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숲 입구에서

2024.09.23 | 조회 7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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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박준

시의 숲 입구에서 ‘이쪽입니다’ 하고 이끄는, ‘안으로 들어가면 어마어마한 고목과 새로 자라는 아름다운 나무들이 많다’고 안내하는 이정표 같은 나무가 될 수 있다면 족하다.

늘 끝을 생각한다. 아버지의 죽음이든 누나의 죽음이든 털거나 씻어버리지 않고 손에 쥐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글을 써서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다 보니 내 앞에 있는 생명과 얼굴에 다정해질 수밖에 없다.

작가는 성공만 한다. 실패한 글은 완성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실패를 하는가? 근원, 원천이 되는 생활에 뿌리를 딛고 있어야 한다. 생활이 감각과 태도를 만들지 않나.

글 쓰는 사람이니 기쁨이든 슬픔이든 감정을 최대한 강렬하게 만들어 놓는 게 자산 관리다. 쓰지 못하는 시간을 견디는 사람들이 작가다. 쓰지 못한 것들까지 껴안는 것이 시작(詩作)이다.

시는 삶에 대해 현명한 답을 내놓는 것보단 낯선 질문을 던지는 일에 가깝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때에도, 혹은 오랫동안 품어온 질문을 아프게 되뇌어야 하는 순간에도 시는 존재 곁에서 빛을 낸다.

원문

 

#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김수영, 「눈」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문을 꼭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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