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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님은 연락을 받고 할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갔다. 그리고 할머니가 노화에 따른 난청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닌, 그저 귀가 귀지로 가득 차서 들리지 않았던 것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할머니는 이비인후과에서 치료를 받고 보청기를 맞추지 않았다. 그냥 귀를 팠다. 도대체 얼마만이었을까? “노인이란 그런 거야. 아주 익숙하고 단순한 것을 놓치고 있는데도 모르게 되는 것. 내가 마지막으로 귀를 판 게 언제였는지 하는 아주 사소하고 당연한 것을 잊고, 그것이 쌓이고 쌓여 내 귀가 들리지 않게 될 때까지 무감해지고 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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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들은 행복의 천재여서, 굳이 잘하는 게 없어도 매 순간의 행복을 누릴 줄 안다. 어린 시절에는 눈앞의 태양과 바다, 모래만 있으면 그 누구보다 행복한 어린이로 하루를 가득 채울 수 있다. 그에 비하면, 나이 들어가는 일은 행복과 기쁨을 점점 잃어가는 일인 것만 같다.
그러나 어린이는 몇 년간 노력하여 피아노를 능숙하게 치게 된 기쁨이나, 책 한 권을 써내고 난 뒤의 성취감, 몇 달씩 단련한 신체로 구사하는 복싱의 즐거움 같은 것은 아직 알지 못한다. 나이 듦에는 확실히 나이 듦만의 장점이 있는데, 그 장점은 세월을 허비하지 않았다는 걸 전제로 한다. 나이 들수록 행복의 비결이 있다면, 잘하는 게 많아지는 게 아닐까 싶은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내가 좋아하는 음악 몇 곡을 피아노로 치고, 니체의 후기 저작이나 소포클레스의 비극을 해석하는 책을 읽으며, 아들이랑 탁구 치거나 복싱을 배우며, 인생을 거쳐 쌓아온 것들은 누릴 줄 아는 사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싶다. 원하지 않는 건, 그냥 멍하니 종일 TV를 보거나 세월을 통해 쌓거나 성장한 것 없이 남은 나날들을 죽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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