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걱정했던 사람
핏기 없던 얼굴에 황달이 찾아왔다. 그의 눈동자가 노랗게 변해갔다. 독한 몰핀주사로 점점 간이 망가져 가는 증상이라고 했다. 그리고 며칠 뒤 커튼 뒤에 엄마가 왔다며 왜 숨어 있냐며 나오라고 했다. 처음에는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고 남편을 나무랐다. 의료진은 이 모든 것이 간이 망가져서 생기는 증상이라고 했다. 말로만 듣던 섬망 증상이 남편한테도 나타난 것이다.
췌장암 수술 후 남편에게 장폐색이 생겼다. 3주에 한 번, 우리는 응급실에 갔다. 늘 오랜 기다림 끝에야 남편은 응급실 침대에 누울 수 있었다. 남편의 통증이 안정되면 나는 보호자 의자에 앉아 잠을 청했다. 꿀맛 같은 잠에 빠져드는 찰나, 시끄러운 소리가 나를 깨웠다. 남편의 상태를 확인하러 온 간호사에게 낯선 소리의 행방을 물으니 섬망 증상이라고 했다. 그날, 나는 뜬눈으로 남편 곁을 지켰다. 옆 환자는 날이 샐 때까지 소리 지르고 보호자에게 욕을 했다. 이런 섬망 증상을 간접적으로 경험한 나였기에 나는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내가 잘 대처할 수 있을까?’ 그 순간, 남편이 나를 불러 세웠다.
“엄마, 커튼 뒤에 있어? 빨리 들어오라고 해. 나 보러 왔잖아, 엄마 불러줘, 어서”
“여보, 커튼 뒤엔 아무도 없어. 어머님은 부안에 계셔. 엄마 오라고 전화할까?”
계속해서 엄마 빨리 나오라고, 왜 병원에 와서 아들 보러 안 들어오냐며 소리를 질렀다. 벌써 두 시간째, 애타게 엄마를 찾는 남편 때문에 옆 환자와 보호자에게 너무 죄송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이런 일이 다반사라며 너그러이 이해해 주셨다.
며칠 뒤 의료진은 우리에게 임종 면회를 허락했다. 코로나로 딱 두 팀만 가능하다고 했다. 우리에게 허락된 사람은 어머님과 아이들이었다. 면회는 다른 입원 환자들의 감염 위험 때문에 딱 두 팀만 30분씩 가능하다고 했다. 아들이 그렇게 애타게 찾던 어머님은 부안에서 한달음에 아들을 만나러 오셨다. 아들이 엄마를 찾는다는 소리에 기쁜 마음, 슬픈 마음 모두 안고 올라오셨다. 남편은 그렇게 애타게 찾던 어머님을 만났다.
“아들, 엄마 왔어.”
“엄마, 지연이 돈 줘?”
“어쩌지, 엄마, 돈 없는데, 집에서 안 가지고 왔어.”
“엄마, 지연이 돈 줘. 지연이 돈 줘.”
오랜만에 만난 아들은 어머님의 예상과 다르게 돈 이야기만 했다. 누구보다도 엄마를 찾는다는 말에 한걸음에 오셨는데 어머님은 내심 서운해했다.
생각지도 못한 남편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당신의 촛불이 꺼져 가면서도 내 걱정뿐이던 사람, 내 사람, ‘이 사람, 내가 밟혀 어찌 갈까?’ 남편의 마음을 알아차린 나는 병실 밖에 주저앉아 울었다.
‘나는 그대에게 어떤 사람이었나요?’
2편에 계속됩니다.
이지연 - 아들 쌍둥이를 씩씩하게 홀로 키우고 있는 엄마이다. 초. 중등 아이들에게 영어와 미디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수원 공동체 라디오 Sone FM에서 "그녀들의 세상 사는 이야기" DJ를 하고 있다. 브런치 작가로 글을 쓰고 있으며, 그림 감상과 글쓰기를 통해 삶을 통찰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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