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93] 🌻 좀만 더 게으르면 안 될까?

한 주도 잘 지내셨나요? 숑🌻입니다. 1월의 마지막 목요일이자 제법 길었던 명절 연휴의 마지막 날 레터를 쓰고 있어요. 각 어떤 연휴를 보내셨을지 궁금합니다. 저는 가족들과 오손도손 모여 떡국을 끓여 먹고 가까운 친척 댁을 찾아 뵙고 부쩍 자란 사촌동생들도 만나며 여느 명절과 다를 바 없는 나날을 보냈어요. 서울로 돌아와 일기를 쓰면서 이렇듯 평범하고 별 탈 없는 명절이었단 사실에 새삼스런 감사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모름지기 무탈히 건강한 일상이야말로 최고 아닌가.. 그런 심심한 생각을 요즘 부쩍 자주 하고 있거든요.

이번 차례 레터를 어떤 주제로 적으면 좋을지 고민했습니다. 음력 1월 1일도 지나고, 기나긴 연휴도 끝나니까 본격적으로 한 해의 시동을 걸기 좋은 노래? 일상 다이브를 앞두고 마음을 다잡아줄 노래? 그치만 아직 소중하고 달콤한 하루의 휴일이 남았는데 벌써 열정을 불사르긴 아깝단 결론에 다다랐어요. 우린 아직 조금 더 게을러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오늘은 연휴 끝자락을 느긋함과 게으름으로 마저 채우기 좋은 세 곡으로 모아봤습니다. 사실 요즘 새로운 노래를 찾아 듣진 않아서 오래 전부터 좋아하고 아꼈던 곡 가운데 골라봤어요. 닳도록 들어서 더 소중하게 소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맘으로요. 부디 누군가의 연휴 끝 귓바퀴에 좋은 벗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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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ffing - Birthday Harlem

오핑(Offing)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 건 2017년쯤, 음악 좋아하는 어느 친구의 추천이었다. "이 노래 들어봐. 근데 사클 깔아야 돼." 당시 힙한 노래를 디깅한다는 애들은 다 사운드 클라우드를 썼다. 그런 사운드 클라우드에서 요즘 핫한 노래라고 하니까 조금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오핑은 소속사 매직스트로베리 사운드에 들어가서 정식 데뷔를 했고, 데뷔 싱글 <Birthday Harlem> 이후 셀프 프로듀싱으로 자기 색깔 가득한 노래를 꾸준히 발표했다. (사운드 클라우드 아닌 경로로도 그녀의 음악을 실컷 들을 수 있게 됐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는 게 세상에서 제일 힘들고 빨래 돌리고 말리는 게 그 다음으로 제일 힘들어', '나는 벌써 지치고 힘들어 그냥 누워 쉬고만 싶은데' 같은 노랫말이 꼭 내 일기장 같다. 현대인의 덧없는 넋두리 같기도 하고, 그럼에도 다함께 중얼거리는 자체로 어딘지 위안이 되는 것도 같고.

지금 들어도 오핑의 노래는 어딘지 힙하다. 힙하다는 게 대체 뭘까? 정의를 고민해본다. 오핑이 왜 힙하게 느껴지냐면, 유행을 신경 쓰지 않는 느낌 때문인 것 같다. '이렇게 저렇게 하면 감성적이거나 쿨하게 보이겠지' 하는 계산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2017년에 힙하게 들린 노래를 어느 때 꺼내 들어도 비슷한 느낌을 받다. 세상 시선이나 유행에 실제로 신경 쓰든 그렇지 않든, 무신경한 분위기를 풍기는 건 역시 좀 멋지게 느껴진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는 chill한 느낌?) 알게 모르게 그것이 '참 어려운 일'이란 인식이 깊게 박혀 있어선지.

🌻 Portugal. The Man - Sleep Forever

밴드 이름에 포르투갈이 들어가지만 포르투갈 밴드는 아니다. 알래스카에서 결성한 미국 밴드라고 하니, 비유하자면 대한민국 평창에서 데뷔한 '타이완 더 맨' 같은 느낌이려나. 국내 인지도가 높은 밴드는 아니지만 꽤나 히트를 친 <Feel It Still>이란 곡은 귀에 익은 분들도 많을 것 같다. 보컬 음색이 청아하다는 느낌마저 드는데 라이브 영상을 처음 봤을 때 수염 덥수룩한 아저씨임을 알았을 때 느낀 충격이란...

이 밴드의 무수한 명곡 가운데서도 <Sleep Forever>는 내가 가장 아끼는 곡이다. 보컬 존 굴리의 청아한 음색이 돋보이고, 중간중간 존재감을 드러내는 관현악이 어딘지 뭉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이유도 있지만 이 곡을 들을 적마다 찾아오는 '이완'의 느낌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적절히 힘을 빼는 일이 나날이 쉽지 않다고 느낀다. 바쁜 일상에서 자꾸만 어금니와 주먹에 힘이 들어갈 때, 영면(?)하는 마음으로 이 노래를 귀에 꽂는다. 'I just want to sleep forever, Never see tomorrow'... 그럴 때면 이런 노랫말마저 염세적이기는커녕 더없이 부드러운 안식으로 느껴진다.

🌻 Kent - Klaparen

안식, 느긋, 편안함, 이완... 그런 단어들을 떠올릴 때 언제나 자동 연상되는 밴드가 있다. 지금은 해체한 스웨덴 밴드 켄트(Kent). 지금 돌이켜보면 나의 20대 초반 무렵 고독과 우울이 스스로를 좀먹지 않도록 감성의 이정표를 올바르게 놓아준 존재가 바로 켄트의 음악 아니었나 싶다. 스웨덴어 가사의 의미가 추측조차 되지 않는데도 잔잔하고 서늘한, 무심하게 포근한 모든 곡의 분위기에 자주 위로 받곤 했다.

<Klaparen>은 2005년 발매한 켄트의 6집 앨범에 실렸다. 앨범의 제목은 [Du & jag döden], '너와 나의 죽음'이란 뜻이다. 수록곡들의 가사는 관계, 고독, 죽음, 상실 등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새삼 음악의 분위기를 이루는 사운드의 조화, 맑고 서정적인 보컬, 생경한 외국어의 발음 같은 것들을 곱씹게 된다. 의미를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한대도 머나먼 북유럽 땅 밴드의 메시지를 공감할 수 있다니 신통하기도 하고.

<Klaparen>은 직역하면 '서툰 사람'이란 의미라고 한다. 어디서나 서툰 사람이 될 수 있단 건 만국 공통일 거다. 나를 서툰 사람으로 만드는 어떤 상황 앞에서든 이 노래를 떠올리고 싶다. 서툰 나를 북돋는 목소리가 낯선 이국 땅부터 이어져 왔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위안이 되지 않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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