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캔쓰입니다. 이젠 정말 완연한 가을인거 같습니다. 입추가 지나고 가을이 오는동안 캔쓰네도 소소한 변화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정말 소소합니다. 에어컨을 껐다던가, 모기와 싸우고 있다던가, 호르몬을 시작했다던가, 사무실이 이사를 했다던가 뭐 이런거? 이런 삶의 소소한 변화들을 맞이했습니다. 그리서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변화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오쓰는 새로운 정체성을 깨달은 후 변화를 나누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캔디는 사무실 그 변화의 맨 앞에는 직장이라고 하는 단어가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이번 뉴스레터에서 오쓰는 직장에 커밍아웃 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캔디는 직장 이사의 소회를 나눠보려 합니다. 시원하고덥고추운 초가을, 이렇게 정답게 시작해보아요.

「마포를 떠나, 대학로로」
단체 활동을 시작한 후 사무실은 항상 마포구였다.
만나는 사람들도 대부분 마포에 살았고, 20대의 나는 평생 마포에 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마포구는 퀴어한 공간들이 모두 다 모여 있는 곳이었다. 술집도, 단체도, 친구 집도 다 마포였던 그 시간 동안 나는 마포에서 통장이 되지 못하는, 정주하지 못하는 나의 삶이 너무나 서럽고 아쉬웠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통장은 되지 못해도 단체들이 있는 마포가 든든했다. 꼭 퀴어 단체가 아니어도, 인권재단도 마포에 있었고, 성소수자 친화적인 교회도 마포에 있었고, 진보적인 어쩌고들도 마포에 있었다. 마포에 사는 것은 시스젠더 이성애자들이 드글드글한 곳에 살지만, 개미굴처럼 요리조리 퀴어한 공간과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느낌이었다. 그 길이 있어서 숨을 쉴 수 있는 느낌이었다.
은평구로 거주지를 옮기고 난 후에도 사무실은 늘 마포구에 있었다.
동교동, 서교동, 망원동을 고루고루 찾아다니며 사무실을 삼았다. 어떤 때는 학원이 있던 곳이었고, 어떤 때는 빌라 꼭대기였다. 어떤 공간이라도 우리가 들어가면 퀴어한 공간이 되었고, 그 공간을 거점삼아 긴긴시간 우리는 성장해갔다.
처음 사무실을 함께 한 단체는 두 개였다. 사무실을 나눠쓰는 것은 복잡하고 재밌고 스트레스 있는 일이다. 처음엔 우리가 (풀타임 상근자) 다 해봤자 네다섯 명이어서 내 단체가 아니어도 그의 오늘 하루가 어떤지, 그 단체의 물건이 어디 있는지를 좀 알 수도 있었던 것 같다. 그때는 같이 밥도 해먹었다. 한 명이 한 주씩 밥 당번을 했다. 그들의 요리솜씨를 각자 평가하고 응원하면서 밥을 함께 하고, 식사 시간을 위해 출근 여부를 공유하기도 했다.
그러던 우리가 성장을 하였다. 네다섯 명이었던 활동가는 열다섯 명이 되었다. 단체는 두 개에서 세 개로 네 개로 늘어나더니, 이제는 다섯 단체 여섯 개 단위가 함께하는 큰 규모가 되었다. 옆집 숟가락 개수를 알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각자의 단체 활동을 챙기는데만도 많은 시간이 들게 되었다.
그렇게 성장한 우리가 올해 드디어 이사를 했다. 무려 6년 만의 이사. 그 사이 단체들도 커졌고,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커졌으며, 그만큼 단체의 짐도 엄청 많아졌다.
이사할 곳을 고르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모두의 책상이 들어가는 곳, 모두의 짐이 잘 들어가는 곳, 우리가 엉키지 않고 각 단위의 공간을 확보하고, 다 함께 회의를 하고, 많은 사람들이 오고갈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 온 서울을 찾아헤매었다. 사이즈가 맞으면 금액이 비싸고, 금액이 맞으면 사이즈가 너무 작았다. 그리고 "퀴어 단체"를 차별과 혐오 없이 받아줄 것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했다. 건물을 찾으면서 그 안에 교회가 있는지도 보았고, 어떤 업체들이 있는지도 보았고, 건물주가 어떤 사람인지를 가늠해 보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렇게 서울의 온갖 공간을 둘러보았다.
기존의 마포구를 넘어 영등포구, 강서구, 계양구, 용산구, 종로구를 넘어 성북구까지 찾아올라갔다. 왜 이렇게 어렵고 어렵기만 한지.
가장 유력한 선택지로 올라갔던 곳은 성북구였다. 지하철역에서도 가깝고, 크기도 괜찮았다. 그런데 성북구였다. 성북구. 태어나서 거의 가본 적이 없는 동네. 집에서는 6호선을 타고 쭉 가기만 하면 되는지라,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도 뭔가 마음이 쉽지 않았다.
성북구가 이래저래 잘 안 되고, 우연과 우연이 겹쳐서 새롭게 만나게 된 사무실이 대학로였다. 대학로는 조금 마음이 편했다. 한 시간이 걸리는 건 같은데, 사람들 접근성도 좋은 거 같고, 나도 연극을 보면서 이래저래 많이 가본 곳이라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의 동의를 얻어, 지난 8월 27일 우리는 대학로로 이사를 했다. 이사를 하고 나니 뭔가 마음이 (좋은 방향으로) 달라졌다. 정리를 새로 싹 해서 왠지 커진 것만 같은 내 자리도 좋고, 자리 옆의 창문도 좋고, 문열고 나가면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도 좋다. 일에도 좀 더 집중하게 되어서 요즘엔 사무실에 있는 시간도 점점 길어진다. (좋은 건가?)
삶에는 가끔 이런 변화가 필요하다.
물론 이 변화에 도착하기까지 시간도 걸리고 노력도 걸리고 그에 따르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그래도, 이런 변화가 계기가 되어서 사소하게는 하루의 일상이 변화하고, 크게는 생각하는 방향이나 보는 시야도 달라지기 시작한다.
곧 이사한 지 한 달이다. 대학로에서의 내 삶이 어떻게 변화해 갈지 점점 더 기대가 되어가는 매일매일이다. 신난다.
ps. 하지만, 매일 아침 경복궁을 지나는 것은 약간 어렵다. 시내를 지난 출근길이라는 것에 대해 새로운 지식이 +1 되었다. 하.하.하

고단하고 복된 시간
호르몬요법을 시작했다. 병원에서 개월차마다 생길 수 있는 변화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다른 이들에게 가장 먼저 태가 나 보일 것은 목소리였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보통 목소리는 1~3개월 사이에 변화를 맞이한다고 한다. 나의 목소리는 더 낮아지고 더 깊어질 것이다. 본격적인 변화가 시작되기 전, 그들이 먼저 다름을 감지하기 전에 커밍아웃을 하고 싶었다.
가장 먼저 소식을 알린 것은 직장동료들이었다. 캔디를 제외하고 나를 가장 자주 보는 사람들. 그들에게 내 정체성에 대해 소개하고 사회적 트랜지션 협조문을 공유했다. 나를 어떻게 불러주길 바라는지, 선호하지 않는 호칭은 무엇인지, 출장 시 선호하는 숙소의 형태와 커밍아웃하지 않은 타인이 나를 대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어떻게 행동하기 바라는지 등 상상할 수 있는 구체적인 상황에 요청하는 대응법을 적어서 나눴다. 동료 중에 한 사람이 파티라도 해야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파티를 할 생각은 없었지만(테스토스테론 파티라니 어감이 좋지 않으니까-) 그 말만큼은 좋았다. ‘나’를 기쁘게 맞아주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이렇게 적고 보니 굉장히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군.
이어서 대학 친구들에게 하나 둘 전화를 해서 커밍아웃을 했다.(바빠서 만날 틈따위는 없었다) 이 사람들에게 나눈 이야기는 친구의 때 아닌 젠더 사춘기를 견디라는 통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병원에서는 나에게 ‘폭력성’이 늘 수 있다고 말했다. 폭력성이 는다는 말은 대체 무슨 말일까. 멋쩍어서 웃음이 나왔다. 친구들에게 “나 폭력성이 늘 수 있으니까 조심하도록 해. 의사가 경고했어.” 라고 말했다. 친구들은 여기서 더 폭력성이 늘면 어쩌냐고 걱정을 했다. 또, 한 친구는 나에게 호르몬을 시작하다니, 한국에서 목회하기에 오버스펙 아니냐고 했다. 어디 뉴욕이라도 가야하는 거 아니냐고 말해서 늘어난 폭력성을 자랑할 뻔 했다. 누워서 생각해보니 이보다 더 웃기고 정확한 말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버스펙. 그렇다 나는 오버스펙이다.
마지막으로 목사님께 커밍아웃을 했다. 그에게 커밍아웃을 하는 것이 가장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에게 특별한 부탁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고등학생 때 수업을 들었고, 그가 소개해준 교회를 다녔고, 그에게 세례를 받았고, 그가 졸업한 학교, 그의 전공을 따라 공부했다. 이어서 그와 같은 직업을 갖게 되었는데 그 모든 것을 떠나서라도 나는 그를 닮고 싶었다. 그가 사람을 대하는 마음가짐. 그가 수업과 예배를 준비하는 모양새. 그는 나에게 늘 모범이었다. 그런 그에게 나의 새로운 이름을 지어달라고 하고 싶었다. 쉽게 생각하면 개명을 하고 싶으니 이름을 지어달라고도 할 수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 제대로 나의 이야기를 꺼내고 왜 이름을 바꾸고 싶은지 말하고 싶었다.
고민 끝에 편지와 함께 책을 보냈다. 『트랜스젠더와 기독교신앙』이라는 책이었다. 평소 내가 읽던 책을 그대로 소포에 부쳤다. 책과 함께 편지도 넣었다. 구구절절한 여러 말들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는 “목사님, 저는 제가 ‘여성’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그래왔는데 늘 그 생각을 억누르며 살아왔어요. 어떻게든 그냥 살아보려고 했어요. 그게 아니더라도 제 인생은 충분히 복잡하고 다난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우울하고 살고 싶지 않은 이유가 꼭 그것만은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영향이 있었어요. 그럼에도 그냥 살아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아요.” 라는 이야기를 적었다. 편지를 보내고 한참 후에 답이 왔다. 주일 새벽의 일이었다. 긴 답장에는 나를 멈추게 한 문장이 있었다. “나 한 사람 정도는 네 선택에 대해 설명해야하는 ‘과정의 고단함’을 생략해도 괜찮다. 그건 너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네가 말하려는 이야기의 내용보다, 그걸 예의 갖춰 말해야하는 과정에 네가 감당해야 하는 심리적 괴로움에 직면하는 게 나는 더 힘들기 때문이다.”
커밍아웃은, 그래 솔직히 고단하다. 끊임없이 나를 설명해야하는 일은 지루하고 귀찮으며 때로 힘겹다. 그가 나에게 그 고단함을 건너뛰어도 좋다고 말하고 내가 힘든 것이 그에게도 힘들다고 말해주어서 좋았다.
사람과 더불어 사는 것은 고단하다. 나는 앞으로도 나를 설명해야 할 테고, 이 세상에는 너무나 다양한 사람다. 그 다양함 속에서 허우적대다 보면 물을 먹는 일도 태반일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은 다양함 속에 동동 떠다니면서 하늘을 바라보게 된다. 너무 맑게 갠 하늘이다. 이 기쁨을 잊지 말아야지. 내가 이 관계망 속에서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그게 얼마나 커다란 복인지 꼭 잊지 말아야지.

이장의 추천(9월 15일 ~ 9월 30일)
[텀블벅] 성소수자를 위한 의료기관 이용 가이드북
퀴어들에게 건네는 의료기관 이용에 대한 모든 것 | ~9월 30일까지 | https://tumblbug.com/qlifebooks3 | 주관 : 큐라이프협동조합
[토크쇼] 정상성을 부수고 새로 짓는 퀴어한 세계 : 퀴어페미니즘 토크쇼!
‘다른 삶’과 ‘다양한 삶’의 모양에 대해 나누는 시간 | 일시 : 9월 18일(금) 저녁 7시 | 연사 :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관계의 말들> 작가인 홍승은 작가님 | 장소 : 페미니즘 책방 넘나들기(대구시 남구 현충로 40길 19 (1층) 페미니즘 책방 넘나들기) | https://forms.gle/oKyfXVPetjWJeGzo7 | 주관 : 책방 넘나들기 | 지원 : 비온뒤무지개재단
[기후정의행진] 지구를 불태우는 폭주를 멈춰라
일시 : 9월 19일(토) 12시 ~ | 장소 : 서울 시청 ~ 숭례 | 주최 : 919기후정의행진조직위원회
[영화] 게이합창단 지보이스 다큐 <위켄즈> 개봉 10주년 기념 상영회
일시 : 9월 18일(금) 19:30 | 장소 : CGV피키디리1958 4관 | https://forms.gle/RvCbTQeNsQ4yBsUb9 | 주관 :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이 북클럽] 우리 안의 경계들 _ 인종주의, 이주노동, 이주여성
일정: 2026년 9월 16일부터 매주 수요일 4주간, 저녁 7:30-9:30 | 진행 : 차정아 | https://ichungeoram.com/meet/?idx=287 | 주관 : 청어람
캔디의 P.S 9월 23일은 바이섹슈얼가시화의 날입니다. 바이섹슈얼 캔디는 백날천날 가시화하고 싶은데, 이런 날 아니면 사실 잘 가시화가 되지 않아 아쉽습니다. 9월 23일 잊지 마시고, 바이의 자긍심을, 바이 앨라이로서의 연대감을 잊지 말아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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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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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아
사랑하는 캔쓰, 이번 화로 이렇게 소식 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캔디 님께서 이사를 통해 받은 긍정적인 기운이 날로 넓어지고 깊어지기를, 오쓰 님의 커밍아웃이 덜 고단하기를 기도합니다. 호르몬 쫌 부럽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용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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