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미입니다! 이번 한달은 구독자님에게 어떤 시간들이었나요? 저는 어느 날은 추웠다가 어느 날은 또 더운 탓에 ‘이 도깨비 같은 날씨!’ 하고 화를 내며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감기에 걸리시지는 않았는지 안부를 물어봅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청어람의 기획위원이시기도 한 차정아님을 만나보았어요. 정아님은 굉장히 성실한 독서가이시기도 합니다. 제가 정아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19년의 여름, 어느 책모임에서였는데요. 여성주의 신학의 고전을 함께 읽으며 나누었던 이야기는 흐릿해졌지만, 모임에 열중하시던 정아님 모습은 아직도 인상적으로 남아있습니다. 책모임 이후로 이런 저런 자리에서 정아님을 뵈었어요. 여전히 꾸준히 읽고, 무언가를 배우는 사람으로 그를 만나게 되어서, 도대체 그에게 책이란 무엇인지를 묻고 싶었습니다. 정아님의 답을 한번 들어볼까요?
유미(유):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정아(정): 안녕하세요? 매일 읽는 사람, 차정아입니다. 책을 읽다보니 제가 살고 있는 세상이 전에 알고 있던 만큼 좋은 세상은 아니란 걸 알게 되었어요. 깨달음은 매일 일어나야 하는 것이더라고요. 책을 읽고 반복적으로 깨달음을 얻어야, 깨달은 대로 사유를 지속할 수 있고, 익숙했던 과거의 나 자신에게서 약간의 변화라도 가능하겠다 싶었어요. 어제 깨달았던 것을 오늘 다른 문장으로 깨닫기 위해 매일 읽게 되었고, 언제부턴가 이렇게 자기소개를 합니다. “폭력적인 구조 안에서 덜 폭력적으로 살기 위해 매일 책을 읽는 사람입니다.”
유: 어제 깨달았던 것을 다른 문장으로 깨닫기 위해 매일 읽는 사람이 되었다니, 확실히 정아님은 성실한 독서가이시죠. 이전에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올해 초에 한 해동안 읽으신 책 목록을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정말 매일 매일 읽으시는구나!’ 하고 감탄했습니다. 다양하고 많은 책들을 읽으셨더라고요. 어린 시절부터 책읽기를 좋아하셨나요?
정: 일단은 아니지만, 어쩌면 맞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늦둥이로 태어나 방목(?)되었던 저의 성장배경은 책과 가깝지 않았어요. 그런데 또 생각해보니, 초등학교 몇 학년인가 여름방학 때 하도 심심해서 (집집마다 책장 자리만 차지하고 아무도 읽지 않는) 세계문학전집을 읽었던 기억이 있네요. 읽은 내용은 기억에 없으니 눈높이에 맞지 않아 전혀 이해하지 못했겠죠. 고등학교 때는 수업시간에 몰래 소설책을 읽기도 했고요. 성인이 되어서는 보통 말하는 평균보다는 책을 좀 더 읽었던 것 같은데, 지금처럼 읽게 된 것은 몇 년 되지 않았습니다.
유: 정아님에게 ‘지금처럼 읽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세상이 전에 알고 있던 만큼 좋은 세상이 아니라는 걸 알아 차리게 된 순간이 따로 있으신지 궁금해요. 그런 깨달음은 단번에 온 것인가요?
정: 열심히 잘 살고 있다고 나름 자부하며 살았어요. 특히 신앙에 있어서 제 믿음은 “반석 위에 지은 집”이라고 생각했지요. 근데 무너지더라고요. 반석인줄 알았는데,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였습니다. 내가 알고 있던 신, 내가 알고 있던 세상, 내가 알고 있던 다른 존재들, 내가 알고 있던 나 자신까지 잘못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사유의 영점’에서 다시 인식해야했습니다. 무너진 사유를 다시 쌓기 위해 책을 읽었습니다. 전과는 다른 방법으로요. 기존 생각을 다지고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무너뜨리기 위해서 읽었습니다. 완전히 무너뜨려야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 무너뜨리고 휘청거릴 때 깨달음이 희미하게 찾아왔어요. 지금도 희미한 깨달음들이 무수히 교차하고 있는 중이지요.
유: 정아님의 책을 고르는 기준이 궁금해요. 보통 어떤 생각의 흐름으로 책을 고르시나요?
정: 먼저 ‘책이 책을 낳는다’라고 저 혼자 말하곤 하는데요. 읽은 책에서 저자가 여러 번 언급했거나, 언급한 내용이 저의 관심을 끄는 책을 찾아서 읽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읽어야하는 책이 점점 많아집니다.) 다음은 SNS에서 연결된 친구분들이 좋은 책을 많이 소개해주시거든요. 특히 새로 나온 책 위주로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요. 한 가지 더 덧붙인다면 저의 주된 관심사는 ‘소수자’입니다. 페미니즘에서 시작되어 사회 주변부와 비인간동물로 확장되고 있어요. 관심사에 따라 책을 고르기도 하지요.
유: 어떤 책이 좋은 책일까요? 책장을 열 때 어떤 기대를 품으시는지, 책장을 덮고 ‘참 좋다!’라고 외치는 순간이 있다면, 그 순간은 어쩔 때 찾아오는지가 궁금해요.
정: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해요. 언제부턴가 확실한 것에 대한 불신이 생겼어요. 그리스도조차 마지막 순간에는 확신하지 못하셨다고 요즘 핫한 영화(콘클라베)에서 재인식시켜주어 좋았어요. 저의 사유를 흔들리게 하는 책이 좋아요. <휘말린 날들>이란 책에서 감염을 ‘타자로부터 당하는 것, 타자에게 강제로 시키는 것이 아닌 서로 다른 생명 형식이 영향력을 주고받으며 변형하는 과정’이라는 내용을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비인간동물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게까지 열린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생각이 가닿았거든요.
유: 책읽기만큼이나 책모임을 좋아하고, 또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혼자 읽는 것과 여럿이 함께 읽는 것 사이에는 어떤 다른 즐거움이 있을까요?
정: 책모임은 제가 혼자 읽는다면 거의 읽을 가능성이 없는 책을 읽게 해줘요. 그런 책에서 기대하지 못했던 새로운 깨달음으로 인해 읽는 즐거움이 새록새록 생깁니다. 그리고 익숙한 책도 같이 읽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간과했던 부분이나 전혀 고려하지 못했던 부분을 새롭게 읽을 수 있게 됩니다. 혼자서 다량의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여럿이 한권을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것이 더 기쁜 것 같아요. ‘한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사람의 한걸음’처럼 서로 공명하는 무언가가 있는 거죠. 또 밑줄 그은 문장이 같을 때랑 그 이유까지 같을 때는 공감의 짜릿함을 맛볼 수 있고, 밑줄 그은 문장이나 같은 문장이라도 이유가 다를 때는 새로운 자극이 되어 좋습니다. 그리고 또 서로 의견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 책이 매개가 되면 살짝 신중해져서 좀 더 유연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는 거 같아요. 한계는 있겠지만 한계를 한계 짓지 않기 위해 책을 통한 대화의 시도는 계속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자주 말합니다. “책모임은 많을수록 좋다!”
유: 청어람에서도 정아님이 진행하시는 책모임이 있을 예정이잖아요. 짧게 홍보 한마디 해주실 수 있나요? 어떤 마음으로 모임을 준비하고 계신지 살짝 알려주세요.
정: 청어람에서 책모임을 진행하게 되어 설레었어요. 기쁨도 잠시, 간사님과 기획서를 주고받으면서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더라고요. 저는 책모임에서 ‘책의 힘’과 ‘참여자 사이의 역동’을 믿거든요. 책이 좋으면 책모임은 알아서 잘 흘러갑니다. 혹여 책이 좋지 않더라도 참여자분들 사이에 흐르는 역동이 책모임을 보장할 때가 많아요. <돌봄이 돌보는 세계>와 <지켜야 할 세계>는 읽어보시면, 정말 좋은 책이이예요. 좋은 책이라고 굳이 말할 이유가 없을 정도입니다. 보시면 이게 무슨 말인지 아실 거예요. 청어람에서 참여하시는 한 분 한 분이 좋으시고, 그 사이 사이 역동은 더욱 좋겠지요! 그래서 염려를 내려놓고 책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유: 책 읽기 말고 즐거워하시는 다른 일이 있으신지 궁금해요.
정: 영화 보는 거 좋아합니다. 요즘에는 영화보다 책과 더 가깝지만, 10년 전쯤에는 반대였어요. 영화를 많이 봐서 영화관 SVIP등급일 때도 있었는데요, 지금은 독립예술영화만 보는 편입니다. 무념무상 걷는 것 좋아합니다. 운동은 숨쉬기와 걷기, 딱 두 개만 했다가 집 가까운 산에 조성된 둘레길 걸으면서 산행도 한다고 말합니다. 딱 한번 친구 따라 자전거 라이딩 갔는데 좋았어요. 걷기, 산행, 라이딩이 좋은 이유는 멍 때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 생각 없는 시간이 꼭 필요한 거 같아요.
유: 정아님에게 교회는 어떤 공간인가요? 청어람의 세속성자 예배모임에 꾸준히 참석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아님에게 세속성자 예배모임은 교회인가요? 덧붙여 정아님이 생각하는 세속성자 예배모임의 매력은 무엇인지도 궁금하네요. 어떤 매력이 정아님을 움직이게 예배모임에 나오게 했는지 궁금해요.
정: 청어람 세속성자 예배모임은 교회입니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모임’,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교회’라고 생각해요. 저는 둘째, 넷째 주일 오후 2시에 (청어람)교회에 가서 예배드립니다. 청어람 세속성자 예배모임은 교회가 아닙니다. (박현철)목사님은 있지만, 세속성자 예배모임에서 목사로서의 역할은 없어요. 저도 예배 참여자일 뿐, ‘목회자와 성도’라고 말할 때의 ‘성도 정체성’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관리당하지 않고, 간사님들도 관리하지 않으시죠. (딱 한번 예배 참석하는지 묻는 연락을 받긴 했어요. 무척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이 바로 세속성자 예배모임의 매력과 연결될 것 같아요. 처음 참석하고 나서 계속 저를 세속성자 예배모임에 참석하게 해준 것은 두 가지였어요. 먼저 설교가 없다는 것. 성서 말씀을 돌아가면서 함께 읽고, 각자 묵상을 한 후에 묵상한 것을 이야기 나눕니다. 다양한 해석은 물론이고, 창의적인 질문들이 서로의 사유를 자극합니다. 설교자 한 사람만의 해석이 아닌 참석자수 만큼 때로는 그 이상으로 풍부해지는 시간이죠. 마치 책모임과 같은 설교 없는 말씀 묵상 나눔이 최곱니다. 다음은 성찬입니다. 집례자 없이 빵과 포도주를 옆사람에게 전달하는 방식이 저는 너무 좋습니다. 흰 가운을 입은, 따로 분리된 듯 보이는 누군가가 없어요. 이 두 가지의 공통점은 앞에서 말한 ‘목회자와 성도’라고 부르는 (위계로 미끄러지기 쉬운) 구분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 말고도 세속성자 예배모임의 매력은 더 많이 있습니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으니 둘째, 넷째 주일 오후 2시에 상수역 2번 출구 청어람(교회)으로 오세요!
유: 세속성자 예배모임의 새가족반 홍보 멘트 같았어요(웃음) 지금 정아님이 중요하게 여기는 신앙적 가치들은 어떤 것인가요?
정: 친밀함과 낯섦이요. 과거에 신이 나를 버렸구나, 신을 엄청 원망했던 적이 있어요. 신이 멀게만 느껴지고 한참동안 힘들었어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차차 알게 된 것은 나는 멀게 느꼈을지 몰라도 신을 원망한다는 것은 신을 떠나지 못하는 것이고, 떠나지 못할 정도로 신과 가깝다는 것입니다. 신을 부인하고 미련 없이 떠나면 되는데, 저는 원망하고 매달리고를 반복하고 있더라고요. 그렇게 ‘역설적인 친밀함’이 저를 기독교 언저리에 남게 해주었습니다. 교회를 떠나 기독교의 언저리에서 세상을 공부했어요. 세상을 공부하면서 교회 안에서는 알지 못했던 전혀 다른 모습의 낯선 신을 만났습니다. 예기치 못한 낯선 신이 저를 기억해주는 듯 느껴져 계속 기독교의 언저리에 머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중간 중간 신학책을 읽긴 했어도 5년 정도 떨어져 있다 보니, 성서와 찬양이 낯설어졌어요. 낯설어지니까 소중해지고, 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찬양과 말씀이 다가오더라고요.
유: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정아님이 실천하고 있는 게 있으신가요?
정: 예기치 못한 낯선 신을 만나기 위해 계속 기독교의 언저리에 머물며 책읽기로 세상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낯섦의 소중함’을 지속적으로 간직하기 위해 중심부와 떨어져 주변부에서 방황하고 있고요. 한참을 방황하고 나서 나중에 ‘역설적인 친밀함’ 가운데 신과 동행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될 것 같습니다.
유: 역시 책이군요! 벌써 마지막 질문이에요. 최근 읽은 책 중 특별히 추천하고 싶은 책 세 권만 꼽아주세요(이유도 함께요).
정: 올해 읽은 책 기준으로 각 달에 한권씩 4권을 추천드릴게요.
1월 급진적 자유주의자들 / 김진호 / 동연
‘싸륵스’ 개념에서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성육신과 부활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월 작은 것들의 신 / 아룬다티 로이 / 문학동네
전지전능한 신이 아닌 한 번에 한 가지만 할 수 있는 상실의 신, 묵상이 절로 됩니다.
3월 내전, 대중 혐오, 법치 / 피에르 다르도, 크리스티앙 라발, 피에르 소베트르, 오 게강 / 원더박스
우리 사회의 어제와 오늘을 치밀하고 적확하게 조명해 볼 수 있는 책입니다.
4월 짐을 끄는 짐승들 / 수나우라 테일러 / 오월의 봄
모든 납작한 이해에 저항하고 싶다면, 이 책처럼!
지난 호에서는 박현철 요원이 '이 책 한번 잡솨봐 - 기독교 역사: 걸음들'로 교회사 책들을 소개해 드렸었는데요.
- 아무말 던집니다. 신자유주의, 사회적파시즘에 관한 책 소개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아무말을 일단 받고 답변을 드리자면, 저희는 종교/역학 책을 주로 다룬다는 점을 말씀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전해드리며, 다음 호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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