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20호: 오랜만에 한국에 온 맥설의 시조 😛

가부장 전통을 떠나 맥설 가족을 만든 윤정 님을 만났어요! 🎶

2025.04.01 | 조회 7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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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어람AR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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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사회 사이 -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간

김유미입니다! 3월 한 달 동안 다들 잘 보내셨나요? 봄의 정취를 느끼기에는 우리 사회가 이모저모로 뒤숭숭했지요. 어느 소설가의 말처럼 이 세계가 어떻게 이렇게 폭력적일 수 있는지, 또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생각했던 한 달이었습니다. 저의 이번 달 목표는 폭력적인 장면에 분노하되, 그 자리에 너무 오래 머물지 않는 것이었어요. 우리가 만들 수 있는, 만들어야하는 아름다움에 더 오래 마음을 두고 몸을 움직이자 다짐하며 보냈습니다.

그 다짐이 가능했던 것은 청어람에 찾아온 윤정 님과 엘리 님 덕분이기도 했어요. 엘리 님을 만나니 엘리 님이 사는 세상이 조금 더 다정하고 아름답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다랗게 생기더라고요. 윤정 님이 전해주신 삶의 에너지도 그 마음을 더 해줬고요. 여러분들에게도 그 기운이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맥설윤정 님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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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유):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먼저 자기 소개를 부탁드려요.

윤정(윤): 미국 뉴욕에서 삶을 꾸리며 지금은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서 잠시 육아휴직으로 살고 있는 맥설 윤정입니다. ‘맥설’이 결혼하고 짝꿍과 새로 만든 성이에요. ‘윤정’이 이름이고요. 가족이 하나의 성을 쓰고 싶었기에 여자가 남자 성을 따르는 가부장 전통을 따르지 않기로 서로 협의해서 부부 둘 다 성을 맥설로 바꿨습니다. 폴의 아일랜드 맥알리스터McAllister 가문과 윤정의 한국 설Seol 씨 가문이 합체하여 성 앞글자만 따서 ‘맥설McSeol’이 되었어요. 두 살 맥설이안현, 두 달배기 맥설엘리까지 해서 우리 네 가족이 지구에 유일한 맥설입니다. 

유: ‘맥설’의 시조시군요! 시조님(?)을 만나뵙는 건 처음인 것 같아요. 미국에서는 이런 시도가 흔한 편인가요?

윤: 결혼하면서 부부 둘 다 새로운 성을 가지는 일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추세인 듯 해요. 여자가 결혼하며 남편 성을 따르는, 신학자 현경 선생님의 언어를 빌리자면 ‘고추제국주의’ 적인 일이 아직도 흔하지만 미국에서 동성결혼합법화 이후로 더욱 새로운 성을 만들어 가족을 이루는 일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둘이 결혼을 하기로 하고 어떻게 새로운 가족의 처음이 될까 고민을 할 때 참 재밌었어요. 둘 다 신학 전공을 했어서 이름과 성을 이야기 한다는 것이 우리 뿌리를 몸으로 기억하는 신학과 신앙에 대한 것이기도 했고요. 맥이란 뜻이 자손이라는 뜻이라서 맥을 따오긴 했지만 이왕에 섞는 것, 서울스터- Seoulster 같은 내가 서울의 대표다(!) 하는 힙한(!) 성도 생각해보기도 했었죠. 정하고 나니 맥설이란 성을 설명하면서 한국인의 뿌리를 이야기 할 수 있어 좋더라고요. 

사랑스러운 맥설 가족
사랑스러운 맥설 가족

유: 오랜만에 한국에 오시니 어떠세요. 뉴욕에 계실 때의 하루와 한국에 계실 때의 하루가 많이 다른가요? 

윤: 많이 달라요. 뉴욕에서 저는 풀타임으로 일했고, 짝꿍인 폴이 이안이를 전담해서 육아를 했었거든요. 저는 주중에는 학교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교회에서 일했고요. 가장 큰 하루의 변화라면 역시 육아휴직과 엄마와 함께 육아할 수 있는 데서 옵니다. 첫째 이안이가 어린이집에 가서 9시부터 4시까지 여유가 생겼어요. 한국 어린이집 만세. (어린이집 선생님들과 복지센터 담당자님들 복받으세요.) 엘리의 육아를 함께 해주시는 엄마 덕분에 숨통도 틔였고요. (엄마 미안하고 고마워요.)

아침 7시에 일어나는 이안이와 함께 일어납니다. 그 다음엔 야쿠르트 아주머니와 쿠팡이 배달해 주고 엄마가 만들어주신 아침을 먹어요. (새벽 배달 노동자님 감사합니다.) 뉴욕에 있을 때는 아침을 먹고 바로 출근해야 했지만 지금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어린이집에 보내죠. ‘일방통행’, ‘어린이 보호 구역’ 바닥에 적혀있는 길 안내 한글자 한글자를 발로 밟아 한글을 배우며 어린이집에 갈 수 있어서 뿌듯하고요. 까치에게 ‘안녕’ 손짓하며 이안이와 등원길에 오를 때, ‘안녕’ 답 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참 좋습니다.

저는 뉴욕에서처럼 출퇴근하며 지하철에서 오롯이 혼자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없어졌지만 엄마와 어린이집 찬스를 써서 성산동 주변의 카페에서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있기도 해요. 집 앞 버스 정류장의 엉뜨에 홀로 앉아 엉덩이를 지지면서 버스를 기다리면 엄마 집, 고향에 왔다는 따스한 아랫목의 느낌이 엉덩이를 타고 온몸으로 전해집니다.

등원 이후에 두 세 시간마다 수유하고 똥기저귀 갈고 이쁜 엘리 사진을 찍고 잠투정하는 엘리를 재우는 일은 뉴욕이나 서울이나 같지요. 그 사이사이 요새는 청어람 사순절 맞이 성서일과원정대 밴드에 매일묵상 말씀 글도 올리고,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도 보고 있고요. 4시에 이안이 하원을 하면 동네 놀이터에서 놀다가 동네 카페에서 에그타르트를 하나 사서 집에 오고요. 5시반에 모두 함께 저녁먹고, <한글용사 아이야> 한 에피소드 함께 보고, 비타민 먹고, 이 닦고 씻고 책 읽고 잘 준비하고 섬집아기 자장가 부르고 재우면 7시 입니다.

그 이후에는 얼마 안되는 아이 둘이 함께 자는 시간이라 이렇게 인터뷰 답변할 시간이 나지요. 저도 새나라의 어린이처럼 9시에 잠이 들어 새벽 수유를 준비합니다. 짝꿍 폴이 이제 한국에 다음 달에 오면 저 엄마의 자리를 대신해서 항상 그러하였듯 주 양육자의 위치로 복귀할 예정입니다. 어린이집 등하원도 폴이 하게 되겠죠? 

유: 길고 알찬 하루일과네요. 윤정 님의 하루에 동행을 한 기분이에요. 더욱 친해진 기분이랄까요? (웃음) 이어서 윤정 님의 신앙 여정도 궁금해지는데요, 윤정 님의 신앙에 영향을 준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윤: 제 신앙여정은… 어떻게 어디서부터 써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영향 중 하나는 청.어.람! 제가 나름 청어람의 처음인 20년 전부터 함께 한 찐 팬 이랍니다. 그 시간동안 크고 작은 강좌와 모임도 좋았지만 그렇게 만나게 된 귀한 사람들이 제 신앙의 여정의 동반자가 되어 있다는 게 제일 좋네요. 지금도 성경을 읽고 살아내게 하는 건 청어람인걸요? 청어람 아니면 어디서 매일 교회력에 맞는 성경을 <성서일과 원정대>란 이름으로 함께 읽어내는 챌린지를 하겠어요!

기독교 세계관, 기독교영화제라던가 하는 기독이 들어간 모든 것들에 느슨한듯 보이나 알고보면 또 치열하게 연결되어 있는 청어람이잖아요. 코로나 이후에 온라인으로 모임을 많이 열어주신 덕분에 미국에서도 꾸준히 함께 모여 공부하고 책읽고 예배에 대해 고민하고 발표하는 자리도 가졌습니다. 비거니즘, 페미니즘, 실천하는 신앙은 청어람이 아니였으면 제 삶에 이렇게 깊숙하게 들어오지 않았을거예요. 드라마 전문가인 전 오수경 대표님의 강의를 이안이 젖 먹이며 들었는데 지금은 둘째 엘리를 안아주시는 유미와 한나 이모와 함께 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청어람 앞으로도 함께 가요!

유: 이렇게 다정한 답을 해주시다니! 청어람의 홍보대사로 임명드려야 할 것 같아요. 엘리와 함께 청어람에 방문해주셨을 때, 제 품 안에 안긴 엘리가 너무 작고 또 너무 가벼워서 신기했어요. ‘우리 모두가 다 이렇게 작고 가벼웠다니’ 새삼 이상하더라고요. 그 순간에 윤정 님이 일전에 올려주셨던 SNS의 글이 떠올랐어요. 윤정 님이 품 안에서 엘리가 곤히 자고 있는 모습과 함께 레이첼 헬드 에반스의 글을 올려주셨었거든요.

 

성육신 이야기. 한 여인의 부드러운 자궁벽에 착상한 수정란 크기로 작아진 하나님, 손가락과 발가락이 자라는 하나님, 자궁 안에서 발길질을 하고 딸꾹질을 하는 하나님, 천천히 산도를 내려와 피범벅인 채로 세상에 나오고 그리하여 아마도 침착하게 기다리던 산파의 손에 안기는 하나님, 배고픔에 울어대는 하나님, 엄마의 젖을 찾는 하나님, 완전히 느긋하게 눈을 감고 통통한 작은 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전적인 신뢰의 자세를 취하는 하나님, 엄마의 무릎에서 휴식을 취하는 하나님이라니! 이것을 믿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안이와 엘리와 함께하는 삶이 윤정 님의 신앙에도 어떤 변화를 주었을까요? 

엘리와 이안이
엘리와 이안이

윤: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저도 궁금해서 제 페이스북을 다시 훑어 보았습니다. 확실히 엄마가 되기 전보다는 아주 조금 더 부지런하고 레벨업한 사람이 된 것 같기는 합니다.

제가 계속 반복해서 페이스북에 썼던 말이 있어요. 좋은 엄마가 되는 일이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는일 이라고요. 특별하지 않은 일상의 육아가 중요하듯이 일상의 신앙이 제일 중요하죠. 청어람 1월의 기도를 [삐뽀삐뽀 119 소아과] 의 하정훈 의사쌤과 함께 드렸던 기억이 나네요. 

 

새로울 것 없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 숨겨두신 의와 평강과 기쁨의 하나님 나라를 발견하고그 나라를 사는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청어람 2023년 1월의 기도

 

제 일상 속에서 계단과 화장실 레일의 중요성을 발견한 것도 임신의 경험으로부터 였어요. 누구나 편하게 걷고 싸고 씻는 세상을 온몸으로 바라게 되는 시기였달까요.

제가 무척이나 바라던 엄마 되기였어요. 이안이와 엘리 모두 여러 번의 유산과 긴 난임의 시기를 거쳐 시험관으로 임신출산이 진행되었거든요. 난임의 시기를 보내면서 성경의 난임 엄마들을 돌아보게 되었죠. 사라와 아브라함이 겪었던 난임과 임신과 육아의 어려움, 리브가가 쌍둥이를 품고 하느님께 힘들어 죽겠다며 기도로 짜증내는 장면이, 미친년처럼 펑펑 울며 아이를 달라는 기도를 했던 한나가, 임신한 청소년 미혼모 친척 마리아를 돌봐주었던 세례 요한의 엄마 엘리자베스(엘리사벳)가 저의 엄마 되기 여정에 함께 했습니다. 아기 예수님 엄마 마리아는 길위에서 임신도, 출산도, 육아도, 다 했더라고요. 

첫째 이안이의 이름은 아일랜드어로 세례 요한, 하느님의 은혜 라는 뜻이에요. 아기 예수와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대림절과 딱 맞는 이름이죠. 둘째 엘리의 이름은 엘리자베스 마리아 맥설이에요. 아이 둘 다 매우 대림절과 성탄절기의 메리메리 크리스마스 한 이름이죠? 저는 그래서 엄마가 되고 이 이콘을 더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마굿간에서 아빠 요셉이 속싸개로 꽁꽁싸맨 아기 예수를 돌보고 엄마 마리아는 성경을 읽는 15세기의 이콘이에요.

from the besançon book of hours. 15th century. 
from the besançon book of hours. 15th century. 

유: 확실히 청어람보다는 이안이와 엘리 님의 역할이 크군요! 안 물어봤으면 어쩔 뻔 했나요(웃음) 청어람이라는 대답에 만족하고 여쭤보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질문을 정한 저에게 아주 큰 칭찬을 합니다.

만삭이 되어서 화장실에 레일이 보였던 윤정 님의 경험처럼 아이와 함께 사는 삶을 보내면 이전과는 다른 세상이 보일 것 같아요. 윤정 님이 계신 뉴욕의 교회공동체에서 육아를 하는 양육자들을 위해 ‘데이트나잇’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회가 양육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자신에게, (양육자가 둘이라면) 두 사람이 서로에게, 충실해질 수 있는 시간’이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그 시간을 확보해주기 위해 애를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교회에 저같은 사람들만 있었더라면 나오기 힘들었던 기획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윤정 님은 어떻게 그 프로그램을 보셨나요, 참여하신 소감도 듣고 싶어요. 

윤: 맞아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해서 귀한, 시간을 선물해준 교회 프로그램이라 참 좋았지요. 진짜 모든 교회가 신속히 도입해야 할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합니다. 돈도 많이 안 들어요. 서울시가 시간제 돌봄서비스를 진짜 코딱지 만큼 확대 한다는데 교회에 유아인 교인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이런 교회돌봄 서비스야 말로 진짜배기 사역이 아닐까요? 알고보니 이 데이트나잇이 미국에서는 교회뿐 아니라 헬스클럽 등에서 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더라고요?

데이트나잇은 제가 있는 교회공동체에서 육아하는 양육자를 위해 기획한 이벤트예요. 저녁에 마음놓고 교회에 아이들을 한 3시간동안 맡기고 양육자들이 마음껏 데이트하라고 만들었대요. 아이들은 이 시간동안 돈 받는(이거 중요) 스텝들과 봉사자들과 함께 밥 먹고 놀며 활동했고요. 교회에서 돌봄서비스를 제공해주고 이안이 저녁도 먹여주신 덕분에 짝꿍과 둘이서 룰루랄라 손잡고 가볍고 감사한 마음으로 라멘집도 가고 아이스크림가게도 갔었어요. 이안이는 또래 2명 아이들과 선생님 두 분과 함께 재미나게 잘 지냈고요. 그 뒤로 이 프로그램은 인기 프로그램이 되어 정기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유: 교회가 교인 개별에 사정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그 고민 속에서 교회에 역할에 대해 질문할 때 좋은 프로그램이 나오는 것 같아요. 교회 안에 데이트나잇 같은 좋은 프로그램이 더 많이 만들어지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윤정 님은 무엇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윤: 청어람 모토가 한국 교회와 사회의 다음세대를 위한 인재 발전소-였죠? 저는 청어람 같은 공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지금 이글을 읽어 보시는분 들은 청어람을 위해 기도하고 후원하고 여기가 참 좋은 곳이다 하고 소문도 더 내고요. 

저는 신학을 학부와 대학원에서 전공했어요. 지금은 미국 성공회 교단 소속으로 뉴욕교구에서 성직청원과정에 있고요. 미국성공회 교단은 이미 엄청 늙은 교단이에요. 젊은 청년과 어린이들을 찾아보기 힘들죠. 2022년 교인 통계를 보니 어린이가 8%, 청소년이 5%, 18세부터 34세까지가 9%. 젊은이들을 딸딸 긁어 다 합해도 22%밖에 되지 않아요. 뭐라도 하지 않으면 이미 문 닫고 있는 교회인 성공회죠. 한국 개신교라고 많이 다를까요?

교회가 진짜 찐으로 아이들과 양육자를 생각하고 기획하면 이런 데이트나잇 같은 기획도 할 수 있는 거겠죠? 공간과 인력, 예산이 아직 있으니까 가능한 일이기도 하지만 이건 그 이전에 상상력의 영역이라 생각합니다. 

 

만일 우리 교회 학교와 성경 교육 과정이 사도 유니아, 동역자 브리스길라, 설교자 빙엔의 힐데가르트 같은 여성들을 올바로 반영한다면 어떻게 될까? 만일 바울이 편지를 쓰고 보내는 내내 뵈뵈 집사에게 편지를 맡겼듯이 우리도 이 같은 방식으로 여성의 리더십을 인정한다면 어떻게 될까?

<처치 걸> (베스 앨리슨 바 지음, 이민희 옮김) 중에서

 

이 책 <처치 걸>은 청어람에서 만난 이민희 목사님과 함께 읽었어요. 전 저 질문에 답하는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이안이와 엄마, 아빠가 편하게 예배 드리고 신앙 안에 자라는 공간이 됩니다. 교회에 엄마 예배에 집중하라고 이안이 전담 보육해주는 선생님 두명이 계시죠. 이 교회는 6개월부터 3세까지는 전문가가 돌보는 돌봄공간이 있거든요. 3세 이후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설교시간에 교육 프로그램을 하고요. 

주임사제, 보좌사제, 신학생, 보혈조력 등등 예배 인도자 대부분이 여성이었던 사순 첫 주일 예배의 기록을 제가 남겨놨더라고요? 이 어린이 공간을 보시면 힐데가르트를 소개하는 책, 성 프란시스와 하느님을 예배하는 동물들, 하느님이 어린 여자 아이라면... 같은 동화책이 가득 꽂혀져 있습니다.

“서로 배우고 함께 자라는” 그 공간을 만들어 가는 청어람이라면 앞으로도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나갈것이라 미씁니다. 아멘. (아멘!)

유: 마지막 질문입니다. 최근에 읽은 책 중 특별히 추천하고 싶은 책 세 권만 꼽아주세요. (이유도 함께요!)  

윤: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라면 저 위에 내 친구…(박현철 대표님? 우리 친구 맞죠? 일단 페친이니까 친구해요. )의 친구 레이첼의 마지막 책을 추천합니다. 레이첼 처럼 나의 신앙 여정을 돌아보는 일을 하는 모임이 있다던데… 거기 함께 하시면 더 좋겠네요?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그렇겠지만 저는 주로 신앙과 기독교 관련 책 추천을 청어람에서 받습니다. 특히 요새 발행하는 틈이 참 좋더라고요? 그건 다 읽으셨을 테니까, 아래 책 세 권은 청어람이 아닌 다른 곳에서 추천 받아 읽기 시작한 책들을 꼽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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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제가 힘들 때, 내 주변의 폭력이 초미세먼지처럼 날 둘러쌓을 때, 그 모든 때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을 꼭꼭 씹어 먹도록 해준 시(어느 늦은 저녁 나는)가 가장 먼저 있는 시집입니다. “파란 돌”이라는 시도 참 좋아합니다. 특히 육아하면서 울다가 시 “괜찮아”에 같이 흐느끼기도 했었습니다.

 

괜찮아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 버릴까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서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괜찮아 / 한강

 

이동진의 빨간책방 이라는 팟캐스트에서 추천 받아 읽기 시작했어요. 노벨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한강 작가야 말로 이번 해에 원어로(!) 읽어 줘야죠. 

 

최진영. 구의 증명

 

성서는 언제 쓰였지? 적어도 이천 년은 넘지 않았나? 어떤 사람은 이천 년 전에 써진 글을 읽으며 감동하고 위로받고 황홀해하고 미친다. 그리고 믿는다. 섹스 없이 아이를 낳았고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이야기를. 그건 사십 일 동안 비가 내렸다거나 바다가 갈라졌다는 것과 차원이 다른 사건인데…… 터무니없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때 믿음은 아주 유용하다. 말도 안 돼,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일에야 믿음이란 단어를 갖다붙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일단 믿으라. 그러면 말이 된다.
내겐 부활과 동정녀의 잉태가 필요하다. 윤리나 과학이 끼어들 여지없는 기적이 필요하다. 천 년 후가 필요하다. 종말 혹은 영생이 필요하다. 미친 자아가 필요하다. 인간이 아닌 상태라도 좋으니, 당신이 필요하다.
믿음이 필요하다.

<구의 증명> (최진영 지음) 중에서

 

당신이 필요하다. 믿음이 필요하다. 최진영의 이 책은 11월 뉴욕  한국어 북클럽(NYPL_뉴욕 공공도서관) 함께 읽는 책으로 선정되었어요. 제가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더라고요. “난 이 책을 이 노래와 내 자궁안의 엘리와 부활과 잉태와 기적과, 영생을 믿는 미친 자아와, 당신과 함께 읽는다.”

 

최지은. 그렇게 나는 다시 삶을 선택했다

저는 고품격 한국어 팟캐스트 <여자둘이토크하고있습니다> 여둘톡을 챙겨듣는 톡토로입니다. 여둘톡 에피소드 128화 <올해의 여성들> 여둘애드에 소개되어서 읽기 시작했어요. 제 전자책에 그어진 밑줄이 정말 많은데 그중 하나를 소개하면서 제가 페이스북에 2월말에 이런 글을 남겼더라고요. 

 

"미래를 다 빼앗기고 나서야, 현재를 살 수 있게 되었다. 4기 투병을 하던 그 6개월 동안, 그때까지 살아왔던 긴 세월보다, 훨씬 더 의미 있는 순간들을 만들어냈다. 현재를 산다는 것은 일종의 초능력이다. 하지만 재능이라기보다는 근육이다. 쓰면 쓸수록 노련해지는 근육이다."

며칠전 폴이랑 둘이서만 저녁을 먹으며 현재를 살아내는 근육을 훈련했다. 육아하면서 쉽게 가질 수 없는 둘만의 데이트였다. 아이들을 봐주는 엄마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최지은 작가, 암환자의 투병기를 읽으면서 암환자였던 엄마와 이제까지 하기 힘들었던 엄마 본인의 암투병 이야기를 아주 조금이나마 들을 수 있었다. 앞으로도 현재를 찐하게 사는 근육을 훈련하며 살아 내고자 한다. 생각보다 감각에 더 집중하면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내 앞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이상입니다. :)


지난 호에서는 새로운 대표직에 적응을 하지 못한 박현철 요원의 휴재 글을 올렸었는데요. 답장이 왔습니다.

  • 박현철 대표님 응원합니다! 매번 보내 주시는 "틈"은 꼭꼭 챙겨 읽고 싶지만, 번아웃 되지 마시고 이번 처럼 가끔 쉬어 가셔도 괜찮습니다. 짐 나눠 질 사람들이 옆에 더 많이 생기도록 기도하겠습니다.  → 응원에 감사드립니다.

다음 호에는 조금 더 적응한 박현철 요원의 책 소개가 촘촘하게 이어집니다.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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