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에 우린 좋았어요 아무것도 오지 않았죠 비도 눈도, 매 주 한 번씩 과일과 채소를 배달해 주던 사람도, 다음 주말엔 오겠다고 전활 걸어 온 이모나 고모, 삼촌들도 깊은 곳도 아니었는데 우린 꼭 그 숲에 갇힌 사람들처럼 식량을 아끼고 전기를 아끼고 수도를 아끼며 지냈어요 아버지와 동생들이 산책을 나가고 나면 이제는 쓰임이 없는 우물 앞에 서서 당신과 난 꼭 물이 차오르진 않았나 확인을 했죠 그건 우물이 아니라 깊은 덫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우린 나중에 이야기했어요 보이지 않는 저 깊은 곳에서 우리가 본 적 없는 아름다운 동물들이 쓸쓸히 죽어 가고 있을지 모를
여름이 한창인데도 당신은 겨울을 걱정했어요 우리의 모든 것이 너무 얇지 않느냐고 나는 꼭 성인처럼 당신께 말했어요 무심해야 단단해질 수 있는 거예요 아버지는 동생들과 돌아온 저녁이면 가방을 풀어 몇 가지 열매들을 꺼내 놓으며 그날 본 길들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북쪽의 자작나무 숲을 오랫동안 바라보면 길이 여러 갈래로 변하는 착시가 생긴다든지, 남쪽 관목 숲으로 난 길의 흔적은 바다 방향으로 흐른다든지, 그런 것들을 몰라도 우린 언제든 여기서 나갈 수 있다고 당신은 말하곤 했죠 아직은 모든 것이 남아 있는 여름
그 무엇인가 올 것도 같았는데 당신은 단지 비를 기다렸나요 전설처럼 이 숲에 남아 쓸쓸해지고 있다고 생각했나요
아버지가 오래 다듬어 놓았던 길로 걸어 나가서 수북한 식량들을 가지고 돌아왔을 때 생각했어요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다고 모두가 단단해져 가는 동안 오로지 엷은 피부의 당신만이 이토록 수북하게 마음을 들여 이 여름을 연장하고 있다고 어느 날 꾼 꿈속에서 우물 속으로 들어간 당신은 비밀을 발견한 것처럼 저 깊은 바닥에서 외쳤죠 우리의 숲은 끝나지 않는 것이란다, 끝나지 않는 동안 숲이야, 잠에서 깨었을 때 처마에서는 고여 있던 빗물이 툭툭 떨어지고 있었어요
젖은 땅에 선 당신의 얼굴 그해 여름이었어요 좋았다고 이야기하게 될,
✍️ 시인 소개
김이강 시인은 2006년 겨울 《시와세계》로 등단 후 2012년에는 첫번째 시집인 『당신 집에서 잘 수 있나요?』를, 2018년에는 두번째 시집은 『타이피스트』를 출간했습니다.
💭 한마디
폭우가 쏟아져 설령 우리의 숲이 수몰된다 할지언정 눈을 감으면 숲은 언제나 그 자리 그 모습 그대로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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