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42] 🌻 느른한 기분을 끌어올려줄 조깅 같은 노래들

한 주도 잘 지내셨나요? 숑🌻입니다. 레터를 부치는 날짜 기준으로 2월 8일인 오늘은 음력 12월 29일입니다. 양력의 12월 29일, 그러니까 지난 연말의 기분이 어땠던가 돌이켜보면 벌써 머나먼 과거 같습니다. 2월 8일과 12월 29일은 양, 음력 차이일 뿐인데 느낌이 너무 달라 신기하네요. 사실 하루 동안 시간의 흐름과 뜨고 지는 해는 다르지 않을 텐데 말이죠.

작년 이맘때의 레터에서도 비슷한 말을 적은 것 같지만, 요즘의 저는 양력 1월 1일과 음력 1월 1일 사이의 게으른 공백을 양껏 누리며 지내고 있습니다. 실제 바쁨과는 별개로 '3,2,1, GO!'할 태세 이전의 마음 상태라고 할까요. 명절이 지나고 봄이 다가오며 만물이 생동하면 현생 또한 본격적으로 굴러가겠죠. 지금 이 시기의 여유로운 마음을 그리워 하게 될 거예요.

느긋하게 지내는 한편으로, 사실 음악을 부지런히 찾아 듣진 않은 나날이었어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물리적으로 바쁜 일상과 인풋의 흡수율 사이에도 상관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적당히 바쁘게 예열된 심신에 새로운 노래가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아요. 오늘은 게으르게 업뎃된 저의 플레이리스트 중에서도 구독자 님과 나눠 듣고 싶은 세 곡을 소개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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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Smiths - William, It Was Really Nothing

밤공기가 제법 시리던 1월의 어느 날, 좋아하는 친구에게 평소 좋아하던 공간을 소개했다. 그곳은 북촌의 작은 바인데, 락스타/아티스트의 생일마다 그들의 노래를 영업시간 내내 틀어둠으로써 기념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날은 (언젠가 콜리🥦가 PRIIISM에서 소개한 덕에 알게 된)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생일이었다. 마침 친구 역시 보사노바를 좋아했기에 산뜻한 기분으로 와인을 마시며 음악에 심취했다.

비슷한 결의 보사노바, 재즈로 이어지다 새롭지만 낯익은 목소리가 바를 채웠다. 몰랐던 곡이어도 스미스(The Smiths)의 음악은 목소리만으로 제 존재감을 드러낸다. 무슨 곡이든 한갓지고 느른하게 소파에 기대 부르는 상태 같달까. 그러면서도 이 곡에는 초여름의 보사노바 같은 청명함이 묻어 있어 유독 인상적이었다. 달짝지근한 레드와인 사이에 드라이한 화이트와인을 입가심으로 머금은 느낌과 비슷했다. 청량한 여름의 산책길에 들어도 퍽 어울릴 듯하다.

🌻 LUCY - 조깅

지난 11월 하프마라톤까지 출전하며 재미 붙였던 달리기를 겨울 동안 잠정 휴식했다. 기온이 괜찮다 싶은 날 슬쩍 집을 나서보기도 했지만 대체로 쉬었다. 겨울에도 쭉쭉 연습해서 기량을 끌어올릴 거라며(?) 이것저것 방한템을 구비해둔 것이 무색한 러닝 횟수였다. 그러다 유독 포근하던 지난 주말의 찰나를 놓치지 않고 집앞 천변을 달렸다. 먼지 쌓인 런플리도 개시! 10km를 딱 맞춰 달린 뒤 참으로 오랜만에 순수하게 차오르는 아드레날린을 느꼈다.

밴드 루시(LUCY)가 2020년 발매한 <조깅>은 이렇듯 순수한 달리기의 재미와 닮은 곡이다. 달려야 할 거리, 페이스, 시간 따위 신경쓰지 않고 발 닿는 대로 달리며 새삼스런 눈으로 동네 풍경을 눈에 담고 싶어진다. 슬금슬금 다가오는 봄 날씨에 리프레쉬할 만한 도전이 필요했다면 짧게 달려보는 건 어떨까? 목표 자체보다 몸을 움직이는 과정 자체로 즐거울지 모른다. 딱 이 노래의 전주가 튕겨 나오는 순간의 재미처럼.

🌻 정우 - 클라우드 쿠쿠 랜드

작년 11월에 발매한 정우의 신보 타이틀 곡이다. 내가 알던 정우는 <나에게서 당신에게>로 대표되는 조곤조곤 싱어송라이터였는데! 앨범 자켓부터 스타일, 수록곡 면면에 묻은 락적 요소가 매우 새롭게 느껴졌다. 마치 교실에서 조용하게 책만 읽던 친구가 주말 저녁 키치한 밴드의 프론트맨으로 스탠딩 마이크를 잡은 모습을 본 것 같은 느낌. 매력적이고 신선했다.

언뜻 통통 튀고 발랄하기만 한 분위기지만 노랫말과 수록곡을 차근차근 듣고 있자면 어딘지 모를 처연함과 우울이 떠오르기도 했다. 앨범 소개글을 읽어보니 그는 '청소년기의 일들이 내 곁을 떠돌고 있다는 상상을 종종 한다'며, 과거의 유령을 애도하고 살풀이(!)하는 심정으로 곡을 썼다고 밝혔다. 앨범의 형태로 내면의 고백을 쏟아낸 뒤의 느낌이 어땠을지 상상해보게 된다. 곡들을 반복해 듣다 보니, 어떤 모양으로든 그가 한 발짝 후련해졌을 거란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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