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4] 🌻 초여름의 바다에서 부치는 노래

구독자님, 초여름 날씨가 나날이 익어가는 요즘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신가요? 어느덧 두 번째 뉴스레터를 적게 된 숑입니다. 저는 콜리, 로이와 차례로 보낸 레터에 대한 의견을 이런저런 경로로 전해 들으며, 열심히 일하고 마시고 걸으며 바지런한 3주를 보냈습니다.

PRIIISM을 시작하기 전부터 온오프라인에 소소하게 글을 쓰는 취미가 있는데요. 그간 써 온 글과 뉴스레터의 확연한 차이를 느끼기도 했어요. 손에서 떠나 보내는 순간부터 '이 글을 누가 읽게 될까?' 라는 궁금증은 절대 바꿀 수 없는 전제라고 생각했는데, 매주 부치는 뉴스레터는 수신인의 이름은 물론 몇몇의 얼굴까지 또렷하게 상상할 수 있더라고요.

"메일 잘 받았다"는 말을 건네 받은 순간들도 인상 깊습니다. 자주 보지 못했거나 아직 마주한 적 없더라도 매주 그만을 위해 또박또박 손편지를 쓰는 기분이 들거든요. 오늘의 뉴스레터를 써 내려가는 동안에도 이 글을 읽을 얼굴들을 차례로 떠올렸습니다. 지난 한 주간 제 귀를 즐겁게 한 노래들이 구독자님의 새로운 주에도 일상의 BGM으로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추신 (1) 맘에 들었던 노래나 레터에 대한 감상을 자유롭게 남겨주신다면 너무나 반가울 것 같아요! (메일리 댓글, 이메일 회신, 삐삐, 텔레파시, 파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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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Volunteers - Summer

지난 주말, 하루 연차를 쓰고 친구들과 울릉도 여행을 다녀왔다. 강릉항에서 뱃길로 178km, 과장 없이 디스코팡팡만큼 꿀렁이는 배로 3시간 반 동안 파도를 갈라야 닿을 수 있는 그 섬은 태초의 땅처럼 신비로웠다. 첫날은 유독 날이 흐리고 해무가 짙어서 숙소 근처 해수욕장을 거닐며 물멍을 때렸다.

평소 남쪽의 통영을 자주 찾는 내게 동해의 풍경은 완전히 새로웠다. 시야를 주렴처럼 둘러싼 섬의 군락 대신 말끔하게 잘라낸 단면 같은 수평선이 아득했고, 잔잔하게 몸을 뒤척이는 남해의 파도 대신 자갈을 부술 기세의 성난 물결이 생경했다. 그 낯선 세계를 바라보며 이 노래를 들었다.

정식 데뷔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지만, 발룬티어스는 백예린이 보컬로 나섰다는 점에서 이미 뜨거운 록 밴드다. 밴드 바이바이배드맨 소속이자 백예린의 라이브 세션으로 연주하던 구름, 곽민혁과 슈퍼밴드 출신 김치헌이 각각 베이스, 기타, 드럼을 맡았다. 타이틀 곡 <Summer>는 백예린이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색채에서 영감을 얻어 쓴 곡이라고 한다. 나는 이탈리아의 여름 대신 울릉도 앞바다의 수평선 너머를 상상했다. 파도에 몽돌이 데굴데굴 쓸려 가는 소리가 꼭 노래의 코러스로 들렸다.

일상에 복귀한 뒤에도 당분간 이들의 앨범을 성실히 듣게 될 것 같다. 몽환적인 <Summer>만큼이나 호쾌하고 적당히 우울한 브릿팝을 떠올리게 하는 수록곡 <PINKTOP>, <Violet>, <S.A.D> 등이 골고루 좋았다. 록 사운드로 무장한 백예린의 목소리를 오래도록 꾸준히 듣고 싶다. 내 귀의 자원봉사자들 최고!

🌻 Elton John - Crocodile Rock

재작년 이맘쯤 영화 <로켓맨>을 봤다. 지금은 사라진 대학로 CGV 아트하우스에서였다. 전세계적인 인기를 누린 60년대 영국 가수라는 사실 외에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예매했지만, 로켓맨의 신명나는 발재간 덕에 집까지 걸어가는 30분이 10분처럼 느껴졌다.

그날은 조금만 걸어도 등줄기에 땀방울이 조록조록 맺히는 더운 날씨였다. 그래선지 꼭 그날을 닮은 날씨면 어김없이 엘튼 존의 흥겨운 연주와 익살맞은 무대가 떠오른다. 말하자면 내게 있어 엘튼 존은 찰나의 시기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다. 연도나 계절처럼 큰 단위가 아닌, 6월의 등허리가 접히는 시점의 바로 그 하루.

뉴스레터를 보내는 날로부터 4일 뒤인 6월 21일은 일년 중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夏至)다. 올해로 3년째 이 무렵이면 나는 엘튼 존의 <Crocodile Rock>을 비롯한 신나는 노래들을 영양제처럼 챙겨 먹는다. 다행히 그의 노래를 처음 듣던 시기는 내게 남은 평생의 여름마다 기억하고 싶을 만큼 근사하고 평화로웠다. '나~나나나나나~' 흥얼거리며 천변을 걷던 그때의 내가 좋아서 오늘도 몇 번을 반복해 들었다.

🌻 Jack Stauber - Two Time

몇 달 전 나는 별안간 배우 유태오에 퐁당 빠져 그의 영상을 샅샅이 탐닉했다. 이 세상 용안이 아닌 외모는 물론 작품마다 다른 배우로 보일 만큼 확연한 몰입, 인터뷰마다 빛을 발하는 진중하고 엉뚱한 생각이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그가 팬들을 위해 촬영했다는 버터컵 챌린지 영상을 보고 잭 스타우버를 처음 알게 됐다. 알고 보니 잭 스타우버의 <Buttercup>은 유태오를 비롯해 전세계 셀럽의 틱톡 배경음악으로 이미 유명했다.

일반적인 발성이기보다 들숨 날숨에 음율을 붙인 듯한 창법, 장르를 단정 짓기 어려운 난해한 무드, 취한 상태처럼 붕붕 뜬 기분. 미국 피츠버그 출신의 이 아티스트는 불과 96년생, 그가 애니메이터로서 모두 직접 작업했다는 뮤직비디오는 하나같이 괴이한 분위기를 풍겼다. 인간과 유사하지만 인간이 아닌 존재를 볼 때 불쾌감을 느낀다는 이론인 '불쾌한 골짜기'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유태오만큼이나 잭 스타우버의 음악에 흠뻑 반했다. 대부분의 음악 어플에 그의 노래가 없음에도 유튜브로 굳이굳이 찾아 들을 만큼. 흥겨운 듯 우울하고, 몽상에 침잠하다가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익살스러운 전개가 그야말로 중독적이다. 의외로 노동요로도 썩 훌륭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 같다. 급한 마감에 닥쳤을 때 잭 스타우버의 음악을 메들리로 들어보길 조심스레 권해본다.

무엇보다 '덕질이 낳은 덕질'이란 점에서 오래 기억하고 싶은 아티스트다. 이따금 행운처럼 맞이하는 이런 순간이 나는 참 좋다. 마치 책을 읽다 알게 된 책이 또 맘에 든다거나, 페스티벌에서 별 기대 없이 마주한 무대에 귀를 뺏겨버리는, 이른바 덕질의 액자식 구성이자 덕질의 선순환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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