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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강의 자서전 —앤 카슨
- 형용사(adjective, 그리스어로는 epitheton)는 그 자체가 ‘위에 놓인’, ‘덧붙여진’, ‘부가된’, ‘수입된’, ‘이질적인’이라는 형용적 의미이다. 형용사는 그저 부가물에 지나지 않는 듯하지만 다시 잘 보라. 이 수입된 작은 메커니즘은 세상의 모든 것들을 특정성 속에서 제자리에 머무르게 한다. 형용사는 존재의 걸쇠다.
- 게리온은 자신이 놀라웠다. 그는 이제 거의 매일 헤라클레스를 만났다. 둘이 나누는 자연의 순간이 그의 세계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고갈시켜 낡은 지도처럼 바스락거리는 유령들만 남겼다. 그는 아무에게도 할 말이 없었다. 그는 자유롭고 빛나는 기분이었다.
- 현실은 하나의 소리다, 그러니 주파수를 맞추고 열심히 들어야지 소리만 질러대선 안 된다.
- 게리온 난 네가 자유를 누렸으면 좋겠어 우린 진정한 친구고 그래서 난 네가 자유롭기를 바라. 난 자유롭고 싶지 않아 너랑 같이 있고 싶어.
- 게리온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보도 한복판에서 그의 커다란 코트 주위로 사람들의 물결이 사방으로 흐르는 가운데 갑자기 멈춰 섰던 것이다. 게리온은 생각했다. 사람들에게 삶은 하나의 경이로운 모험이다. 그러고 나서 그는 군중의 희비극 속으로 들어갔다.
- 그리고 난 언덕 위에 선 듯한 기분을 느꼈어요. 반평생쯤 걸려서 힘들게 언덕 꼭대기에 오른 거고 반대쪽도 비탈을 이루고 있죠. 뒤를 돌아보면 딸아이가 아침 햇살 속에 작은 금빛 동물처럼 엉금엉금 기어서 언덕을 오르기 시작하는 모습이 보이겠죠. 그게 바로 우리예요. 언덕을 오르는 존재들.
- 우리에게 기분이 없었다면 우리는 일상 세계에 매몰된 채로 살아갈 것이다. (하이데거는 주장한다.) 우리가 다른 곳에 내던져진 존재임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건 심리상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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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라 치리프와 호아킨 캄프의 그림책 <아이 달래기 대작전>은 한밤중 공동주택에서 그치지 않고 우는 아기 엘리사와 이웃들의 이야기다. 처음에 고양이처럼 칭얼대던 아기는 결국 소방차처럼 울고 가족들은 어떻게든 달래려고 안간힘을 쓴다. 가만히 참기 힘들었던 이웃들이 이 집으로 모여든다. 8층 아저씨는 이야기책, 2층 아주머니는 꽃다발을 들고 왔지만 아기는 점점 더 운다. 다들 출근 준비도 하지 못한 채 날이 밝아버렸다. 엘리사를 잠재운 것은 동네에서 귀가 가장 어두우며, 아침이 되어서야 대소동을 알게 된 고령자인 엘리사의 할머니다. 할머니는 아기의 두 발을 부드럽게 붙잡더니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살살 움직인다. 아기는 호루라기 주전자 마흔두 개에서 물이 끓는 소리만큼 커다란 방귀를 뀌고 잠든다. 엘리사는 배가 아팠던 것이다.
돌봄은 스토리가 있는 노동이다. 아기가 되었든, 아픈 노인이 되었든 시간을 목적 지향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돌봄 상황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돌봄을 뜻하는 ‘케어(care)’의 어원에는 ‘마음의 부담’을 뜻하는 고대 게르만어 ‘카라(chara)’가 있다고 한다. 애초부터 산뜻할 수가 없다는 얘기다.
돌봄은 사랑 없이 불가능한 노동이지만 사랑을 앞세워 부탁해서는 안 되는 노동이다. 더 늦기 전에 우리가 함께 8층 아저씨, 2층 아주머니가 되어 돌봄의 자전거 바퀴를 함께 굴려야 할 때다. 혼자만 잠드는 편안한 밤은 원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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