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14] 🌻 귀로 듣는 에어컨 세 곡

한 주도 잘 지내셨나요? 숑🌻입니다. 하반기 첫 번째 목요일에 부치는 레터입니다. 2025라는 숫자를 유독 낯설게 느끼며 올해를 시작한 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절반이 흘렀네요. 구독자 님의 상반기는 어땠나요? 저는 어느 해부턴가 상반기의 절반 시점마다 친구들과 모여 가볍게 상반기 결산을 나누고 있어요. 연말 결산에 할 법한 올해의 영화, 책, 순간 같은 것들을 상반기 여섯 달 기준으로 떠올려 보는 거죠. 기운차게 시작한 새해부터 설레는 봄과 초여름까지 열중했던 것들의 목록을 차근히 톺아 볼 거예요.

한편으로 무더위와 습도가 엄청난 나날입니다. 이 어마어마한 열기를 온몸으로 체감하던 어느 날 진지하게 걱정이 밀려들더라고요. 아마 이 더위가 절정의 위용을 자랑할 8월 초에 저는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 가는 운명이니까요... 이 레터를 읽으시는 분들 중에도 저와 비슷하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분이 계시겠죠. 뭐 펜타포트가 안 더웠던 때가 또 있나, 여름인데 당연히 덥지! 하는 마음으로 의연하게 그날을 기다려 보아요. 이제 한 달 남짓 남았군요.

페스티벌처럼 굵직한 이벤트를 달력에 점으로 찍어두면 점과 점 사이를 잇는 일상의 선들이 조금은 가뿐해집니다. 여전히 업무가 어렵고 바빠 평일에는 대개 머리를 쥐어 싸맨 채 보내고 있지만 결국 시간은 정직하게 흐를 테니까요. 이벤트의 그날이 더 즐거워지기 위한 연료로 여기며 하루하루의 징검다리를 착실히 건너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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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ry Wong - Starship Syncopation

사실 요즘 음악을 자주 듣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더워진 어느 날부터 집에서 지하철 역까지 걷는 잠시의 시간도 숨 참고 물에 들어가듯 날씨를 견디며 걷기 바빴다.(뚜벅이의 애환!) 역시 즐거운 음감 생활도 기본적인 생존 조건이 갖춰져야 가능한 건가. 그런 나날이 쌓일수록 아쉬워졌다. 꼭 음악을 자주 듣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하루하루 감성이 메말라 가는 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 휴일 아침 이 곡을 우연히 들었다. 앨범 자켓부터 짜릿한 점프 자세로 일렉 기타를 연주하는 우주 비행사, 코리 웡(Cory Wong)이라는 낯선 이름부터 왜인지 요즘의 메마른 기분이 끌어 올려질 것처럼 좋은 예감.

코리 웡은 2017년 데뷔한 미국의 기타리스트다. 나는 뒤늦게 알았지만 알고 보니 요즘 제일로 잘 나가는 '펑크 재즈' 뮤지션이라고. 작년 서울 재즈 페스티벌에도 초청되어 뜨거운 환대를 받았다. 펑크 재즈라는 장르가 낯설지만 음악을 몇 초만 들어봐도 단박에 이해된다. 그야말로 펑키하고 재지하다. [Starship Syncopation]은 앨범 전체가 기타와 오케스트라의 연주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Syncopation'이 무슨 뜻인가 하니 음악 용어로 '비정형적인 당김음'이라 한다. 기타 사운드가 웅장한 오케스트라와 음표 사이를 자유로이 횡단한다. 마치 드넓은 우주를 가로지르는 우주선처럼. 들썩들썩 흥겹고 시원하다. 이만한 흥이라면 날씨를 견디고 그저 걷는 쪽보다는 음악을 듣는 편이 훨씬 생존에 유리할 것만 같다.

🌻 FREDERIC - Oddloop

더운 날엔 역시 느릿하게 등줄기를 흐르는 땀방울 같은 곡보다 스프링쿨러처럼 음정이 활기차게 흩뿌려지는 음악이 끌린다. 가만히 앉아 감상하기보다 락 페스티벌 스탠딩 존에서 아무렇게나 팔다리를 뻗치고픈 흥겨운 무드가 좋겠다. 그럴 때 프레데릭(FREDERIC)의 노래가 제격이다. 프레데릭은 2009년 데뷔한 일본 고베 출신 락 밴드다. 데뷔한 지 5년차가 됐을 무렵 바로 이 노래 <Oddloop>을 기점으로 본격 알려졌다. 도입부와 동시에 끝날 때까지 충실하게 신난 이 노래는 제목부터가 그렇다. オドル(Odoru) + ループ(Loop), 즉 춤을 계속 반복한다는 의미니까. 뮤비 속 두 여성의 중독적인 춤사위도 더해져 2014년 발표된 노래인데도 유튜브 조회 수가 1.7억 회에 달한다.

프레데릭의 공연을 볼... 뻔 한 적이 있었다! 작년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에 갔을 때 이들의 무대를 멀찍이서 지켜봤다. <Oddloop>의 라이브가 궁금하면서도 체력이 방전 상태라 쿨하게 포기했는데, 미치도록 흥겹고 재밌었다는 후기를 뒤늦게 듣곤 땅을 치고 후회했다. 이토록 무더위에 잘 어울리는 밴드란 걸 알았더라면! 언젠가 다시 페스티벌 라인업에서 만난다면 전생의 체력까지 긁어다 즐길 테다.

🌻 초록불꽃소년단 - 동경모텔

개인적으로 더운 날엔 누군가 대신 소리쳐 주는 음악을 듣고만 싶다. (너무 세 곡 연속 덥다는 얘기 뿐인가...?) 목으로 소리를 지르든 악기로 지르든 상관없다. 원색적으로 느껴질 만큼 날것의 소리에서 차라리 대리만족을 느낀달까. 최근 알게 된 초록불꽃소년단은 나의 그런 니즈를 충족시킨 펑크 밴드다. 단순하게 신나면서도 어딘지 서글프고 처절한 펑크 록이 난 왜 이리 좋을까. 수백 겹으로 늘 복잡한 머릿속을 말끔하게 다림질해주는 듯한 쾌감이 있다. '네온사인보다 빛나는 나의 청춘, 원나이트보다 불타는 나의 청춘'이라니 노랫말부터 얼마나 직선적인가. 진심을 다해 부르짖는 솔직함, 어딘지 찌질하고 불쾌한, 그래서 더욱 청춘의 어느 순간을 닮아 있는 음악. 남은 여름의 무더운 나날에도 이들의 음악에 꽤 자주 기대게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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