싶었는데, 촬영 감독들이 서로 카메라를 넘겨주거나, 촬영 감독이 들고 있던 카메라를 바로 드론이나 기타 스테빌라이자 장비에 장착/탈착하는 방식으로 촬영되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습니다. 아래 공식 비하인드 영상을 함께 감상해보시죠.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00:33초 가량 장비에 달려있는 카메라를 집앞에서 대기하고있던 촬감이 이어받네요. 01:42 에서도 집에서 나온 촬감이 차 내부의 촬감으로 카메라를 건네줍니다. (and so on) 2화의 창문 넘나들기 매직도 이런식으로 촬영되었다고 합니다. 06:21 에서는 카메라가 드론에 장착되는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통상 원테이크 (혹은 롱테이크)로 촬영될 때 카메라를 들고 있는 촬영 감독이 뒷걸음질로 이동해야하는 구간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 보조가 함께합니다. (말그대로 부딪히거나 넘어지지 않게 뒤를 봐주는 역할)

흰색 반팔을 입으신 분이 한 손으로 촬영 감독의 등을 잡고 뒤를 봐주고있죠? (여러모로 롱테이크란 촬영팀이 매우 고생하게 된다는,,,)

그렇다면 대체 사운드는 어떻게 작업한것일까요? 위의 사진에서는 붐 오퍼레이터들이 보이는데, 위처럼 야외가 아닌 실내의 좁은 공간에서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장면에서는 분명 한계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모든 배우들이 별도로 마이크를 착용했다고 하네요. 아마 기본적으로 개별 마이크를 활용하되, 공간적으로 허용이 가능한곳들은 붐맨들도 투입되었던 듯 합니다.

지금까지 필립 바란티니의 업그레이드된 원테이크에 대해 감탄해보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사실 <소년의 시간>은 기술적 완성도 외에도 주목할만한 지점이 있습니다. 바로 '악인의 서사를 어떻게 다룰것인가'에 대한 작품의 메시지입니다.

13살 소년, 정말 살인자가 되었는가

시작하자마자 살해 혐의로 체포되는 주인공 제이미는 13살입니다. 1화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제이미의 모습은 도저히 누군가에게 해를 끼쳤을 것 같지 않은 어린아이이자, 아침에 갑자기 들이닥친 무장 경찰을 몹시 두려워하는 자그마한 체구의 소년입니다.

대체 이 무해한 얼굴로 무슨 짓을 한것인가..?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때문에 관객 입장에서는 소년의 여리한 외모와 체구에 어쩐지 모를 부조화를 느끼며 '누가 범인인가? 저 소년은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것인가?'에 대해 초점이 가기 마련인데, 사실 <소년의 시간>은 '누가 범인인가'를 찾아내는 작품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왜 이런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을까'에 대해 여러가지 시각을 제시하는 이야기이죠.

1화는 제이미가 체포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혐의를 부정하는 제이미와 갑작스런 소란에 혼란스러워하는 가족들의 모습, 그리고 용의자 체포 프로토콜에 따라 단호하게 움직이는 경찰의 모습을 지켜보며 '정말 제이미가 범인일까'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됩니다.

2화는 경찰의 시점을 따라갑니다. 2화부터 본격적으로 사회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무너진 공교육과 어른들은 알지 못했던 청소년들의 온라인 문화와 사이버불링, 그리고 잘못된 온라인 문화의 폐해가 제시됩니다.

3화는 심리학자와 제이미의 대면을 다룹니다. 1:1 상담을 보여줌으로써 이 에피소드에서는 제이미의 내면에 대해 더 파고듭니다. 사회에서 요구되는 남성성과 그에 대한 제이미의 인식, 내재된 폭력성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4화는 일종의 연좌제를 겪고 있는 제이미 가족의 시점을 보여주는데요. 최종 판결이 나지 않았음에도 살해 혐의로 기소된 가해자의 가족이 어떤 일들을 겪으며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를 그려냅니다. 양육자로써의 부모의 역할과 고뇌, 가해자의 가족을 향하는 사회적 시선과 더불어 가짜 뉴스나 거대 음모론 같은 잘못된 온라인 문화에 대해서도 살짝 언급합니다.

악인의 서사

많은 범죄물에서 살인자와 같은 악인에 대해 서사가 부여될 때 사용된 방식은 크게 두 가지 였습니다. 불행한 유년 시절, 혹은 아묻따 born to be 싸이코패스 (순수악). 전자는 폭력적인 아버지 혹은 어머니로 인해 대물림 된 폭력성, 가난, 고립, 등등으로 설명되었으며 후자는 이유가 없는 선천적인 기질으로 설명되었을텐데요. 불행한 유년 시절 서사의 경우, 가정에서 노출된 폭력에 대해 교육 기관에서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는 사회적 책임도 암암리에 명시되긴 하지만, 대부분은 가정의 책임으로 귀결됩니다. 후자는 사실상 장르적으로 활용된 설정이 많았던것으로 생각되네요.

<소년의 시간>의 경우 이 틀에서 벗어나 여러 가지의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비극적인 사건에 100% 책임이 있는 곳은 없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건 100% 부모의 책임도 아니며, (실제로 이 작품에서 그려지는 부모의 모습은 지극히도 평범합니다.) 무너진 공교육만의 책임도, 무분별한 온라인 문화의 탓만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각 인물들의 시점에서 서사를 이어나가며 종합적인 사회 문제에 대한 시각을 일깨워줍니다.

그리하여 <소년의 시간>이 악인에게 서사를 부여한 방식은 조금 특별합니다. 이 작품 속 악인에게 부여된 서사는 한 가지의 요소라기 보다는 너무 복잡해져버린 현대 사회와 그 총체적 균열 속 작은 틈들의 집합체가 아니었을까요.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저는 얼마 전에 읽었던 책 <악인의 서사>속 박혜진 문학평론가님의 글이 떠올랐습니다. 아래 또다른 넷플릭스 드라마 <다머-괴물: 제프리 다머 이야기>와 관련하여 평론가님께서 <악인의 서사>에 기고하신 내용중 일부를 발췌합니다.

"작가가 선택한 표현 중 '공감'이라는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해할 수 없는 폭력을 행사한 범죄자, 흔히 사이코패스라 말하는 극악무도한 사람, 요컨대 악을 다루는 서사의 불문율이 바로 공감에 있기 때문이다. 악에 대해 쓸 때 작가는 악인에 공감하지 않아야 할 뿐만 아니라 독자로 하여금 악인에 공감하지 않도록 써야한다는 내면의 소리를 듣는다. 공감은 악을 미화한다거나 악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를 대상화한다는 혐의에서 벗어나기 힘든 탓이다.

그러나 이야기의 기본 속성이자 이야기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공감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나쁜 세상이 나쁜 사람을 만들었다.'는 다머 서사는 다머에 대한 공감을 전제한다. 그의 성장 배경이 그의 악마성을 키웠다는 논리는 작가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다머를 안타깝고 안쓰럽게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근거가 된다. 안쓰러움과 안타까움이 공감의 동의어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안쓰러움과 안타까움은 공감의 중요한 속성이자 공감으로 가는 입구이다. 따라서 "그에게 공감하는 건 곤란"하다는 작가의 말은 사실상 모순이며 그 모순은 내내 작가의 심경뿐만 아니라 독자의 심경마저 복잡하게 한다.

다머 이야기가 책으로 나온 시점과 영상으로 나온 시점 사이 10년이 흘렀다. 그 사이 다머 서사를 바라보는 관점에는 변화가 없다. 여전히 우리가 악을 말하는 방식이 '사실상 모순'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면, 공감이라는 강력하고도 불완전한 기준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악에 대해 말하는 우리의 방식이 모순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는 공감의 유무에서 벗어난 악의 서사들이 필요하다."

-박혜진, 「악이 동굴에서 나올 때: 오늘의 한국 소설 속 살인자들」, 『악인의 서사』, 돌고래

<소년의 시간> 은 악인에게 단 하나의 명확한 서사를 부여하지는 않을지언정, 관객이 공감이나 안타까움 같은 감정을 느낄 여지 자체를 차단시키는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그 감정이 어떤 인물을 향하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가능성이 있죠. 관객이 느끼는 감정은 꼭 악인을 향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미 이 작품을 감상하신 분들은 어떤 인물에게 어떤 감정을 (공감, 연민, 분노,안타까움 등) 느끼셨는지 되돌아보시고, 곧 감상하실 분들은 해당 작품이 공감의 유무에서 벗어난 악의 서사에 해당되는지에 초점을 두면서 보시면 조금 더 흥미롭게 보실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더불어 인용된 도서 내용이 조금 더 궁금해지신 분들은 돌고래 출판사에서 출간된 <악인의 서사>도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