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녁 무렵 때론 전생의 사랑이 묽게 떠오르고 지금의 내게 수련꽃 주소를 옮겨놓은 누군가가 자꾸 울먹이고
내가 들어갈 때 나가는 당신 뒷모습이 보이고 여름 내내 소식 없던 당신, 창 없는 내 방에서 날마다 기다렸다 하고
2. 위 페이지만 오려 내려 했는데 아래 페이지까지 함께 베이고
나뭇잎과 뱀그물, 뱀그물과 거미줄, 거미줄과 눈동자, 혹은 구름과 모래들, 서로 무늬를 빚지거나 기대듯 지독한 배신 밖에는 때로 사랑 지킬 방법이 없고
3. 그러므로 당신을 버린 나와 나를 버린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청순하고 가련하고
늘 죽어있는 세상을 흔드는 인기척에 놀라 저만치 달아나는 백일홍의 저녁과 아주 다시 많이 태어났는데도 외롭다고 내게로 와 겹치는 당신의 무릎이 또한 그러하고
✍️ 시인 소개
1959년 6월 24일 경기 부천에서 태어났다. 198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비망록'이 당선되었으며, 2005년 노작문학상을 수상했다. KBS-1FM '출발 FM과 함께' 담당 작가로 일하고 있다. 2010년에는 서정시학작품상을 수상하였다. 시집으로 '쓰다 만 편지인들 다시 못 쓰랴', '이기적인 슬픔들을 위하여', '쉬잇, 나의 세컨드는', '행복한 심리학' 등이 있고, 사진에세이로 '바다, 내게로 오다', '막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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