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전은 미션이 아니다
흔히 회사의 비전을 말할 때 소비자들이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쏙 빼놓고, CEO나 경영진 입장에서의 욕심만을 이야기할 때가 있다. 비전은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으로, 회사의 '목표'를 회사의 '비전'이라고 착각하면 안된다.
보스턴 필하모닉 지휘자 벤자민 잔더는 말했다. "비전이 무엇이냐고요. 다른 사람들의 눈을 빛나게 하는 겁니다. 저는 지휘자로서 연주자들의 가능성을 끌어 냈을 때, 그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느낍니다. 시람들은 자신의 속에 있는 가능성이 끄집어 내어 졌을 때, 눈이 가장 빛납니다. 지휘자의 작업은 그 눈을 찾아내는 겁니다. 비전이 무엇이냐고요? 사람들의 눈을 반짝이게 만드는 겁니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악기를 연주하거나 목소리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의존하는 것은 단 한 가지 뿐이죠. 다른 연주자들이 더욱 힘을 내게끔 만드는 지휘자 내면의 힘. 이것 뿐입니다. 돌아보면 기업의 CEO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들은 직접 제품을 개발하거나 연구하지 않죠. 오로지 의존하는 것은 실제로 일을 하는 사람들 뿐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평가받을 수 있는 유일한 잣대는 사람들의 눈을 반짝이게 하는 내면의 힘. 그것 뿐이겠죠."
# 책 <제5도살장> 커트 보니것
- 그리고 물론 롯의 부인은 그 모든 사람과 그들의 집이 있던 곳을 돌아보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기어이 뒤를 돌아보았는데, 나는 그 점 때문에 그녀를 사랑한다. 정말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 내가 트랄파마도어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 죽는다 해도 죽은 것처럼 보일 뿐이라는 점이다. 여전히 과거에 잘 살아 있으므로 장례식에서 우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짓이다. 모든 순간,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순간은 늘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늘 존재할 것이다. 트랄파마도어인은 예를 들어 우리가 쭉 뻗은 로키산맥을 한눈에 볼 수 있듯이 모든 순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그들은 모든 순간이 영원하다는 것을 봐서 알고 있고, 그 가운데 관심이 있는 어떤 순간에도 시선을 돌릴 수 있다. 마치 줄로 엮인 구슬처럼 어떤 순간에 다음 순간이 따르고 그 순간이 흘러가면 그것으로 완전히 사라져버린다는 것은 여기 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착각일 뿐이다.
- 모든 것이 아름다웠고, 어떤 것도 아프지 않았다. Everything was beautiful, and nothing hurt.
# STEM의 역설
지난 2017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국제 로봇 경연대회에서 은메달을 수상한 아프간 여학생 팀은 아프가니스탄 변화와 희망의 상징으로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변화와 희망의 상징과도 같았던 이들이 최근 다시 지면에 등장했다. 탈레반 점령이 임박하자 팀원 중 일부가 활동 거점이었던 서부 헤라트에서 수도 카불을 거쳐 카타르로 피신했다는 기사가 워싱턴 포스트 뉴욕타임스 등 미국 매체에 보도된 것이다.
STEM의 역설은 여권이 높아진다고 해서 전통적인 남성 중심 분야나 직업군의 성별 쏠림 현상이 완화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견 여성주의의 실패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성평등 지수가 높은 국가에서는 여성이 어떤 분야에 관심이나 적성이 없다면 다른 여러 가지 길을 모색할 자유와 여유를 갖게 된다는 점을 연구 결과는 시사하고 있다. 물론 임금, 건강, 정치 등 몇 가지 객관적 지표로 한 사회의 성평등 여부를 따지는 데는 한계가 있으며, STEM의 역설은 “여권이 높은 선진국”에서조차 여전히 사회적 인식과 편견 때문에 여학생들이 어려서부터 꾸준히 이공계에서 멀어지도록 교육받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지적도 있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어떤 이유로 어떤 전공을 선택했든 고등 교육을 받은 아프간 여학생들이 개인적인 성취와 경제적 자립을 이룸은 물론, 이를 통해 자기 분야와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고, 나아가 아프간 여권 신장에 큰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한 로봇 연구팀원들은 계속해서 학업을 이어나갈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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