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이 통치하는 문화

2022.03.31 | 조회 7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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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책을 사랑한 사람들

우리는 이수지 작가 덕분에 그림책이라는 작은 사각형의 무대 안쪽에 잠들어 있던 환상의 목소리를, 평면 위에서 입체적으로 만져볼 수 있었다. 글이 없는 그의 그림책에서 들려오는 어린이의 독백과 대화에 귀 기울일 수 있었다. 다가오는 발소리를, 비발디의 사계를 그림을 통해 들을 줄 아는 사람들이 되었다. 도저히 할 수 없다고 믿었던 경험을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뛰어난 예술의 능력이다.

글과 그림이 서로 도와서 의미를 만들어가듯이 같은 마음으로 돕는 세계는 멋지다. 이것이 그림책의 정신이며 어린이의 정신이기도 하다.

원문

 

# Fanocracy, 팬덤이 통치하는 문화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 마이너한 취향의 괴짜, 원하는 물건을 구하려고 텐트치고 노숙하는 기묘한 사람들…. 금전·정신적 여유와 결핍 사이를 오가는 줄서기 현장은 우리가 기사를 쓰고, 영상을 찍는 동기가 된다.

합리적인 가격에 적당한 품질의 물건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 파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던 시대를 지나, 브랜드로 대동단결하는 팬덤 비즈니스의 세계가 활짝 열리고 있다. 언제든 다른 선택지를 찾아 떠나갈 다수 대신, 소수의 강력한 열성팬을 확보하는 것이 그 출발선이다. 2022년 봄, 여의도와 가로수길을 흔든 ‘원소주 대박 사건’은 그런 팬덤 경제의 한 단면이었다.

이정재 장인라면은 기업이 거액의 모델료를 지급한 스타 연예인을 앞세워 상품 가치를 일방 홍보하는 전통적 마케팅을 벌인 사례다. 지난해 10월 하림그룹은 5년 연구 끝에 출시한 프리미엄 라면 모델로 당시 가장 뜨거웠던 오징어게임 히어로를 발탁했지만, 팬덤 효과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 스토리와 맥락이 없는 연예인 마케팅은 좀 더 깊은 교감을 원하는 소비자들을 납득시키지 못한다. ‘The 미식 장인라면’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하림그룹에선 최고위 임원이 물러나는 일까지 벌어졌다.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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