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왜 뉴스레터까지 손을 대는가!
지난 겨울을 지나면서 캔디와 오쓰는 뉴스레터를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팟캐스트 때와 같았습니다. ‘우리 둘이 재밌는거 하고 싶어!’,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 그래서 뉴스레터를 만들기로 둘이 합의는 하였는데요, 그래도 계속 의문은 남았습니다. 왜 우리는 뉴스레터를 우겨 댄 걸까요? 이토록 수많은 SNS에 매일매일 떠들어대고 있으면서도 왜 계속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왜 우리는 이토록 떠들고 싶은걸까? 도대체 뭘 떠들고 싶은걸까? 이토록 투명한 인생을 살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래서 다시 여러가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관종인가?’ - 꽤 오랜시간 우리는 관종이 아니다! 라고 주장하며 살았지만요, 우린 관종이 맞는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게 좋고, 관심을 받기 위해 이야기 하고 싶기도 합니다. ‘우리는 오지랖이 넓은가?’ - 그렇다. 세상 여러가지 일에 관심이 많다! 까지 쓰다가 멈칫 했습니다. 관심이 많은 것과 오지랖이 넓은 건 다른 문제이니까요. 전 오지랖이 넓습니다. 세상의 사소한 문제들의 해결에 힘을 쏟고 싶어합니다. 사람들과 소소한 고민을 나누는게 소중하고, 그걸 해결해나가기 위해 고민하는게 기쁩니다.
‘오지랖과 뉴스레터는 도대체 무슨 관계인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더 잘 건네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SNS에 쏟아내는 글들을 좀 더 잘 정리해서 건네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난무하는 포스팅에서 벗어나, 우리의 삶과 우리의 이야기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건네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팟캐스트는 녹음해서 편집해야 하는데, 메일링 편집보다 녹음 편집이 좀 더 많이 많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약간은 더 쉬운 길로 가보기로 했습니다. (그렇다고 팟캐스트를 안하느냐? 또 그건 아닙니다)
정리해 보니 이런 것이었습니다. 우리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다른 누군가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습니다. 그런데 SNS보다는 좀 더 농밀하게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SNS보다는 좀 더 집중해서 저희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건넬 때, 좀 더 정리하고 잘 골라낸 다음에 노골적으로 나누고 싶기도 했나 봅니다.
그래서 뉴스레터로 왔습니다.
퀴어동네 이장 뉴스레터는요! 매달 첫째 셋째 화요일에 찾아갑니다. 팟캐스트와 유튜브로는 목요일쯤에 만나실 수 있습니다. 캔디는 삶의 소소한 이야기와 퀴어 동네의 소식을 전합니다. 오쓰는 오쓰의 관심있는 활자/영상/소리들을 공유하고, 퀴어 동네의 감상을 전합니다.
우리 올해는 좀 더 가깝게 활자로 만나보아요.

캔디는 퀴어들과 사소한 재밌는 일 백만가지를 해나가고 싶다.
캔디는 누구인가. 요즘 제일 먼저 설명하는건 오쓰의 와이프이다. 난 오쓰의 와이프다. 2024년 8월 15일에 결혼했다. 캔디는 꿈냥이, 막둥이, 무타의 집사이다. 이 중 둘은 무지개 다리를 건넜고, 지금은 무타만 남았다. 캔디는 바이섹슈얼이다. 고등학교때 정체화했고, 그 이후에 큰 틀에서 정체성은 변화한 적이 없다.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서울에 올라왔다. 생각보다 사투리를 많이 쓴다고 한다. 오쓰는 가끔 캔디가 쓰는 단어를 못알아듣는다. 생각보다(?) 오래 성소수자 단체에서 활동을 했다. 성소수자 단체에서만 활동하진 않았다.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도 일했고, 일반 회사를 다닌 적도 있다. 2013년에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라는 단체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오늘내일부터는 큐라이프협동조합에서 일을 한다. 꽤나 오래 근속하고 이직하는 것이다. 멋지다고 생각하는 경력으로는 은평구 인권위원회 인권위원(현)과 국제 성소수자 협회 아시아지부(ILGA Asia) 공동의장(전)이 있다.
여러 번의 꽤 괜찮은 사람들과 연애를 했다. 그중 한 사람과 10년이 넘는 연애를 했고, 그의 투병과 장례를 함께 지냈다. 이 와중에 40대도 되었다. 그러면서 나이 듦과 돌봄 등에 관심을 더 많이 가지게 되었다. 애도의 어쩌고저쩌고 단계를 거친 후 오쓰를 만났다. 오쓰와 파바박! 한 후 급하게 동거를 시작하고, 같이 살다가 결혼도 하고, 결혼하면서 대(對)가족 커밍아웃도 하고, 같이 고양이도 키우고, 고양이 돌봄도 하고, 고양이 장례도 하고, 집도 돌보고, 같이 밥도 먹고 같이 잠도 잔다. 관계를 다지는 데 가장 중요한 리츄얼이라면 매일 밤 하는 함께 이빨 닦기와 여러 기념일마다 하는 손잡고 인사하기이다.
지난 3월, 돌봄과 장례, 만남과 결혼의 시간을 담은 에세이 “우리가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을까?”를 출간했다.
책이 좀 잘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퀴어들이 보고, 레퍼런스를 삼고, 공감하고, 비-퀴어들이 보고 퀴어의 삶을 알고, 사회의 제도에서 배제되어 있을때 생기는 일들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책을 내고 한달이 지났는데, 이런저런 홍보가 되었고, 어제는 급기야 부산에서 방송을 탔다!
캔디는 누구인가를 쓰다가 책 소개까지 쓰고 나서 좀 갈 길을 잃었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 본다. 캔디는 이런 사람이다.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사람에게 관심이 많다. 사람에게 무관심하다. 이것은 너무 TMI인가.
나는, 사람들과 함께 나이들고 싶다. 함께 나이 듦을 상상하고 싶다.
나는, 취미생활을 백개쯤 하고 싶다.
나는, 사람들과 만나 정기적으로 수다를 떨고 싶다.
나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뭐든지 될 꺼라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다.
나는, 퀴어들과 앨라이들과 사소한 재밌는 일 백만가지를 해나가고 싶다.
나는, 사소한 일들이 모여 세상을 바꿀 거라는 위대한 믿음이 있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쓰는 살아남아서 멋쟁이 퀴어르신이 될 것이야, 도린처럼!
오쓰는 누구인가. 물론 캔디의 와이프다. 신학을 공부하고 있고, 교회에서 일을 한다. 기독교 시민단체에서 일을 하고 있기도 하다. 살면서 발 뻗을 자리를 잘 찾아다닌 덕분인지 제법 오픈리 퀴어로 살고 있으나(사실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사람들은 내가 퀴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안다. 다들 대단한 게이다를 가지고 있어들) ‘그것이 완전한가’라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하기는 어렵다. 그러니까 이 말은 아주 평범한 K-퀴어라는 말이기도 하겠다.
얼마 전에 교회 장로님이 내게 혼자 사냐고 물었다.[1] 내가 아니라고 답하자 장로님은 내게 부모님과 함께 사냐고 질문했다. “독립했다.”고 답하자 그는 그게 무슨 말인지를 되물었고, 그제야 나는 결혼을 했다고 답했다. 장로님은 아주 활짝 웃으면서(내가 비혼주의자처럼 보였던 모양이지) 신랑이랑 같이 산다는 말을 그렇게 어렵게 하느냐고 말했고, 자꾸만 잘했다고 말했다.(무엇을?) 나는 그저 웃었다.(잘하긴 잘했으니까)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캔디를 신랑으로 만들었다.
나도 장로님과 틀려먹은 스무고개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친구랑 산다거나 혼자 산다는 거짓말도 하고 싶지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만난지 두달이 채 되지 않은(우린 주마다 한 번 만나니까 따지고 보면 8번을 채 만나지 않은) 장로님께 태초부터 시작된 나의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캔디가 신랑이 되는 것을 방기했다. 아, 밥 벌어 먹고 사는 일은 이렇게나 비루하다.
이렇게 너절한 한 낮을 보내고 나면 집으로 돌아와 나의 자긍심을 채워야 한다.
요즘 내 한 밤의 자긍심은 퀴어아이(Queer Eye: More than a Makeover)[2]다.

그 날 본 퀴어아이의 에피소드는 워싱턴 토박이 70세 흑인 레즈비언 도린의 이야기였다. 도린은 40년 동안 함께했던 파트너 다이앤이 세상을 떠나자, 여동생 조와 조카손녀 브릴린, 증손녀 소소와 함께 살게 된다. 도린은 오랫동안 원가족과 왕래가 없었고, 그래서인지 거실에서 둘러 앉아 함께 텔레비전을 보는 것조차 싫어했다. 조는 그런 도린이 답답하기만 했다. 둘의 갈등이 조금씩 심해질 즈음 브릴린이 퀴어아이에 사연신청을 했다.
화면 속 도린은 심술이 가득해보였다. 조와 브릴린이 무어라 무어라 채근하는 것이 듣기 싫은 모양이었다. 그는 침대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그의 방만이 그가 머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것마냥 굴었다. 그런 그의 뾰족뾰족한 마음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다. 캔디가 죽고 나면(아마도 커다란 확률로 그가 나보다 먼저 죽을 것이다. 나는 그보다 많이 어리니까 메롱.) 나는 어떤 삶을 살까? 원가족과 다시 살게 될까? 그 상황이 나는 괜찮을까? 나는 금방 도린이 되어서 그 에피소드를 시청했다.
에피소드 초반의 도린은 가족 중 유일한 퀴어로서 겪는 어려움과 다이앤을 잃은 슬픔에 대해 이야기했다. 퀴어아이의 멘토 중 한 명인 카라모는 도린과 조를 워싱턴DC에 있는 성소수자 역사 센터에 데려가 도린이 레인보우 히스토리 프로젝트[3]에 참여하게 했다.
카리모는 도린에게 이렇게 말한다.
“도린, 당신이 다이앤과 함께 보낸 40년의 시간은 제게 큰 감동을 주었어요. 젊은 퀴어로서 제가 사랑을 찾을 수 있고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건 당신 같은 분들을 본받았기 때문이에요. 당신이 이 이야기를 꼭 들려줬으면 좋겠어요. 이 이야기는 중요하기 때문에 기록으로 남겨야 해요. 이 나라가 존재하는 한, 사람들은 도린과 다이앤의 이야기를 기억할 거예요”
도린은 그 말에 힘 입어 자신의 이야기를 구술기록으로 남겼다. 그 이야기 속에는 가족과 관련된 이야기도 있었다.
“엄마가 나를 증오에 찬 눈으로 바라보던 게 기억나요. 마치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요. 엄마는 나를 부끄러워했고, 내가 가족의 일원이 아니라고, 엄마의 딸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중략) 그래서 열네 살에 집을 나와 뒤도 돌아보지 않았어요.”

조는 그의 옆에서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들었다. 조는 그제야 도린이 가족 안에서 겪었던 어려움을 이해하게 됐다. 도린이 들려준 이야기는 이제까지 조가 알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카리모는 도린에게 그의 구술 기록 마지막을 이렇게 장식해주기를 부탁했다. 도린은 그의 청을 흔쾌히 들어준다. “나는 자랑스러운 70대 흑인 레즈비언, 도린입니다” 도린이 말했다. (엉엉 너무 멋져요 도린!)
에피소드 말미에 카리모와 브릴린은 또 다른 작당을 한다. 브릴린은 카리모에게 자신의 대가족 중에 퀴어들이 열댓명은 된다(가족에게 관심이 없었던 도린은 몰랐겠지만!)고 말했다. 그들이 도린을 얼마나 만나고 싶어하는지, 그들에게 도린의 존재가 얼마나 커다란지를 듣던 카리모는 당장 가족모임을 준비해보자고 이야기했다. 게이바에서! 드랙쇼를 함께보는 가족모임! 카리모와 브릴린의 갑작스런 제안에 도린은 놀란 듯도 보였지만, 이내 기쁘게 그 제안을 받았다. (아마도 그는 그에게 또다른 퀴어 가족이 있다는 말이 반가웠던 듯 보였다) 그곳에서 도린은 정말 멋진 퀴어-르신이었다. 엉덩이를 흔들며 드랙 퍼포머에게 팁을 주는 멋진 퀴어르신.
멋진 퀴어르신을 보니 한낮의 지질함은 다 별 것이 아닌 기분이었다.
어떻게든 나는 오래오래 살아 남을 것이고, 엉덩이춤을 추며 드랙쇼를 즐길 것이다. 도린처럼!

퀴어 동네 이장의 추천(4월 8일 ~ 21일)

영남권(부산·대구·울산) 혼인 평등 소송 기자회견
4월 8일(수) 11시 각 지역 가정 법원 앞 영남권에서 시작되는
3쌍의 동성부부의 혼인평등소송에 많은 참여와 응원해주세요

<3xFTM 공동체 상영>
세 명의 트랜스남성의 이야기를 담은 한국 다큐멘터리
4월 10일(금) 저녁 7시 30분
살림의료사협 역촌이랑(서울시 은평구 역촌동 50-50 살림한의원 지하 1층)
참가비 1만원 | 기업 158-093831-01-017 김ㅅㅂ

비온뒤무지개재단 후원주점 <비상에서 비상으로>
4월 11일(토) 13시~22시 | 신촌 친구친구(서대문구 연세로 7안길 22 지하)
성소수자 운동의 든든한 지원처인 비온뒤무지개재단(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 앨라이 도서전, 퀴어 유튜브 채널’큐플래닛’)도 응원하고 맛있는 음식, 술, 드랙쇼도 즐기세요

우리가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수 있을까 북토크
4월 17일(금) 저녁 7시 30분 이제홀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11길 20, 지하 1층 | 참가비 5,000원
캔디 이장님의 책 《우리가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수 있을까》의 북토크입니다!
책 내용과 책 주변의 이야기들을 함께 나눌 예정입니다.
각주
- [1] 장로님에게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다. 지금 있는 교회에서 일을 시작한 지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와 나눠야 하는 다른 이야기들이 너무 많았다. 일단 4월에는 예수가 부활하기도 했고, 여하간에 커밍아웃을 하기에는 적절한 때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 [2] 퀴어아이는 2018년에 넷플릭스에서 만든 미국의 예능프로그램으로, 매 회 다섯명의 멘토가 한 주동안 자신의 전문 지식(음식, 인테리어, 헤어, 문화, 패션)을 활용하여 한 사람의 삶을 개선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한국으로 따지면, 러브하우스와 렛미인의 건강한 버전이랄까나. 나름 장수 프로그램인 퀴어아이가 올해, 시즌10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된다.
- [3] https://rainbowhistory.org/ 레인보우 히스토리 프로젝트는 자원봉사자들이 운영하는 기록 보관 프로젝트로, 구술 역사 기록을 포함해 워싱턴DC의 퀴어 삶과 활동을 기록하는 프로젝트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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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음
넘 멋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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