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CTOBER_[SILLAGE]

: 서양 미술사 이야기 🎨

2022.10.02 | 조회 329 |
0
|

Proust Effect

예술경영 학부생들이 작성하는 전시와 예술계 이모저모

 

*Gmail 구독자분들은 전문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으니 웹에서 읽기를 추천드립니다.

 

 

'sillage' : 향수의 잔향, 혹은 향이 지나간 자리

 

 

 

5. 암흑기 미술의 발자취 ⛪

- 중세는 과연 양식 부재의 시대일까?

 

  w. Cedar 🪵

 

 

  중세를 대표하는 ‘비잔티움 미술’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건축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중세 교회의 원형이 탄생한 시기이기도 한데요. 교회의 영향력이 점차 강해짐에 따라 신자들을 수용할 공간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이것이 곧 고전 집회소 ‘바실리카’를 본뜬 비잔티움의 교회가 만들어진 계기가 되었죠. 반원 모양의 ‘감실’과 신자들이 모이는 중앙의 커다란 ‘신랑’, 이보다 좁고 낮은 측면 복도인 ‘측랑’에 이르기까지, 현재의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중세 교회의 일반적 형태가 해당 시기에 갖춰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바실리카’를 장식하는 것이 중세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신중함을 요하는 문제로 여겨졌습니다. '교회를 어떠한 형식의 미술로 채울 것인가'가 중요한 화두였다고 해요. 그리스 미술로 특징 지을 수 있는 형식 중 하나인 ‘조각’은 이교도와의 구분을 위해 공통적으로 사용을 반대하는 시류가 형성되었으나, ‘회화’의 경우는 조금 달리 고려되었습니다. 복음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리는 것은 글을 읽지 못하는 신도들을 위한 훌륭한 설명도가 되어준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죠.

 

  다만, 당시 성상에 허용된 미술 형식은 매우 제한적이었어요. 복음의 내용을 전달하는 것에 가장 중점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회화는 장식이나 화려함은 최대한으로 배제하고 명확하고 단순하면서도 성스러움을 담고 있어야 했습니다. 이 지점에서 명확성을 중요시했던 이집트 미술의 관념이 문득 떠오르는 것 같지 않나요? 이에 대한 예시로 당시 이탈리아 라벤나의 대가가 그린 성상화를 들 수 있는데요. 깊은 색채감을 품은 돌이나 유리 입방체를 짜맞춘 ‘모자이크’ 양식으로 제작된 형상은, 화려하고 극적인 장면을 묘사하는 헬레니즘 시대의 작품 혹은 운동감과 표정을 강조했던 로마 시대의 작품과는 사뭇 거리감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빵과 물고기의 기적> 520년경. 산 아폴리나레 누오보 바실리카의 모자이크, 라벤나 (사진 출처 : E. H. 곰브리치 저서 『서양미술사』)
<빵과 물고기의 기적> 520년경. 산 아폴리나레 누오보 바실리카의 모자이크, 라벤나 (사진 출처 : E. H. 곰브리치 저서 『서양미술사』)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될 지점은 비잔틴 미술이 그리스 미술을 완전히 등한시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미술은 원시적인 기법과 세련된 기법이 묘하게 섞인 결과물이라 볼 수 있는데요. 그리스와 로마의 다채로운 인체 표현 방식을 모사하면서도 근본적으로 성스러운 것을 그린다는 작품의 제작 의도를 드러내는 독특한 방식을 고수하고 있음이 그 특징입니다.🧐

 

  기독교 미술에 있어 그 정당한 목적은 시대가 흐르고 기득한 세력이 변화하며 조금씩 그 해석을 달리했습니다. 동로마 제국 내에서도 성상 자체를 반대하는 성상파괴주의적 입장성상이 설명의 목적을 넘어 그 자체로도 숭상될 수 있다는 입장이 차례로 모두 등장했는데, 이에 종래에는 미술가들의 상상에 따라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더 이상 허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했듯 그림이 설명도 그 이상의 역할을 해냈어야 했기 때문이죠. 바로 이때, 아름다움이 아닌 오래된 전통에 의해 신성시된 회화의 전형이 탄생하게 됩니다.

 

 

<옥좌에 앉은 성모와 아기 예수>, 1280년경. 제단화, 콘스탄티노플에서 그려진 것으로 추정됨. 목판에 템페라. 81.5x49cm, 워싱턴 국립 미술관 (사진 출처 : E. H. 곰브리치 저서 『서양미술사』)
<옥좌에 앉은 성모와 아기 예수>, 1280년경. 제단화, 콘스탄티노플에서 그려진 것으로 추정됨. 목판에 템페라. 81.5x49cm, 워싱턴 국립 미술관 (사진 출처 : E. H. 곰브리치 저서 『서양미술사』)

 

 

  앞서 언급한 바를 종합했을 때 비잔틴 미술의 두 가지 큰 측면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는 모두 기독교적 ‘엄격성’에서 비롯된 것인데요.

 

  먼저, 이 엄격성 덕분에 그리스 미술의 관념과 업적을 그대로 보존할 수 있었다는 점이 첫 번째 측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반드시 지켜야 했던 형식이 존재했기 때문에 성상을 그리는 화가들로 하여금 고대의 양식을 엄격히 반영할 것을 강제한 것인데요. 성상화에 묘사된 옷 주름이나 팔꿈치 혹은 무릎에서 방사선으로 퍼져나가는 방식, 그림자를 이용해 입체감을 나타내는 등의 화법을 보아하면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무엇보다 그리스로마 시대의 주요 관점이었던 자연과 밀접한 관련이 있죠!

 

  한편, 전통의 강조와 허용된 범위를 지키는 보수성에 의해 미술가 개인의 자질 개발은 어려웠다는 점 역시 또 다른 측면으로 주목할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미술이 예술가의 자유를 완전히 억압했다고 보기에 다소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요. 더딘 속도에 가려져 있었다고 한들 당시 미술이 지닌 지위의 변화 과정을 짚어본다면, 단순한 복음 설명도에서 거대하고 화려한 성상에 이르기까지 무구한 발전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이전 시대의 유산을 잃지 않으면서도 독자적인 방식을 구축한 것은 비잔티움 미술을 더욱 흥미롭게 하는 지점인 것 같기도 하죠? 🤩

 

  (*참고 문헌: E.H.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예경, 2017년, PP.133-141.)

 

 

 

 [ ⏬ 다른 에디터들의 코멘트는 이곳에서 보실 수 있어요!  ]

 

 

이번 레터가 흥미로우셨다면 다음 레터에서 또 뵈어요!

더 매력적인 향기로 당신을 찾아갈게요💞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Proust Effect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4 Proust Effect

예술경영 학부생들이 작성하는 전시와 예술계 이모저모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070-8027-2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