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
출산을 앞두고 임신 중독증으로 발이 코끼리 발이 되었다. 그 발로 아이를 낳고 나는 친정으로 몸조리를 가게 되었다. 남편의 슬리퍼를 신고 친정에 갔는데 발은 이미 퉁퉁 부어 남편의 슬리퍼가 더 이상 맞지 않게 되었다. 퉁퉁 부은 발을 심장보다 더 높이 올려두면 발의 부기가 좀 풀린다고 했으나 15분 간격으로 우는 쌍둥이들 덕분에 나는 다리를 베개에 올리고 잘 호사도 누리지 못했다. 부은 발로 아이들에게 우유 먹이고, 젖병을 닦고 소독하고, 목욕을 시키는 일은 정말 힘들었다. 아이를 보러 온 작은 엄마는 퉁퉁 부은 내 발을 보고 족욕을 권했다. 따뜻한 물에 생강 2~3쪽을 넣어 발을 담가 보라고 했다. 발의 부기가 족욕으로 가라앉을까? 하는 의심이 들긴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 뿐이었다. 믿거나 말거나 나는 생강을 넣은 물에 내 코끼리 발을 넣었다. 발끝으로 물의 온도를 체크하고 물속에 내 발을 쓱~밀어 넣었다. 용암 속에 발을 집어넣는 느낌이 났다. 다시 내 예쁜 발로 돌아오기를 바라며 나의 소원도 함께 밀어 넣었다. 물론 한 번의 족욕으로 발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았지만, 점차 발의 부기가 빠지는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EP 2
산후조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는 혼자 아이를 목욕시킬 수가 없었다. 조그만 아이들을 혼자 씻기고 옷을 입히기엔 내가 너무 초보였다. 그리고 아이들이 너무 작았다. 만지면 부서질 것 같았다. 그러한 이유로 목욕은 남편의 담당이 되었다. 10시에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 남편은 아이들을 씻겼다. 오랜 시간 동안 서서 수업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그는 힘든 기색 없이 능숙하게 아이들을 씻겼다.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모습에 나는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깨끗하게 씻기고 아이들에게 우유를 주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을까, 돌아보면 몸은 힘들었지만, 부모로서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어서 참 행복했다. 그렇게 아이들은 아빠의 사랑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EP 3
마약성 통증 약은 남편의 발을 퉁퉁 부어오르게 했다. 약의 부작용일까, 혈액 순환의 문제였을까. 남편의 발이 코끼리 발처럼 부었다. 바닥에 누워서 편히 잘 수 없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남편은 의자에 앉아 쪽잠을 잤다. 바닥에 누워 다리를 심장보다 높이 올리면 발의 부기가 내려간다는 수많은 포털사이트의 정보대로 해야 하지만 현실은 불가능했다. 남편은 뼈 전이가 심한 상태여서 누울 수가 없었다. 나는 화장실로 가 따뜻한 물을 족욕 대야에 담았다. 녹즙을 위해 사둔 생강 몇 알을 깨끗하게 씻어 넣었다. 예전의 나처럼 남편의 부은 발이 원래대로 돌아오기를 바라며 물의 온도를 확인했다. 남편은 발끝으로 온도를 확인하고 물속에 발을 밀어 넣었다. 따뜻한 물이 그의 발, 그의 종아리로 점점 스며들었다. 따뜻한 물을 그의 종아리에 끼얹어 주면서 나는 물장난 하던 우리의 신혼 시절을 떠올렸다. 남편도 내심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다. 내친김에 겨우내 남편의 발을 거칠게 만든 각질도 닦아줬다. 남편은 괜찮다며 한사코 거부했다. 그의 발을 살살 만져가며 딱딱한 각질을 녹여갔다. 아이의 목욕을 시키듯 정성스레 꼼꼼히 각질을 닦아냈다. 가장으로서 그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의 발을 만지며 힘들었을 그가 느껴졌다. ‘고단한 그대 이제 좀 쉬어요.’ 남편의 발을 매만지며 내가 마음속으로 읊조렸던 말이다.
아이들이 쪼르륵 안방 화장실로 모였다. 엄마가 뭐 하는지 궁금했나 보다. 아빠의 발을 만져주고 있다고 했더니 아이들도 하고 싶다고 했다. 아빠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진다. 큰 아이는 왼쪽, 작은 아이는 오른쪽. 각자 맡은 다리를 사랑스럽게 쓰다듬어 준다. “빨리 낳으세요, 아빠 힘내시라는 말은 보너스!” 아빠는 그들의 말에 힘을 얻고 다시 일어섰다. ‘그래 나는 아직 살아갈 이유가 있구나.’ 아빠는 젖 먹던 힘을 내어 견디고 견뎠다.
아빠가 그들 곁에 없다.
아빠는 우리를 두고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놔두고 혼자 떠나야 할 그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남겨진 우리도 아프다.
그의 빈자리가 느껴져 아프다.
하지만 그가 더 이상 아프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그 슬픔을 견뎌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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