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3] 🥦 가을 하늘 공활한 요즘에는 이런 곡 어떤가요

반갑습니다, 콜리🥦입니다. 시월초였나요, 아직 여름이 완전히 가시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최저 기온 1도를 찍은 적이 있었죠. 급작스러운 겨울 맛에 안 그래도 짧은 가을이 올해는 아예 지워지려나 싶더니만 다행히 요 며칠은 완연한 가을 날씨입니다. 청명한 하늘이 바라만 봐도 시원하네요. 한낮에 쏟아지는 햇볕을 그대로 맞기엔 약간 더운가 하면 그늘에선 좀 쌀쌀하게 느껴집니다. 구독자 님은 가을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이번 PRIIISM에선 탁 트인 가을 하늘처럼 시원한 느낌이 드는 곡들을 담아봤습니다. 가을에 담긴 시원함은 여름철 에어컨 바람에서 느껴지는 시원함과는 분명 다르죠. 가을의 시원함은 한결 차분하고 맑은 느낌입니다. 끈적했던 여름날 공기가 어느새 사늘해지기도 했고요. 해가 진 밤이면 다가올 겨울에 대한 힌트라도 주듯 꽤 춥습니다. 일교차가 크니 모쪼록 건강 관리 유의하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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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ric Clapton - You Were There

매년 건조주의보가 발효되는 것처럼 가을은 산불 조심해야 하는 계절이지만 아침만큼은 은근히 습하다. 서리와 이슬 때문일 것이다. 출근길 걸음을 조금만 늦추면 거리의 이름 모를 풀들에 맺힌 앙증 맞은 물방울을 볼 수 있다. 말은 이렇게 하면서 막상 오늘 출근길도 회사로 향하기 바빴다. 햇빛은 어땠는지, 구름은 있었나, 단풍은 얼마나 들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발걸음과 마음에 여유를 줄 노래로 선곡해서 출근하면 그제서야 주변이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새벽 이슬의 사늘함과 햇볕의 따스함이 공존하는 아침,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의 <You Were There>는 이럴 때 듣기 좋은 곡이다. 묵직한 베이스 드럼은 심장 박동 같고, 이펙터를 물리지 않아 깨끗한 일렉트릭 기타는 무언가 피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라,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에 퍽 어울린다. 그래서인지 출근길에 <You Were There>를 들으면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것처럼 지루했던 출근길이 다르게 보인다. 매일 같이 보던 풍경이 조금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야드버즈(Yardbirds), 크림(Cream), 데렉 앤 도미노스(Derek & The Dominos)를 거쳐 솔로 뮤지션으로 활동하는 지금까지 에릭 클랩튼 하면 '기타'다. 그런데 <You Were There>에선 기타 소리가 절제되어 있다. 느릿한 박자에 맞춰 음악을 이루는 구성 요소 역할에 충실한다. 2절이 끝나도록 그렇다. 이 정도면 절제가 아니라 배제 아니야? 크림 없는 크림빵에 배신감을 느낄 때쯤, '퉁퉁 퉁둥둥' 하는 드럼에 이어 비로소 연주가 시작된다. 말이 필요 없으니 그냥 감상하자. 절경이고요. 신이 내린 선물이네요.

🥦 Joe Satriani - If I Could Fly

그건 오해다. 빛나는 두상과 선글라스가 주는 강렬한 인상 때문에 조 새트리아니(Joe Satriani)를 헤비메탈 기타리스트로만 봤다면 그건 오해다. 사실 내가 그랬다. 에릭 클랩튼이 블루스 기타의 신이라면 조 새트리아니는 전천후다. 데뷔 초에는 재즈 기반 기타리스트로 분류됐으나 이후 블루스, 록, 메탈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특히 90년대초 리치 블랙모어(Ritche Blackmore)가 딥 퍼플(Deep Purple)을 탈퇴했을 때 그 대신 1년 넘게 투어를 함께했고 정규 멤버 제안까지 받았다 하니 그 실력을 대강 짐작할 수 있겠다.

조 새트리아니는 장르뿐만 아니라 연주 주법이나 사운드 연출 측면에서도 장인 소리를 듣는다. 그리하여 기타 연주자들의 스승, 교과서로 불리는데, 여기서 말하는 연주자엔 프로 뮤지션까지 포함된다. 그의 제자로 메탈리카(Metallica)의 커크 해밋(Kirk Hammet)이 대표적이며, 기타 거장 중의 거장 제프 벡(Jeff Beck)도 조 새트리아니에게 조언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If I Could Fly>는 앞서 소개한 에릭 클랩튼의 <You Were There>에 비해 한결 힘이 있다. 8비트 드럼 위에 펼쳐지는 디스토션 먹인 기타 소리가 상쾌하다. 간결하고 꽉 차 있되 과하지 않다.

이 곡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일화가 있다. 먼저 멜로디에 귀를 기울여 보자. 콜드플레이(Coldplay)의 <Viva La Vida>가 생각났다면 당신은 굉장히 민첩한 귀의 소유자다. 2008년 콜드플레이가 <Viva La Vida>를 내고 빌보드 차트 1위, 그래미 시상식 '올해의 노래'를 거머쥐었는데, 다만 유일한 오점이 <If I Could Fly>와의 표절 시비였다. 두 곡의 멜로디가 매우 흡사하다는 것. 콜드플레이는 '완전한 우연'이라며 의혹을 부인했고 결국 양측이 합의하면서 논란은 마무리 되었다. 진실은 알 수 없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두 곡 공히 명곡이란 사실이다.

🥦 이명건 트리오 - 푸른 달

해가 부쩍 짧아진 걸 실감하신 적 있는지. 앞으로 동짓날(12월 22일)이 오기까지 해는 점점 짧아진다. 이미 지금도 오후 여섯 시면 해가 뉘엿뉘엿 저문다. 밤이 긴 나날이 이어지는 것이다. 앞선 두 곡이 밝을 때 어울린다면 이명건 트리오의 <푸른 달>은 밤을 위한 곡이다. 이명건 피아니스트는 이 곡을 이렇게 소개했다. "현실은 원하는 것을 저버리고 원치 않는 곳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일은 더 잦아지고 슬픔은 격해지겠죠. 하지만 희망을 저버려선 안 된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이명건 트리오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명건이 중심에 있긴 하지만 밴드 성격이 짙다. 피아노를 치는 이명건뿐만 아니라 베이시스트(오재영을 거쳐 현재 정영준)와 드러머(김건영, 최요셉을 거쳐 현재 이도헌)까지 구성원 모두 곡을 쓰고 앨범에 담는다. 지금까지 정규 앨범 세 장을 내놓았는데, 2011년 데뷔 앨범 [The Best Is Yet To Be]를 발매했을 때부터 일찍이 한국 재즈의 미래라는 평까지 받았다고 한다. <푸른 달>은 2016년 나온 2집 [피고지고]에 수록되어 있다.

곡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차갑다. 깊고 짙은 가을밤 이 곡을 들으면 내가 뭔가 사연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음표 하나 하나가 살아있는 것처럼 피아노가 또랑또랑하고 콘트라베이스 현을 퉁기는 힘이 느껴진다. 상승하고 하강하며, 밀고 당기며 서서히 고조되던 분위기는 6분을 기점으로 전환된다. 비트가 빨라지고 경쾌하게 나아간다. 이쯤에서 곡 소개를 다시 읽는다. "현실은 원하는 것을 저버리고 원치 않는 곳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일은 더 잦아지고 슬픔은 격해지겠죠. 하지만 희망을 저버려선 안 된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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