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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볼 때마다 여러 욕망이 찾아왔다. 잘 크면 좋겠다, 건강하면 좋겠다, 한글을 빨리 떼면 좋겠다, 구구단을 외우면 좋겠다, 받아쓰기를 잘하면 좋겠다, 어휘력이 높으면 좋겠다 등등. 그러다 보니 기대와 실망이 번갈아가며 찾아오는 것이었다. 나는 왜 그들에게 그러한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인가. 결국 부모와 아이는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존재다. 한없이 가까워지다 못해 동일시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나 나의 욕망을 아이에게 대리시키는 게 괜찮은 것인가. 그건 서로를 불행하게 할 뿐이다. 나는 그들이 내 눈치를 보는 대신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지, 어울리게 하는지 스스로 선택해 나가며 한 개인으로서 자립하기를 바란다.
아이, 어린이, 아동의 발견이란 근대에 이르러 ‘개인’의 발견과 함께 찾아온 것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어린이날의 탄생과 전후해, 그들 역시 하나의 인격체이며 일대일로 관계 맺을 수 있는 자아를 가진 존재라고 우리는 인식하게 됐다. 어린이날에 이르러 우리는 한 번 더 아이들을 돌아볼 기회를 가진다. 나의 아이가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 어린이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 날이다.
부모가 스스로 한 개인으로서 행복하고, 그래서 아이가 자연스럽게 그 길을 지향하게 만드는 것, 대신 아이가 따라올 그 길의 돌을 몇 개 골라두어 조금은 덜 넘어지게 하는 것, 부모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란 그런 것이다. 아이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 일. 그러나 그들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읽되 자신이 원하는 문법으로 빨간줄을 그어 교정하려 하지 않는 일. 부모도 아이도 저마다의 언어로 자신의 삶을 써 나갈 때, 그리고 그 언어가 자연스럽게 닮아갈 때, 그 어느 존재보다도 멀면서도 가까운 하나의 공동체가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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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나는 어린아이가 있는, 젊은 부부로 살아가는 이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영화 '어바웃타임'은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남자들의 이야기다. 영화에서 한 남자는 죽기 전 마지막 시간여행으로, 어린 아들과 함께 해변을 달리던 순간을 택한다. 사실, 예전에 영화를 봤을 때만 해도 그 장면이 잘 와닿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알 것 같기도 하다.
마음껏, 온 마음을 바닥까지 박박 긁어서 다 꺼내어 사랑해도 되는 시절, 숨이 차오르고 심장이 쿵쾅쿵쾅댈 만큼 사랑해도 되는 시절, 끌어안고 부비고 뽀뽀하고 깔깔대는 시절, 아무리 사랑해도 도망갈 리 없고, 서로에게서 도망칠 수도 없는 시절, 사랑이 강요가 되어 갇혀버린 무인도의 시절, 내 영혼을 털어내듯 걱정하고 보호하는 시절, 이런 시절은 인생에 잠시 주어진다.
신이 있다면, 신은 우리에게 잠시 온 영혼을 고갈시키듯이 사랑하라고 아이가 있는 한 시절을 주는 것 같다. 한 번 사는 인생, 그렇게 사랑할 시절을 가지라고, 삶의 가장 깊은 정수를 한 모금 마시고 돌아오라고 말이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삶이 어려운 것은 그만큼 가치 있기 때문이라고, 가치 있는 모든 것은 어렵다고 말이다. 삶의 어려움이 아이와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훼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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