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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그림』 뚜루(김진아)
모두 우려했지만 동네서점은 인기가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우려한 대로 인생 전체가 흔들릴 만큼 큰 실패와 고통도 겪게 됐다. 외형적으로는 사업의 실패라는 고통, 관계적으로는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갈등에서 오는 두려움, 내적으로는 나라는 인간의 무능하고 저급한 정신의 민낯을 맞닥뜨리며 받은 충격과 실망 등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그토록 고통스러웠던 건 삶을 잘 건사하고 있는 척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는 게 만천하에 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마샤 리네한은 이를 '겉보기상의 유능함apparent competence'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이게 몸에 밴 사람들은 무질서에서는 버티기 힘들어 결국은 정서적 혼란과 고통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보면 나는 전형적으로 잘 사는 척하는 사람이었다.
사업 실패로 밑바닥을 쳤다고 생각했지만 건강이 무너지고 나니 그건 그저 얄팍한 자기연민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점점 홀가분해졌다. 평생 채우기에 급급했던 사람이 텅 비워진 채 하루 종일 누워 있느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됐을 때, '그림'이라는 새로운 물결이 슬그머니 다가왔기 때문이다.
아무튼 오랜만에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는 지체하면 안 된다. 귀한 마음이니까. 결국 삐뚤빼뚤 그리기 시작했다. 틀리는 거야 괜찮다. 어차피 나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아니다.
나를 기분 좋게 해주는 아이템들에 둘러싸이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이런 아이템들은 어느 때고 우리를 공격할 준비가 돼 있는 기분 나쁜 일들이나 말들에서 최대한 빨리 빠져나올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언제나 켜질 준비가 돼 있는 블루투스 스피커, 몸을 감싸주는 가벼운 샤워가운, 유럽 어느 벼룩시장에 있을 것 같은 쨍한 빨간 화병, 언젠가 다시 떠날 때 가져갈 캐리어, 엄마가 준 기억 속 가장 오래된 선물... (…) 그림을 그림으로써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뭔지 알았고 그것들을 알아냈기에 나를 유해한 환경에 방치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었다. 나는 기분 나쁜 순간을 얼른 알아채고 거기서 빨리 빠져나오기 위해 기분이 좋아지는 아이템들을 자꾸 떠올린다. 당신도 당신만의 아이템들을 찾아서 떠올려보길 바란다.
매일 제자리걸음을 걷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는 나선형 계단을 오르고 있어
진짜로 살기는 어렵지만 진짜인 척하는 건 쉽고 편하다. 그냥 그런 척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 진짜는 삶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라 몸에 배어 있고 은은하게 빛난다. 그리고 늘 그 자리에 있다. 세스 고딘은 그의 책 《더 프랙티스》에서 이런 진짜들을 "프로"와 "프로의 일"이라고 지칭한다. 프로의 예술은 자신만을 위해 펼쳐지지 않는다. 이는 누군가를 위해 만들었단 뜻이고 그러니 용감하고 이타적인 행위다. 프로들은 진짜의 삶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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