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이들

살다 보면 종종 떠돌이들을 마주친다

2022.10.20 | 조회 3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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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무슨 색깔로 사랑을 꿈꾸었을까

너에게 하고 싶은 말들

220811 씀
220811 씀

 

살다 보면 종종 떠돌이들을 마주친다. 그들은 개일 때도 있고, 고양이일 때도 있으며 어쩌면 사람일 때도 있다. 종종 떠돌이가 떠돌이와 마주치기도 한다. 떠돌이 개. 떠돌이 고양이. 떠돌이 사람. 개와 고양이는 대부분 주인에게 버려져서 떠돌이가 된다. 사람은 자신을 잃으면 떠돌이가 된다.

나도 한때 떠돌이였다. 사실은 지금도 떠돌이 같다. 나는 언제부턴가 삶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내가 가고 싶었던 길이나 바라던 모든 것들이 희미해졌다. 그러다가도 누군가 나를 강제로 작동시키면 또 그런 대로 떠돌지 않으며 살았다. 구속받는 삶이 싫다가도 이러지 않으면 나도 스스로를 움직일 수 없음을 알기에 순순히 따랐다. 타들어가는 태양빛 아래 매일 널 보러가던 그때도, 차가운 눈발이 날리던 하늘 밑을 네 뒤를 쫓으며 쏘다니던 그때도, 어두컴컴한 밤 사이에서 다 헤진 인형 뱃속을 파헤치던 그때도. 마지막으로 네가 날 외면하던 그때까지도 나는 떠돌지 않았다. 죽고 싶다는 마음은 언제나 갖고 있었지만 그토록 단호하게 죽고 싶었던 적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망설임 하나라곤 없는 생각들이 나를 삼키고 끝내 약을 입에 털어넣으려던 순간 나는 소리내어 울었다. 마침내 죽을 수 있다는 생각과 동시에 죽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이 밀려 들어왔다. 3분 정도를 내리 울고나서야 약을 먹을 수 있었다. 비틀거리며 집에 돌아와 그대로 10시간을 자고 일어나는 동안 돌 사이에 빠졌던 왼쪽 운동화는 여전히 축축했고 나도 여전히 살아있었다. 비몽사몽한 의식 사이를 걸어나가 먹구름이 드리운 밤하늘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죽지 못했구나. 그 흔한 주마등조차 보지 못했다. 나는 죽는 일까지 실수 투성이였다.

그 일 이후 나는 하루 종일 잠만 잤다. 매일매일. 언제 한 번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죽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하는 삶과 사 사이의 망령이 되어버렸구나. 분명히 나는 살고 있는데 살아 있는 것같지 않았다.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면 전등이 너무 눈부셨다. 온종일 방을 새까맣게 하고 잠만 잔 날도 수두룩했다. 만날 사람도 나갈 일도 없기에 씻을 필요도 없었고, 하루에 두끼나 먹으면 다행이었다. 나는 나에게 돌아오지 못하고 떠돌고 있었다. 나는 종종 내가 누구인지 까먹었다. 내가 나를 인식할 수 있는 정보라곤 얼굴과 이름 뿐이었다. 그 외엔 와닿지 않는 말들, 이야기들. 내내 잠만 자다가 잠깐 새벽에 의식이 돌아올 때면 소리 죽여 울었다. 이 모든 일을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한바탕 울고 나면 다시 눈을 감고 잤다. 약도 안 먹는데 잠은 잘만 잤다. 잠깐 일어나 휴대폰을 하다가도 할 게 없어지면 다시 자고, 배고프면 일어나 시리얼 한 번 먹고 다시 자고. 어떤 것도 삶이라고 볼 수 없는 나날들.지금도 나는 여전히 떠도는 것만 같다. 떠돌이와 떠돌이가 마주치는 일. 그러나 그 개는 날 마주친 적이 없다. 그는 내 눈을 마주 본 적이 없으니까. 그가 사라진 자리에 서서 그의 시선을 흉내내본다. 고요한 풍경을 바라보며 그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여전히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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