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2024.07.25 | 조회 3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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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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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나는 나를 잊게 해주는 누군가의 이야기에서 느리고 모호한 쾌감을 느꼈다. 내가 좋아하는 건 아무도 찾지 않는 도서실의 고전문학 서가에 앉아 책을 통해 누군가의 느낌이나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글로 쓰이고, 종이에 인쇄된 인간의 욕구가 나에게는 위협적이지 않을 만큼만 생생했고, 그렇기에 안전하게 나를 열 수 있었다.
—김멜라 「이응이응」

 

나의 소설을 읽고, 나의 입력값을 초월하여 당신의 출력값을 내는 일. 이는 나의 성취이자 당신의 성취로, 두 사람이 각자의 특별함을 함께 얻는 순간이다. 하나의 특별함이 곧 다른 하나의 평범함을 전제한다면, 둘이 함께 특별해진다는 모순적 사태는 어떻게 발생할까. 어쩌면 그러한 모순만이 우리를 진부한 삶에서 잠깐이라도 이탈시킨다. 한 사람의 개별성을 증빙하는 것은 상품도 상패도 아니라 다른 한 사람이다.
—김기태 「보편 교양」 작가노트

 

인생은 계획하고 예측한 대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뭐가 되든 될 거라는 격언이 무책임한 말이 아니라는 것도.
'흐르다'라는 말이 좋다. 움켜쥐고 붙잡아두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아니 꽤 자주) 그저 흐르도록 내버려두고 싶다.
—성해나 「혼모노」 작가노트

 

# 김멜라 작가

애도가 주는 슬픔의 정서에 내가 자꾸 끌리고 그걸 표현하고 싶어 한다는 건 분명하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내 삶에 상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슬픔이 우리를 묶어주는 힘이자 자신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힘이기 때문이다. 윤동주 시인의 <팔복> 이라는 시에선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말이 8번 반복되고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라는 아주 슬픈 진술로 끝난다. 내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하던 사람이 사라진 후에 느끼는 상실감은 한편으론 그와 나를 깊이 연결해주는 일종의 영혼의 고리로 존재한다. 그래서 나도 슬픔이 주는 복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슬픔을 복이라고 여기기까진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말이다.

사랑에는 늘 슬픔이 있다. 사랑을 잃었을 때 상실이 있고 애도가 뒤따라오는데, 이것 없이 과연 사랑이 사랑다울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그렇진 않은 것 같다. 슬픔이 주는 복이라는 게 바로 그런 것 같다. 슬픔이 있을 때 우리의 삶이 훨씬 충만해진다. 사실 슬픔을 자주 다루는 데에는 그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는 이유도 있다. 사랑하는 것을 잃는 데 대한 두려움. 상황의 양면성이 주는 충만함을 알면서도 여전히 두려운 거다.

데뷔한 지 10년이 됐다고는 하지만 그중 6~7년은 거의 무명 작가였다. 자신의 삶과 글을 잘 채워가다 보면 분명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에게 호응해주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소설가로서의 슬픔, 힘듦도 분명 있는데 이건 근력운동과 비슷하다. 운동을 할 땐 힘들지만 견뎌내면 그 근력이 내 것이 된다. 글도 마찬가지다. 어떤 글을 쓰든 매번 힘든 시기가 온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견뎌낸다면 그 시간이 쌓여 나를 좋은 곳으로 이끌어주는 길이 된다.

원문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문을 꼭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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