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디지털 미니멀리즘> 칼 뉴포트
- 디지털 미니멀리즘은 우리가 디지털 도구와 맺은 관계에서는 더 적은 것이 더욱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리킨다. 이런 생각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단순함, 단순함, 단순함’을 외치기 오래전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렇게 물었다. “아주 적은 일만 해도 만족스럽고 경건한 삶을 살 수 있음을 알고 있는가?”
- 문제는 신기술이 초래한 큰 문제들을 작은 변화들로 해결하기는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바로잡고자 하는 이면의 행동은 우리 문화 속으로 깊이 파고들었으며, 우리의 본능을 자극하는 강력한 심리적 힘들로 뒷받침된다. 통제권을 되찾으려면 조정 수준을 넘어서 확고한 가치관을 토대로 기술과 맺는 관계를 처음부터 다시 구축해야 한다.
- 사람들은 디지털 라이프에서 특정한 도구나 행동을 고려할 때 그것이 생산하는 가치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소로의 신경제학은 이런 이득을 ‘삶’으로 측정되는 비용과 견주라고 요구한다. 트위터에서 상당한 존재감을 구축한 덕분에 가끔 새로운 인연과 아이디어를 얻는 작은 이익을 취하려고 얼마나 많은 시간과 주의를 희생해야 하는가?
- 페이스북의 사명선언을 보면 그 목표가 ‘사람들에게 공동체를 구축하고 세상을 더욱 가깝게 아우르는 능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는 흔히 볼 수 있는 긍정적인 내용이다. 그러나 페이스북을 쓰는 일이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들의 생태계에 들어와서 나누고 어울리면 좋은 일이 일어나기 마련이라고 암시할 뿐이다.
- 편의성이 안기는 만족감은 일시적이며, 그 혜택을 놓치는 데 따른 아쉬움은 금세 사라진다. 반면 시간과 주의를 기울일 대상을 스스로 정하는 데서 얻는 의미 있는 기쁨은 아주 오래간다.
- 디지털 정돈의 목표는 단지 시간과 주의를 빼앗는 기술에서 벗어나 느긋하게 지내는 것이 아니다. 정돈 기간에 부차적 기술을 피하는 데서 생긴 여가 시간에 실행할 양질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즉, 부지런히 활동하고 실험해야 한다. 정돈 기간이 끝날 때 진정한 만족감을 안겨서 더 나은 삶을 자신 있게 살아가도록 해줄 활동을 재발견해야 한다. 이 활동에서 기술은 의미 있는 목표를 뒷받침하는 역할만 수행해야 한다.
- 디지털 미니멀리스트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에 보탬이 되는 기술만 활용하며, 다른 모든 기술을 기꺼이 포기한다. (...) 우리는 자신이 중시하는 대상과 간접적인 연관성이 있다는 이유로 시간과 주의를 빼앗는 많은 기술을 정당화한다. (...) 해당 기술을 생활 속으로 받아들이기 전에 자신에게 던져야 하는 질문이 있다. 바로 ‘어떻게 해야 가치를 극대화하고 해악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이 기술을 활용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다.
- 시인이자 수필가인 메이 사튼은 1972년 일기에서 고독과 유대의 특이한 관계를 이렇게 썼다. "나는 몇 주 만에 처음으로 혼자가 되어 마침내 다시 ‘진정한’ 삶을 누리고 있다. 이상한 점은 그것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거나 이미 일어난 일을 혼자서 탐구하고 발견할 시간이 없으면 친구나 연인과 함께 있어도 진정한 삶이 아니라는 것 말이다. 애정과 분노를 주는 다른 사람들의 간섭이 없으면 삶이 삭막할 것이다. 그래도 나는 혼자 있을 때 비로소 삶을 온전히 누린다."
- 고독을 회피하면 고독이 안겨주는 긍정적인 혜택을 놓치게 된다. 복잡한 문제를 명확하게 파악한다거나, 감정을 다스린다거나, 도덕적 용기를 얻는다거나, 관계를 다지는 등의 혜택 말이다. 그래서 고질적인 고독 결핍에 시달리면 삶의 질이 나빠진다.
- 소셜 미디어를 많이 쓸수록 오프라인 교류에 할애하는 시간이 줄어들며, 그만큼 많은 가치를 잃게 된다. 그 결과 소셜 미디어를 과다하게 쓰는 사람들은 외로움과 불행에 시달릴 확률이 높다. 친구의 페이스북 담벼락에 포스트를 올리거나 인스타그램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는 데서 얻는 작은 행복으로는 현실 세계에서 친구와 시간을 보내지 않는 데서 생기는 커다란 손실을 전혀 메울 수 없다.
- 대화 중심 소통 철학을 받아들이면 활발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의 수가 거의 확실하게 줄어들 것이다. 진정한 대화에는 시간이 걸린다. 당신이 진정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소셜 미디어에서 팔로우 내지 리트윗을 하고, ‘좋아요’를 눌러주고, 가끔 댓글을 남겨주는 사람 또는 때로 문자메시지를 나누는 사람보다 훨씬 적을 수밖에 없다.
- 대학 기숙사에서 또는 실리콘 밸리 창업센터의 탁구대에서 고안된 앱이 우리가 오랜 기간 힘들게 적응한 풍부한 교류를 잘 대체할 거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사회성은 소셜 네트워크로 외주하거나 인스턴트 메시지와 이모지로 환원하기에는 너무 복잡하다.
- ‘좋아요’를 누르지 마라. 절대로. 또한 소셜 미디어 포스트에 댓글을 남기지 마라. ‘귀여워!’, ‘멋있어!’라고 하지 말고 침묵을 지켜라. 언뜻 무해하게 보이는 기능에 이토록 강경한 자세를 취하라고 말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바로 연락이 대화의 타당한 대안인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에 따르면 깊은 생각으로 가득한 삶은 행복하다. 그 이유는 숙고가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 그 행위 말고는 숙고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단호한 주장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후 수천 년 동안 지속되었고 지금도 인간 본성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공명하는 생각을 사상 최초로 제시했다. 그 생각은 좋은 삶을 살려면 활동 자체가 주는 만족 외에 어떤 목적에도 기여하지 않는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 매사추세츠공과대학 철학교수 키어런 세티야는 ‘해결해야 할 문제, 난관, 필요의 존재에 그 가치가 좌우되는’ 활동으로만 삶이 구성되면 존재론적 절망에 취약해진다고 했다. 이 절망은 ‘인생이 이게 다야?’라는 불가피한 질문에서 생겨난다. 세티야가 제시하는 한 가지 해결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조언대로 ‘내면의 기쁨을 안기는 원천’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기쁨을 안기는 일을 하는 것을 양질의 여가 활동이라고 하겠다.
- 경험에 따르면 성공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삶의 질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지금까지 제시한 실천 지침을 시도하다보면 디지털 미니멀리즘이 그저 일련의 규칙이 아니라 매혹적인 기기가 넘치는 시대에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철학임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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