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9] 🥦 애정하는 가수 특집 - 이소라 편

반갑습니다, 콜리🥦입니다. 어느덧 12월에 접어들었어요. 시간 참 빠릅니다. 퇴근이나 주말을 기다릴 때는 시간이 더디게 느껴지곤 하는데 지나고 나서 보면 바쁘게 보냈든 지루하게 보냈든 모두 순식간에 흘러가버린 것만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PRIIISM이 첫 인사를 드린 지도 반 년이 지난 것 있죠! 로이🍄, 숑🌻과 얼굴을 맞대고 뉴스레터를 어떻게 꾸려갈지 의논했을 땐 날이 슬슬 더워져서 반팔 티셔츠를 입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코트냐 패딩이냐를 고민하고 있네요. 더 추워지면 단박에 패딩을 걸치고 목도리와 장갑까지 챙겨 꽁꽁 싸매고 다니겠죠.

구독자 님은 연말을 어떻게 보내실 예정인가요? 가까운 지인들과 일 년 동안 수고했다며 서로 격려하는 자리를 가지실까요. 연말 연시 분위기에 힘입어 연락이 뜸했던 지인과 안부를 나누는 것도 좋겠네요. 거기에 더해 저는 한 해를 돌아보고 결산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다이어리를 보면서 '올해의 무엇'을 꼽습니다. 올해의 음악, 책, 영화, 맛 같은 것들이요. 또 이것들을 누구와 함께했는지 되짚어보고 특히 고마운 이들에게 엽서를 부쳐요. 혼자만의 시간이면서 누군가와 연대하는 시간입니다. 이렇게 하면 흘러가는 시간 속에 기억을 조금이나마 붙들어 놓을 수 있더라고요. 올해도 나홀로 시상식을 준비하고 있답니다.

애정하는 가수 특집 마지막을 맡게 되었습니다. 김동률과 9와 숫자들을 거치는 동안 저는 누구를, 어떤 곡을 소개할지 고르는 데 무척 애를 먹었어요. 어제 겨우 내린 결정을 오늘 '다시' 고민하길 반복했고, 어느 뮤지션을 다루자며 가졌던 '높은 마음'이 다음 날이면 흔들렸습니다. 그 고민의 끝은 이소라입니다. 구독자 님은 이소라 하면 어떤 느낌이 떠오르나요? 저는 다시 보게 되기 전까지 그에게 선입견을 갖고 있었어요. 슬픈 발라드만 부르는 줄 알았습니다. <바람이 분다>, <제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 같은 곡만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 제 인식에 반전을 준 곡부터 가슴 따뜻해지는 곡, 삶이 고달플 때 위로가 되는 곡을 준비했습니다. 만나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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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하루

음악 경연 프로그램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승부를 봐야하는 프로그램 특성상 뮤지션이 자기 색깔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의상부터 남다르다. 단독 콘서트에서도 입지 않을 것 같은 화려한 의상을 심심찮게 본다. 무대를 앞둔 가수의 모습은 자못 비장해 보이기까지 하다. 클라이맥스에서 곡조가 바뀌더니 터져나오는 고음은 거의 클리셰다. 그럴 때면 나는 가수의 노래가 아니라 목에 더 집중하게 되고 만다. 핏줄이 터질 것 같아서.

​하지만 모든 가수가 그런 음악에 어울리는 건 아니다. 그런 음악만 좋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과잉은 오히려 부담스러워서, 가수가 쏟아내는 감정에 내 마음은 감히 공감하지 못한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음악 경연 프로그램을 즐겨 보지 않는다. 그렇다고 음악 경연 프로그램의 매력을 아주 모르지는 않는다. 그런 방송 덕분에 시대가 맞지 않아서, 가요 프로그램에 나오지 않아서 잘 알지 못했던 좋은 가수를 발견하곤 한다. 내겐 이소라가 그런 경우다. 슬픔, 우울, 비련, 심지어는 절규. 다시 보게 되기 전까지 가수 이소라에 가지고 있던 인상이었다. 

이소라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 보기 좋게 깨진 것은 2011년 방영된 MBC <나는 가수다>를 통해서였다. 임재범, 김건모 등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대거 출연해서 방송 때마다 난리였다. 내가 본 최고의 무대는 이소라의 <나의 하루>였다. 박정현의 알앤비 원곡에 재즈 감성을 덧입혀 소화했다. 낮은 점수를 받으면 바로 탈락하는 무대에서 이토록 여유롭고 우아하게 노래하다니! 클라이맥스에 채 도달하기도 전에 그에게 반해버렸다. 어떤가, 이소라의 우아한 사랑 노래에 매력을 느꼈다면 <그대와 춤을>도 꼭 들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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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ck 3

이소라 노래를 찾아 듣기 시작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곡 중 하나가 <Track 3>이다. 곡 시작부터 무언가 달랐다. 앞서 말했듯 <나는 가수다>로 다시 보게 됐다고는 하나 그때까지만 해도 이소라 노래에서 나는 대체로 방어적이고 웅크린, 그러면서도 상대방의 손길을 바라는 것 같은 뉘앙스를 받았다. <Track 3>은 그렇지 않았다. 따뜻하고 모난 데 없이 동그랬다. 먼저 손 내밀어 보듬어주려는듯 포용적이었다. 이소라에게 포근함이라니, 그런데 너무 좋잖아!

이소라 음악을 말할 때 가사를 빠뜨릴 수 없다. <바람이 분다>가 시인들이 꼽은 가장 아름다운 노랫말로 선정됐던 것처럼 이소라는 걸출한 가수이면서 동시에 빼어난 작사가이다. 곡 분위기에 걸맞게 <Track 3>은 노랫말도 따스하다. 세상 다정한 목소리로 “사랑이 그대 마음에 차지 않을 때 속상해하지 말아요”란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에서 "내 모든 걸 다 걸겠어 / 끝도 없는 사랑을 보여주겠어"라며 처절하게 우는 모습과 사뭇 다르다.

말하자면 <Track 3>은 MBTI E(외향형) 느낌의 곡이다. 이소라는 매우 I(내향형)일 것 같지만 I든 E든 그건 정도의 차이일 뿐 누구에게나 내향적인 면과 외향적인 면이 공존할 것이다. 그러니까 <Track 3>은 이소라 풍의 외향형 곡이랄까. 이 곡은 공연장에서 유난히 빛을 발한다. 이소라 혼자 부르지 않는다. 건반의 이승환을 비롯하여 모든 세션들이 함께 부른다. 쑥스럽고 어색한 모습이 나오면 이소라도 관객도 다른 세션들도 얼굴에 빙긋 미소가 번진다. 공연장에 훈훈함이 감돈다. 요즘 그 공기가 유난히 그립다, 시절이 시절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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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별

버텨야 할 때가 있다. 왜 이러는지 이유도 알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것도 알지만 삶이 버거울 때 말이다. 그런가 하면 까닭 없이 일상이 흔들릴 때도 있다. 몸과 마음이 어지러워진다. 이제 제법 단단해졌다고 여겼는데 또 한번 속절없이 무너지려는가 싶을 때면 다 내려놓고 어디 도망가고 싶어진다. 그러나 현실은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결제일이 엄습해오는데 통장 잔고는 가소로우니 이번 월급도 공중분해 꼴을 면치 못하겠다. 이놈의 밥벌이.

그럴 때면 도망은 못 가더라도 어디엔가 기대고 싶다. 사람의 체온만큼 위안을 주는 것이 없는 것 같다. 강아지나 고양이 등 반려동물도 좋겠다. 어쩌면 사람보다 더 힘이 될지 모르겠다. 산책도 좋다. 나무와 풀, 물 또는 행인들을 배경 삼아 걷는 것도 마음의 평화를 되찾는 데 효능이 있다. 음악 또한 믿음직한 선택지다. 이소라 노래의 중심 소재는 단연 사랑이지만, 우리네 삶을 다룬 곡도 앨범마다 실려 있다. 지치는 날 나는 재생 목록에 이소라 노래를 꼭 한두 곡 담는다.

​<난 별>은 반짝이는 별빛을 표현한 듯 한 기타 연주로 문을 연다. 이윽고 이소라가 나직이 노래한다. 마치 주술을 거는 것 같다. 마음이 괴로울 때 나는 이따금 하늘을 바라보곤 하는데 노랫말을 보면 이소라도 그런가 보다. 육중한 베이스와 드럼은 자칫 무거울 수 있는 곡을 장쾌하게 이끈다. 아득하게 곡이 끝맺을 때면 내가 우주의 미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나를 괴롭히는 근심도 조금은 가벼워진 느낌이다. 보다 직접적으로 일상의 버거움을 노래하는 곡으로 <Track 9>도 있다. 놓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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