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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5. 관광의 철학: 오배(배달의 실패)의 재연

무감하고 즉물적인 성찰로 타자를 이해하기

2024.07.24 | 조회 2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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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 알 카시미, 돌고래 분수, 2023
파라 알 카시미, 돌고래 분수, 2023
태국 로날드 맥도날드
태국 로날드 맥도날드

파라 알 카시미 (Farah Al Qasimi)의 사진 속 돌고래 분수를 보고 태국의 로널드 맥도날드를 마주한 기억을 떠올렸다.[1] 더운 나라의 돌고래라 그런지 시원한 눈매가 이색적이기 때문이었는데, 오래 전 패스트푸드 기업 맥도날드의 캐릭터인 로널드 맥도날드 또한 태국을 찾은 여행자들에게 유명한 기념사진 코스였다. 눈과 코가 큰 로널드 맥도날드가 합장한 모습은 어딘가 기이한 느낌이 들었는데, 익히 알던 캐릭터의 이목구비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태국의 것을 흡수한 미국의 캐릭터가 주는 혼란스러움이 컸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통령을 모르는 미국 어린이들은 있어도 로널드 맥도날드를 모르는 아이들은 없었다고 할 정도로 절대적인 인지도를 구가했지만, 2016년 미국에서 광대 분장을 한 범죄자들이 살인과 납치를 일삼는다는 괴담이 돌면서 로널드 맥도날드는 돌연 자취를 감췄다. 아랍에미리트의 돌고래가 일깨운 태국의 로널드 맥도날드, 그리고 이색적인 감각. 그런데 이색적인 감각이 좋은 것인가 하는 의구심은 늘 따라다닌다. 이색적이라는 것에 감화되면 적당한 거리감과 관조로 늘 일부분만 보고 느끼는 관광객이 되기 때문이다.

파라 알 카시미 개인전 《블루 데저트 온라인 Blue Desert Online》 설치 전경  ©바라캇 컨템포러리
파라 알 카시미 개인전 《블루 데저트 온라인 Blue Desert Online》 설치 전경  ©바라캇 컨템포러리

관광객 = 오배(배달의 실패)

아즈마 히로키는 그의 저서 관광객의 철학에서 관광객은 제국 체제와 국민 국가 체제 사이를 왕복하고 사적인 삶을 그대로 공적인 정치에 접속하는 존재”[2]라고 말한다. 그의 규정과는 반대로 대체로 인문학적 사고에서 관광객은 부정적으로 설명한다. 근대 철학에서 말하는 인간은 정치적 인간이자 국가 시민으로 한 곳에 속해야만 하는 공적인 존재로 규정해 왔기 때문이다. 칸트, 헤겔부터 한나 아렌트의 지론을 따라가면서 이들의 이론으로는 타자론을 설명할 수 없다는 한계를 느낀 히로키는 타자론을 개진하기 위해 관광에 주목한다. 매년 10억 명 이상이 이데올로기와 관계없이 소비에 여념이 없는 관광이라는 형국을 타자를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환하려 한 것이다. 히로키에 따르면 관광객은 우편적 다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오배즉 배달의 실패나 예기치 않은 소통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상태라는 뜻이다.[3] 이때 오배는 부정적인 것만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광을 통해 평소엔 관심도 없던 미술관에 간다든지, 학살이 있었던 교도소나 수용소, 도살장을 찾는 것,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교통이 불편함에도 DMZ라는 분단 상황을 기꺼이 관람하는 것 등이 모두 정보의 오배이자 관광의 본질이고, 이 오배가 깨달음의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바라봐야 한다. 이는 다크투어리즘과도 이어질 수 있는 주제인데, 상황적 이해가 부족하더라도 관광은 또 다른 이해와 확장을 동반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뒤뜰 조경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뒤뜰 조경

둥굴레와 꼬리풀로 바꿔 연결하기’ 

전시를 감상하는 순간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4]를 관람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서울관 곳곳의 조경을 새로 손을 본 듯했는데, 무심코 발견한 조경이 산악지대를 축소한 절경처럼 보이기도 했다. 미술관 내 중정에 꾸려진 정원을 둘러보다가 둥굴레가 정말 싱그러운 풀이라는 것, 그 형태에서 오는 미감이 큰 식물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고, 연보라색 솔과 같은 풀이 꼬리풀이라는 직관적인 이름을 가졌다는 것 모두 생경한 것이었다. 아무리 풀어서 설명해 준다고 하여도 조경에 지식이 깊지 않다면 부분적이고 단편적인 감상에 그치고 만다.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과정이 무의미한 것이라 할 수 있는가? 아즈마 히로키는 관광객의 우편적 다중이자 그 성질인 오배가 무척도의 질서에 휩쓸리기 전에 저항을 실천할[5] 방법이라고 말한다. 무척도의 질서가 낳는 제국이라는 체제와 스몰 월드의 질서가 낳는 국민 국가라는 체제가 모순 없이 공존할 수 있다[6]는 히로키의 주장은 국민 국가와 제국 모두 오배’, 바꿔 연결하기에서 발생함을 말한다. 내셔널리즘과 글로벌리즘 어느 쪽으로도 복속되지 않고 세계 시민이 될 방법은 경박한관광객 되기에 있다. 진정성 있는 정치적 인간 보다는 자신의 욕망에 따라 경계를 쉽게 오가는 존재들이 오히려 개인과 개인을 연결하며 새로운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위 틈새에 심어진 둥굴레
바위 틈새에 심어진 둥굴레
화단에서 발견한 꼬리풀
화단에서 발견한 꼬리풀

동시대 미술을 수용하는 방식은 모두 바꿔 연결하기에서 시작한다. 파라 알 카시미의 작품을 보고 이국적이라고 느낀 나의 감각은 작가에게 평범한 일상의 사물과 장소에 서사를 부여한다는 작품 의도와는 어긋난다. 그럼에도 낯선 이미지 안에 나의 삶을 이입해 보고 동일한 이야기를 남기려고 노력하는 시간은 '오배'가 동시대 미술에 주는 세계일 것이다. 또 조경가 정영선 선생의 전시에서 말쑥한 둥굴레를 만난 경험 또한 오배일 테지만 이를 통해 낯선 것을 품고 연결해 보려는 시도가 이분법적인 체제에 저항하는 시도이자 관광객의 원리’[7], 즉 오배의 재연이다. 무심코 지나치던 출근길 화단에 핀 연보라색 풀이 오늘에서야 눈에 들어왔다꼬리풀이다. “사람은 관광객이 되면 평소에는 결코 갈 일이 없는 곳에 가고, 평소에는 결코 만날 일이 없는 사람을 만난다.”[8] 낯선 것을 연대하게 하고 바꿔 연결’하는 방식으로 존재하자. 그런 시도를 할 수 있는 즉물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1] 파라 알 카시미 개인전블루 데저트 온라인 Blue Desert Online2024.06.12.() ~ 08.11.(), 바라캇 컨템포러리

[2] 아즈마 히로키, 관광객의 철학, 서울: 교보문고, 2021, p. 161.

[3] 조경가 정영선 개인전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2024.04.05.() ~ 09.22.(),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4] 앞의 책, p. 164. 

[5] 앞의 책, p. 196.

[6] 앞의 책, p. 201.

[7] 앞의 책, p. 202.

[8] 아즈마 히로키,약한 연결, 서울: 북노마드, 2016, p. 51.


이희옥 / (재)광주비엔날레 홍보마케팅부 stitch063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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