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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글을 썼다. 젖을 먹다 스르르 잠든 아기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 얼굴에서 배어 나오는 고요와 평화가 전류 흐르듯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그 마음을 기억해두고 싶었다. 나의 하루하루를 남김없이 소진하면 다시, 스스로 꽉 차오를까. 차오르는 감각도, 차오르는 마음도 다 써두고 싶었다.
이수지 『만질 수 있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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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딛는 곳에 나의 시가 있는 걸까. 그게 뭘까. 생활에서 잘 느끼고 싶었어요. 잘 더듬고 싶어요. 매일을 들여다보면서 느낀 건 세상은 때때로 잔인하도록 평화롭다는 거예요. 잔잔한 바다처럼요. 무언가 잊어버린 게 있는데 생각이 나지 않아요. 알고 싶어져요. 그런 서늘함을 느끼고 나면 그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렵고, 세상은 그대로인데 저만 변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빈 둥지, 물이 가득한 고무 대야에 빠져 죽은 매미, 핏물이 된 강, 빠르고 쉬운 죽음, 너무 오랫동안 떠도는 사람과 광장과 게이트를 오가는 사람들. 창밖을 멀리 보며 앉은 그림자. 세상과 사람의 아주 작은 신음을 들을 수 있도록 허락받은 것 같은 찰나. 그럴 때 시를 쓰게 되어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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