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전하는 메시지 2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두 번째로 남편과 만난 사람은 아이들이었다.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아이들, 남편의 존재 이유였던 아이들. 아빠는 그런 아이들이 항상 눈에 밟혀 울었다. 아빠 없이 살아가게 될 아이들을 걱정하며 얼마나 눈물을 삼켰는지 모른다. 그들과 친구가 되고 싶었던 아빠는 마음과는 다르게 늘 바빴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아빠는 열심히 돈을 벌었다.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함이었다. 당신처럼 아빠 없는 아이들을 만들지 않겠다며 그 힘든 항암도 견뎌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인사라니,
아빠가 아이들을 알아보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나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병실로 올라갔다. 불 꺼진 병실들, 각자의 일로 분주한 간호사들, 알코올 냄새 가득한 병원 복도를 가로질러 아이들은 임종실로 향했다. 침대와 커튼을 사이에 두고 아이들은 아빠 만나기를 좀 꺼리는 듯했다. 내가 조심스레 커튼을 젖히자, 아빠는 애인을 만난 듯 화색이 돌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한 웃음이었다. 얼마나 보고 싶었던 아이들인가. 얼마나 기다리던 아이들인가. 남편은 어머니 면회 때 와는 다르게 아이들을 한눈에 알아봤다. 한 명씩 천천히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힘을 내어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아빠가 나지막이 불러주던 이름을 듣고 나서야 아이들은 침대 근처에 가 아빠의 손을 잡아 주었다. “아빠. 괜찮아요?” 아빠는 있는 힘껏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다고 말했다. “아빠가 너희와 함께 있어 주지 못해서 미안해”를 시작으로 아빠는 아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었던 말들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일러주었다. 아이들은 아빠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이 될 아빠와의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나는 맘이 아팠다.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그림이었다. 남편이 우리 곁을 떠난다니, 믿기지도, 있어서도 안 될 일이었다. 왜 이런 일이 우리에게 생겨난 것일까?
그들은 11살. 따뜻한 봄이 되면 이제 4학년이 된다. 어리다면 어린 나이다. 내 생각과 다르게 아이들은 참 단단했다. 아빠의 낯선 모습이 겁도 났겠지만, 그들은 울지 않았다. 아빠의 곁에서 아빠의 마지막 말을 잘 들어줬다. 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오롯이 다 쏟아낼 수 있도록 기다려줬다. 그 모습을 보며 어쩌면 나보다도 어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늘 우느라 남편의 말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다. 내 말만 하느라 맘이 급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토해낼 시간을 주었다. 오롯이. 그에게 집중해줬다. 그리고 그것이 내심 고마웠다.
시간이 흘러 "아빠가 너희에게 한 약속이 기억나? " 하고 물으면 아이들은 조용히 하던 일을 멈추고 나를 지긋이 쳐다본다. 그리고 눈빛으로 나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걱정 말아요, 엄마, 우리는 잊지 않고 있어요.”
글쓴이-이지연
아들 쌍둥이를 씩씩하게 홀로 키우고 있는 엄마이다. 초. 중등 아이들에게 영어와 미디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수원 공동체 라디오 Sone FM에서 "그녀들의 세상 사는 이야기" DJ를 하고 있다. 브런치 작가로 글을 쓰고 있으며, 그림 감상과 글쓰기를 통해 삶을 통찰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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