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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노래가 슬픈 건 사람을 포함해 무릇 생명을 가진 유한한 존재의 본질이 슬픔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이 말은 김민기의 시선이 존재의 본질에 닿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존재의 본질에서 길어내는 슬픔은 고즈넉한 슬픔이다. 그것은 윤동주의 시 '자화상'의 화자처럼 내면의 우물을 찬찬히 응시해야 얻을 수 있는 성찰적 슬픔이다. 나와 너는 슬픈 존재로 이어져 있다는 감각이야말로 연민과 연대의 참된 기초일 것이다. 그 감각은 당대에 슬픔을 체현한 것으로 보이는 존재들, 노동자와 농민, 도시 빈민·기지촌 여성·광부·아이들에 대한 관심으로 향하는 게 자연스럽다. 김민기의 노래는 현실을 고발할 때조차 큰 소리로 외치거나 주장하지 않는다. 그저 사람들의 삶을 담담하게 이야기할 뿐이다. 그럴 때 우리말의 결을 한껏 살린 그의 언어는 더없이 단순하고 투명하다. 무엇보다, 탁월하게 서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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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선생은 돌아가기 사흘 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묻는 지인에게 '겸손'이란 말을 남겼다고 한다. 선생은 생전 인터뷰에서 관용으로 흔히 번역되는 톨레랑스에 대해 "관용보다는 용인"이라며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해 덮어둔다는 뜻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고 용납한다는 취지"라고 했다. 겸손해야 다름을 인정하고 용납할 수 있다.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는 이들에게 상대를 용인할 틈과 여유는 없다. 그러니 용인하려면 스스로 모자랄 수 있고, 상대가 옳을 수 있음을 열어둬야 한다. 이는 갈수록 찾기 힘든 삶의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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