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게 언니가 된다
바로 끓여 먹을 수 있는 알탕이 문 앞까지 배달 오고, 늦은 밤에도 창 너머 들리는 차 소리가 멈추지 않는 서울이 신기하다는 그의 며칠을 가만히 담는 이야기는, 그 가만한 날들 가운데 잊을 수 없는 방점들을 남긴다. 무려 13년 만에 ‘MAMA’ 무대에 오르기 전날, 이효리는 엄정화에게 ‘언니는 언니 없이 어떻게 버텼어요?’라고 묻는다.
김완선과 엄정화, 이효리, 보아, 화사. 갑작스레 모인 라인업치고는 특별한 계보처럼 느껴지는 이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들은 말하지 않아도 통하고 말을 하면 더 잘 통한다. 이제는 자신을 둘러싼 갖은 시선에서 벗어나 서서히 자기만족을 찾아가는 다섯 명의 아티스트. 그들을 둘러싼 모든 희로애락이 이제는 그저 그들의 삶 자체로 덤덤하고 자연스럽다는 상황의 묘처럼 느껴진다.
13년 전과 모든 것이 달라졌는데 나만 그대로인 것 같은 기분에 쓸쓸함을 토로하는 후배에게 ‘십 년 뒤에 보면 지금이 정말 어려 보인다’라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위로를 건네는 언니. 이 언니는 모두 다른 언니이며, 누군가의 동생은 또 누군가의 언니가 된다.
# 모든 것이 끝난 자리에서도 삶은 이어진다
“사는 일이 꼭 앞으로 나아가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돌아보고 뒤가 더 좋았으믄 거기로 돌아가도 되는 일이제.” 세상은 아픈 과거를 훌훌 털어버리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주문하지만, 그는 꼭 그럴 필요 없다며 과거가 더 좋았으면 그 기억으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다만 불행한 순간에 대한 과도한 집착에서 벗어나라고 한다.
딸은 아버지의 말을 밑알 삼아 조금씩, 아주 조금씩 절망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한다. 작가의 말대로 “모든 것이 끝난 자리에서도” 삶은 이어진다.
# 지금 우리 학교는
고통을 겪어낸 주인공들에겐 사회를 믿을 수 없다는 불신과 냉소만이 남고, 서로가 서로에게 방역 우산 같은 존재가 되어야 고난을 극복할 수 있다는 팬데믹 시대의 호혜성 원칙은 다시금 각자도생과 배제의 세계관으로 대체된다. 결국 <지우학>의 ‘지금’엔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고, ‘우리’는 혈연과 애정 관계로 묶인 사적 집단으로서만 호명된다. 오해해선 안 된다. 이것은 디스토피아에 대한 재현이 아니다. 디스토피아를 향한 무기력의 학습이다. 지금, 우리에 대한 상상력을 갉아먹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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