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45] 🌻 삶이 녹록지 않을 땐, 뇌를 속이는 흥겨운 노래

어느덧 3월의 마지막 날에 편지를 쓰고 있는 숑🌻입니다. 다들 건강하게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공교롭게도 격리중인 병상(?)에서 봄의 정수리를 보내고 있습니다. 건강은 저의 프라이드나 마찬가지였는데, 바쁜 시기를 보내는 동안 코로나의 기습에 당했습니다. 면역력이 떨어진 순간을 용케 놓치지 않고 목젖을 노크하더라고요. 다행히 주변 얘기에 비하면 저는 가볍게 앓은 편 같아요. 확진 당일과 이튿날 목구멍이 좀 붓고 아팠던 것 외에는 별다른 증상 없이 느릿한 격리생활을 보냈답니다. (내일 자정에 출소.. 아니 격리해제예요! 오예!)

눈 코 뜰 새 없던 날들이 물러가기 무섭게 일주일의 공백이 생기니 처음엔 시차라도 생긴 느낌이었어요. 꼼짝없이 집안에만 있어야 하니 답답하진 않을지 걱정도 됐고요. 하지만 순도 높은 내향인에게 격리생활은 꽤나 잘 맞더라고요...(머쓱) 운동을 못 가게 된 아쉬움만 빼면 책 읽고 넷플릭스 보고 삼시세끼 차려 먹느라 하루가 금세 저무네요. 물론 날씨 좋은 한낮에는 따끈한 햇볕을 맞고 싶어서 죄수처럼 창틀 앞을 서성대곤 했지만요😭 얼른 동네 천변으로 나가서 송이송이 움트는 봄꽃의 단서를 찾으러 다니고 싶어요.

이제는 조심한다고 피해갈 수 있는 질병이 아닌 것 같아 '코로나 조심하라'는 말을 덕담으로도 쓰지 못할 것 같아요. 아무쪼록 아무리 현대사회가 바쁘더라도 몸을 피로하게 두지 말고, 영양제 꼬박 챙겨 드시고 언제나 목을 촉촉히 하시길 바랍니다. 사람에 따라 가볍게 지나갈 수도 있지만, 그래도 안 걸리는 게 베스트니까요!

오래 격리되어선지 레터에 할 말을 다 쏟고 있는 것 같아요. (분량.. 머쓱;;) 아무튼 오늘 골라본 세 곡은, 앞서 얘기한 바쁜 시기에 주로 귀에 꽂아 넣었던 노래들입니다. 졸린 눈으로 출근길에 나설 때마다 어깨춤이 나올 만큼 흥겨운 노래를 들으며 잠든 뇌를 속이곤 했거든요. 언제 어떤 곳에서든 팍팍하고 녹록지 않은 시기를 보내고 계시다면, 분명 이 노래들이 벗이 되어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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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saki Matsubara - Silly Crush

시티팝은 흥을 배반하지 않는다. 마사키 마츠바라(Masaki Matsubara)에 대해서는 일본의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라는 사실 외에 아는 바가 거의 없지만, 그가 만든 이 노래가 단 1초 만에 내 귀를 사로잡았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슬슬 가벼운 외투를 걸치게 되는 요즘에도 산뜻하게 듣기 좋지만 초여름 역청빛 밤하늘 아래를 산책할 때라면 속수무책으로 어울릴 것이다. 여름밤과 시티팝의 조합은 거의 뭐 불패니까!

네이버에 검색해도 이 노래의 가사가 나오지 않아 제목과 앨범 커버로만 곡의 느낌을 유추해봤다. 붉은 힐을 신은 여성이 무언가 적극적인 모션을 취하는 듯 발 연기(?)를 뽐내고 있다. 남성의 구두와 칼각으로 다린 바지, 전반적인 타이포가 더해져 장국영 영화 같기도 하고, 레트로한 분위기가 제대로다. 1983년에 발매한 앨범이니 지금 봐서 레트로지 당시에는 그저 트렌디한 이미지였을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느낌을 더해 'Silly Crush'라는 제목을 직역하자면 정신을 못 차릴 만큼 홀딱 빠져버린 사랑 얘기인가 싶다.

요 며칠간 나는 무척이나 근사하게 리드미컬한 이 노래에 폭 빠져 이동 시간이 나는 대로 재생하고 또 재생했다. 터덜터덜 지하철역으로 향할 때, 해치워야 할 일 생각으로 머릿속이 뿌옇고 답답할 때 내적 리듬을 타다 보면 기분이 얼마간 경쾌해졌다. 그때마다 뇌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자, 실컷 놀았니? 이제는 할 일을 하자.

🌻 Calvin Harris - Feels

상업적으로 메가급 성공을 이룬 노래여서 아마 초면인 사람이 거의 없을 것 같다. 캘빈 해리스(Calvin Harris)는 현존하는 최고의 DJ이자 프로듀서라고 불린다는데, 사실 이런 EDM(이라고 해야 할까, 에둘러서 팝이라고 말해야 할까) 장르를 즐겨 듣는 편이 아니라 잘 몰랐다. 몇 주 전 올해의 첫 바다를 보러 속초에 다녀왔는데 설산을 마주보고 달리는 차 안에서 듣고 '와, 이 노래 엄청 좋은 노래였네?!' 했을 뿐이다. 차트계 뒷북 장인, 그게 바로 나야 나...

이보다 더 과거에 메가*메가급 히트를 쳤던 퍼렐 윌리엄스의 노래 <Happy>를 기억하시는지. 그 노래 한 곡으로 퍼렐 윌리엄스는 아직까지도 내게 행복한 보컬의 대명사인데, <Feels>로 오랜만의 그의 목소리를 양껏 들으며 신명날 수 있어 좋았다. 프로듀서 양반이 곡을 잘 뽑은 탓도 있겠지만 어떻게 이렇게 노래를 찰지고 흥겹게 부를 수 있을까?

속초의 바다와 설산에서 들었을 땐 설명을 덧댈 필요도 없이 그저 좋았다면, 출퇴근길 환승역을 바삐 오갈 때는 흡사 왕밤빵 사이 탄산수처럼 갈급하게 들었다. 케이티 페리의 청량한 목소리와 퍼렐의 쫀득한 추임새를 듣는 동안에는 어깨를 짓누르는 백팩의 무게나 육체 피로 따위 생각나지 않았다. 역시 전세계 차트에서 언제 1위를 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나의 어떤 순간에 찾아와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심사위원은 나뿐인 세계에 이제야 차트인했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 Peter Bjorn & John - Young Folks

Peter Bjorn & John(피터 비욘 앤 존)은 그룹 이름에 충실하게도 피터, 비욘, 존이라는 세 친구가 결성한 스웨덴 밴드다. 뮤직비디오에서 어쩐지 북유럽 특유의 키치한 느낌이 물씬 난다. 초등학교 때 카세트 테이프가 딸린 영어 교과서에 나올 것 같은 정직한 그림체와 말풍선이라니. 이 노래를 너무도 매력적으로 만드는 휘파람 소리가 뮤비에 꽤 디테일하게 구현되어 있어서 재치 넘친다고 생각했다.

제목의 <Young Folks>는 '젊은이들' 정도의 의미여서 가사가 딱히 궁금하지 않았는데, 오늘 찾아보면서 그저 흥겨운 리듬을 타며 들었던 이 노래가 조금 더 좋아졌다. 내가 과거에 무슨 일을 했고 어떤 사람이었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든 상관하지 말고 서로의 곁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만 신경 쓰자고 말한다. 가식 없이 대화하고 음악에 몸을 맡기는 뮤비 내용와 어우러져 잔뜩 감응하고 말았다. 이보다 더 진솔한 노랫말이 있을 수 있을까!

나는 혼자만의 시간에 쉽게 파고드는 내향인의 성정에 대체로 만족하는 편이다. 이렇게 긴긴 격리의 시간에도 혼자 놀 거리가 이렇게 차고 넘치니까. 그만큼 동시에 솟는 생각은 타인과 주고받는 진솔한 대화에 대한 갈증이다. 꼭 술잔을 사이에 두고 몇 시간씩 떠들지 않아도 우리는 진솔한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다. 서로가 어떤 사람이든, 단지 이 순간 눈빛을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만을 신경 쓰며 고유한 온기를 나눌 수 있다.

언젠가 읽은 산문집에서 읽은 짧은 표현이 봄마다 떠오르곤 한다. '봄날에는 사람의 눈빛이 제철'이라고 했다. 격리를 마치고 세상에 나가면 그 어떤 제철 음식보다 제철의 눈빛들을 마음에 채우고 싶다. 서로의 곁에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만 신경 쓰면 되는, 그만큼 편안한 상대의 것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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