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에 단어들이 녹지 않게

2024.10.21 | 조회 4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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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 작가 첫 수상 소감

아무리 읽어도 다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쏟아져 나오는 좋은 책들을 놓치지 않고 읽으려 시도하지만, 읽은 책들만큼이나 아직 못 읽은 책들이 함께 꽂혀 있는 저의 책장을 좋아합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다정한 친구들과 웃음과 농담을 나누는 하루하루를 좋아합니다.

그렇게 담담한 일상 속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쓰고 싶은 소설을 마음속에서 굴리는 시간입니다. 아직 쓰지 않은 소설의 윤곽을 상상하고, 떠오르는 대로 조금 써보기도 하고, 쓰는 분량보다 지운 분량이 많을 만큼 지우기도 하고, 제가 쓰려는 인물들을 알아가기 위해 여러 방법으로 노력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소설을 막상 쓰기 시작하면 필연적으로 길을 잃기도 하고, 모퉁이를 돌아 예상치 못한 곳으로 들어설 때 스스로 놀라게도 되지만, 먼 길을 우회해 마침내 완성을 위해 나아갈 때의 기쁨은 큽니다. 

앞으로 6년 동안은 지금 마음속에서 굴리고 있는 책 세 권을 쓰는 일에 몰두하고 싶습니다. (…) 그 과정에서 참을성과 끈기를 잃지 않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일상의 삶을 침착하게 보살피는 균형을 잡아보고 싶습니다.

원문

 

#

봄부터 북향 방에서 살았다
처음엔 외출할 때마다 놀랐다
이렇게 밝은 날이었구나
겨울까지 익혀왔다
이 방에서 지내는 법을

북향 창 블라인드를 오히려 내리고
책상 위 스탠드만 켠다

차츰 동공이 열리면 눈이 부시다
약간의 광선에도

눈이 내렸는지 알지 못한다
햇빛이 돌아왔는지 끝내
잿빛인 채 저물었는지

어둠에 단어들이 녹지 않게
조금씩 사전을 읽는다

투명한 잉크로 일기를 쓰면 책상에 스며들지 않는다
날씨는 기록하지 않는다

밝은 방에서 사는 일은 어땠던가
기억나지 않고
돌아갈 마음도 없다

북향의 사람이 되었으니까

빛이 변하지 않는

한강, '북향 방', '문학과 사회 2024년 가을호'

원문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문을 꼭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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