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18] 🥦 땀으로 흠뻑 젖어도 괜찮아 즐거웠으니

반갑습니다, 콜리🥦입니다. 8월 23일 바로 어제가 처서였다죠. 지식백과를 보니 "모기도 처서가 지나면 입이 삐뚤어진다"는 재밌는 속담이 있다고 합니다. 요즘은 '처서 매직'이란 표현이 더 친근한 것 같은데요. 여하튼 그 명성에 걸맞게 올해도 처서 이후 기온이 완만한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네요. 한낮에는 여름이 뒷심을 과시하는 날도 있지만 아침과 밤에는 확연히 다른 공기를 느낄 수 있겠죠. 날이 점점 서늘해짐을 느낄 때면 저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 올해도 슬슬 저무는구나.

3주 전 예고했듯 지난 주말 저는 록 페스티벌에 다녀왔습니다. 2016년 경기도 이천의 한 리조트에서 열렸던 것 이후로 무려 7년만이었어요. 오랜만에 가는 만큼 힘을 주어 좀 더 멀리 갔습니다. 바다 건너 일본 도쿄에서 열린 '썸머소닉'이었죠! 제 첫 해외 록 페스티벌 경험이었습니다. 여러 이유에서 '갈까?' '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지만 사랑하는 로큰롤 스타부터, 한 번쯤 보고싶은 뮤지션들이 무대에 선다는 점과 때마침 편하게 다녀올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점 등에 힘입어 여행을 결심했죠.

공연 이틀에 출국과 입국하는 날을 더해 모두 3박 4일 일정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지금은 그 나흘이 꿈꾼 것처럼 느껴지는 것 있죠? 분명히 뉴진스(NewJeans)부터 블러(Blur)를 거쳐 이튿날 리암 갤러거(Liam Gallagher), 그리고 그 사이 사이에 많은 공연을 봤는데 벌써 아득하게 느껴집니다. 쏜살 같이 가버렸어요. 평소 일하면서 보내는 나흘은 그렇지 않은데 말이지요. 아인슈타인 선생님이 상대성이론으로 시간과 공간이 상대적임을 증명했다던가요. 천상 문과인인 저로선 상대성이론의 물리학적 개념은 이해되지 않지만 이런 시간의 비대칭적 흐름에서 그것이 실재함을 체감할 따름입니다.

여전히 썸머소닉이 남긴 여운을 즐기고 있습니다. 공연에서 들었던 곡을 며칠째 귀에 달고 있거든요. 이번 PRIIISM에서는 록 페스티벌에서 즐긴 수많은 곡 중 최고의 세 곡을 소개합니다. 각 노래 말미에는 라이브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느껴보실 수 있도록 괜찮은 영상 링크를 달았으니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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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wo Door Cinema Club - Changing Of The Seasons

8월 중순에 일본에 간다고 하니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 더위 괜찮겠어? 우리나라도 이미 충분히 더운데 더워봐야 얼마나 더 덥겠어? 싶었다. 과연 더 많이 더웠다. 도쿄에 도착해서 공항을 빠져나간 시각이 일곱 시경이었다. 사우나에 온 것 같은 습도와 열기가 온몸을 감쌌다. 열한 시쯤이 되니 그나마 걸어다닐 만했던가. 이튿날 썸머소닉 첫 날은 그야말로 땡볕이었다. 굿즈 산다고 줄을 서고 뉴진스 공연을 보고 나니 이미 땀을 열 바가지는 흘린 것 같았다. 밥을 먹고 맥주를 벌컥 벌컥 마시고 실내에서 좀 쉬고 나서야 다시 돌아다닐 힘이 생겼다.

투 도어 시네마 클럽(Two Door Cinema Club) 공연을 보러 발걸음을 옮겼다. 신나는 곡이 많아 꼭 보고 싶은 무대 중 하나였다. 가장 듣고 싶었던 곡은 아쉽게 연주되지 않았지만 다른 좋아하는 곡들을 라이브로 즐길 수 있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 <Changing Of The Seasons>다. 이 곡이 울릴 때마침 햇볕이 무대에 가려져 더위를 살짝 피할 수 있었고, 처서를 맞은 요즘 제격이기도 하다. "So it's over / I didn't realize / It's so much colder"로 시작하는 가사부터 그렇다. 신시사이저는 여름의 끝을 알리는 매미 울음 소리를, 코러스에서 연주되는 쨍한 톤의 기타는 아직 한낮에는 뜨거운 햇볕을 닮은 것 같다. (라이브 영상)

🥦 Blur - Barbaric

투 도어 시네마 클럽을 보고 난 뒤 혼네(Honne)와 웻 레그(Wet Leg) 공연을 맛봤다. 맛만 봤다. 온전히 즐기진 않았다는 뜻이다. 왜? 다음 공연이 훨씬 더 중요했다. 첫째날 대망의 헤드라이너, 블러를 영접하러 갔다. 블러가 누구인가. 오아시스(Oasis), 펄프(Pulp) 등과 함께 90년대 초중반 영국 대중음악계를 브릿팝(Brit Pop)으로 수놓은 밴드, 우리나라는 딱 한 번, 하필 IMF 외환위기로 경제난에 접어들던 1997년이 전부였지만 일본은 수차례 찾은 밴드 아닌가. 꼭 한 번은 보고 싶었다.

블러 라이브 정말 좋았다. 팬들만큼이나 이 무대를 잔뜩 기다려온 양 블러 멤버들은 연신 웃으며 훌륭한 무대를 선보였다. 그레이엄 콕슨(Graham Coxon)의 기타는 기가 막혔으며, 다른 멤버들이 조금 실수할 때도 데이브 로운트리(Dave Rowntree)의 드럼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데이먼 알반(Damon Albarn)은 곱상했던 소싯적에 비해 배가 두둑하고 수염이 덥수룩해졌지만 자신이 여전히 매력적이란 것을 증명해보였다. 무대 아래로 내려가 펜스 잡은 관중들 코앞에서 노래를 불러재끼며 팬들을 열광시켰다.

일전에 숑🌻이 소개했던 <Tender>와 더불어 <Barbaric>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Barbaric>은 통통 튀는 귀여운 사운드에 낙담한 듯한 보컬의 대조가 매력적인 곡이다. 라이브로 들으니 그레이엄 콕슨의 트레몰로 암을 활용한 연주에서 멜랑콜리함이 극대화 되었다. 한창 공연을 즐기는데 문득 질투가 치솟았다. 아니 블러는 대체 왜 이렇게 내한 공연을 안 하는 거야? 이날 데이먼 알반은 "우리들이 일본에 언제 처음 왔었는지 아니? 1991년이었어"라며 과거를 추억하더니 공연 동안 수차례 "Love you"라고 고백했다. 우리나라 팬들이 더 미치게 놀아줄 수 있는데! (라이브 영상)

🥦 Oasis - Rock 'N' Roll Star

공연 둘째 날이 되었다. 이날도 많은 뮤지션들의 공연이 점심부터 밤까지 빽빽히 채워져 있지만 내 관심은 사실상 하나였다. 오아시스의 목소리, 리암 갤러거. 잘 알려졌다시피 오아시스는 형 노엘 갤러거(Noel Gallagher)와 동생 리암이 주도했던 밴드다. 최전성기를 구가했던 90년대 중반은 물론이요, 사십대가 되어서까지 갤러거 형제는 다투기로 유명했고, 결국 2009년 크게 충돌한 것을 계기로 밴드가 해체하고 말았다. 이후 갤러거 형제는 각자의 음악으로 활동하고 있다.

노엘 갤러거의 공연은 2018년에 본 적이 있다. 리암은 없다. 오아시스 시절이었던 2009년―이 때만 해도 오아시스가 해체할 줄은 전혀 몰랐다―에만 두 번을 본 이후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 거의 15년이 되도록 보지 못한 것. 가장 사랑하는 밴드의 목소리를 이렇게 오래 보지 못했으니 갈증이 대단했다. 이 날은 최상의 상황에서 리암 갤러거 공연을 보는 데 모든 초점을 맞췄다. 되도록 가까이에서 공연을 즐기기 위해 리암 갤러거 앞 시간대부터 공연 장소에 입장했다. 관계자들이 리암 갤러거와 연주자들의 장비를 설치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슬슬 설레기 시작했다.

브릿팝의 원류 스톤 로지스(The Stone Roses)의 <I Am The Resurrection>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곧 리암 공연이 시작한다는 뜻이었다. 이윽고 리암 갤러거가 입장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영상으로만 만났던 사람이 눈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는 여전히 팔자 걸음이고, 턱을 들어 거만한 자세로 관중을 멍하니 바라보고, 뒷짐지고 노래를 부른다. 뭘 잡쉈는지 2009년보다 2023년 지금 목소리가 더 짱짱하다. 리암이 두 번째 곡으로 <Rock 'N' Roll Star>를 불렀다. 아아 나의 영원한 로큰롤 스타여, 너무 오랜만이에요. 두 손을 하늘로 번쩍 올려 노래를 따라 불렀다. "Tonight I'm a rock 'n' roll star" (라이브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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