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틈의 신간 모니터링 요원 박현철입니다. 날씨가 좀 오락가락 합니다만, 마음만은 환한 봄날 만끽하고 계신가요? 제가 새로운 보직(?)을 좀 떠맡으면서 지난달 신간 모니터링을 한달 건너뛰고 말았습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리고요, 그래서 이번달에는 서운하지 않을만큼 빡빡한 책들 소개드립니다. 자, 책 소개가 많으니 인사는 얼른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이 책 한번 잡솨봐 QNA
A: 교회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커다란 숲에 들어서는 일과 같습니다. 초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2000년 이상이 되는 교회의 역사는 사건과 인물, 사상이라는 수많은 나무들로 빼곡히 들어차 있지요. 신앙생활을 꽤 하고 성경도 제법 읽었다 하더라도, 이 숲의 전모를 파악하는 일은 퍽 막막한 일입니다. 교회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커다란 숲 밖에서 전체적인 지형과 모양을 살필 뿐 아니라 숲 안으로 들어가 각 나무들의 식생을 살피고 분류하며 숲이 지나온 흔적들, 숲에 쌓인 세월의 흔적들을 펴내 보는 것과 비슷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숲과 나무를 한눈에 살피는 교회사 완전정복’ 같은 건 불가능하고요, 먼저 숲 전체를 조망하는데서부터 시작해서 숲 안으로 들어가 나무 한그루 한그루를 세심하게 살펴야 합니다. ‘읽는 신학교’를 기획하며 염두에 둔 단계를 중심으로 읽는 신학교에서 읽을 책들과 후보가 되었던 책들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기독교의 역사에 대한 책들을 한번 소개해보겠습니다.
입문 - 일단 크게 조망해봅시다
물론 기독교 역사 전체를 다루며 숲과 나무를 골고루 살피는, 소위 ‘통사’라고 부르는 책들을 읽는 것이 정석입니다. 실제로 교회사 입문수업의 교과서는 대부분 통사입니다. 그러나 통사는 분량이 워낙에 방대하기 때문에 숲 전체를 조망하기 전에 회의감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입문자를 위해서는 일단 조금은 가볍게 전체 그림을 살피고 연대, 사람, 사건 등에 친숙해지도록 돕는 책이 좋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역사가들은 주로 중요한 사건들만 간단히 서술한다든지, 주제별로 요약해서 서술하는 방식을 사용하죠.
미국의 복음주의 역사학자 마크 놀의 <터닝 포인트>는 중요한 사건만 서술하는 책입니다. 이 책은 기독교 역사에서 전환점(turning point)을 이룬 12가지 장면을 골라 그 내용과 의미를 풀어냅니다. 물론 12개의 전환점으로 기독교 역사를 단순화하는 것은 공백과 왜곡을 일으킬 위험이 있기는 합니다만 마크 놀은 그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중하게, 그러면서도 뚜렷한 초점을 갖고 12가지 전환점을 선정했습니다. 또한 12가지 전환점마다 그 전환점에 이르기까지의 맥락과 그 전환점이 가져온 변화까지 폭넓게 서술하는 방식으로 단순히 사건에만 집중하기보다는 큰 흐름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특히 복음주의적 관점에서 교회 역사의 흐름을 살펴보기 원하는 분들께는 이보다 나은 입문서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물론 그것이 이 책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터닝포인트 같은 쉬운 입문서 포지션에서 더욱 간결한 책은 배덕만 교수님의 <교회사의 숲>입니다. 이 책은 사건 중심보다는 ‘교회’, ‘성경’, ‘선교’, ‘예배’등 주제별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구성입니다. 저자가 수업과 방송에서 오랫동안 강의해 온 내용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대중적 눈높이에 잘 맞추고 있고, 한국인 교회사학자의 책이기 때문에 세계교회사와 더불어 한국교회사까지 다루고 있다는 점도 이 책의 장점입니다. 일단 교회사에 입문해보고 싶으신 분들은 이 두 권을 한번 고려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터닝 포인트, 마크 A. 놀 지음, 이석우/강효식 옮김, 도서출판CUP(씨유피) 펴냄, 15,000원
교회사의 숲, 배덕만 지음, 대장간 펴냄, 16,000원
발전 - 디테일을 살려 그림을 그립시다
어느 정도 숲의 모양을 잡고 용어와 시간의 흐름에 익숙해졌다면 본격적으로 두꺼운 통사에 도전해 숲의 디테일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사실은 여기서부터가 본격적인 역사 공부라고 할 수 있겠고, 여기서 소개하는 책들이 주로 신학교의 교과서로 사용되는 책들입니다. 워낙 많은 책들이 있지만 다음과 같은 책들이 널리 읽히고 역사적, 신학적 관점에서 특징이 뚜렷한 책으로 꼽힙니다.
제가 알기로 신학교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책은 후스토 곤잘레스의 책입니다. 초대, 중세, 종교개혁, 현대교회사로 나누어 출간되어 있으며, 예루살렘 교회의 시작에서부터 20세기 말까지 2000년 교회사 전체를 빼놓지 않고 포괄적으로 설명합니다.(4권이나 되는데 빠지는 게 있으면 서운하겠지요..?) 모든 시대를 포괄적으로 다룰 뿐 아니라, 많은 교회사 책들이 서방 중심의 교회사를 다루는데 비해 동방 교회의 역사도 빠뜨리지 않고, 현대에 들어서는 남미의 부흥까지 비교적 세계 기독교 전체를 균형 있게 다룹니다. 내용이 방대하지만 친절하게 서술되어 읽기 어렵지 않습니다. 곤잘레스는 이 책과 함께 별도의 <기독교 사상사>(3권)도 썼습니다. 사실상 곤잘레스 책만 다 읽어도 교회사는 ‘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하지만 다 읽을 수 있을까…?)
후스토 곤잘레스의 책이 역사학자의 관점에서 사건, 인물, 이야기 중심으로 풀어가는 책이라면, 조금 더 신학적 관점을 강하게 반영하여 쓴 책으로는 한스 큉의 <그리스도교>를 꼽을 수 있습니다.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가톨릭 신학자 중 한 명인 한스 큉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 책은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역사적 탐구를 통해 규명하고, 그 미래를 전망하려는 야심 찬 시도입니다. 큉은 기독교 역사를 5가지 패러다임 (유대교적·헬레니즘적·중세적·근대적·현대적)으로 구분하고 패러다임의 단절과 연속을 살펴보는 식으로 역사를 서술하는데, 이 작업은 단순한 역사 서술을 넘어, 기독교의 역사적, 본질적 정체성을 찾으려는 조직 신학자의 시도라는 점에서 돋보입니다. 또한 큉은 가톨릭 사제이지만 교황제에 매우 비판적이고 교회와의 충돌로 인해 교수 자격이 정지될 정도로 뚜렷한 주관을 가진 학자인데요, 교회 전통에 대한 깊은 이해와 동시에 날카로운 비판적 시각, 그리고 타 종교 및 세속 세계와의 대화를 중시하는 큉의 정신은 이 책에서도 유감없이 돋보입니다.
초대, 중세, 종교개혁, 현대 교회사 총 4권, 후스토 L. 곤잘레스 지음, 엄성옥 옮김, 은성 펴냄
그리스도교, 한스 큉 지음, 이종한 옮김, 분도출판사 펴냄, 38,000원
앞서 두 권의 책이 역사신학자, 조직신학자의 눈으로 쓴 기독교 역사라면, 일반 역사학자의 눈으로 쓴 기독교 역사책은 없을까요? 영국의 저명한 역사가이자 저널리스트인 폴 존슨의 <기독교의 역사>는 1976년 초반이 출간되고 몇 번의 업데이트를 거치는 동안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BBC의 다큐로도 제작이 된 작품입니다.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기독교사의 빛과 그림자를 균형있게 담아냈을 뿐 아니라 객관적인 시선에서 비신자와 신자 모두를 위한 교회사 책으로 권할만 합니다. 폴 존슨은 이 책과 짝으로 <유대인의 역사>라는 책도 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비슷하게 영국인 디아메이드 맥클로흐의 <3천 년 기독교 역사>(전 3권)도 교회 내부의 관점보다는 사회사, 문화사적 접근을 통해 교회사를 다룬 책으로 손꼽을만합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교회사를 단순히 예루살렘교회부터 2천 년으로 세지 않고, 1천 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 유대교로부터 큰 맥락에서 살피고 있다는 점과, 동방교회와 비서구 교회를 두루 다루며 정통과 이단, 승자와 패자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서술한다는 점이 장점입니다. 다만, 이 책은 한국어 번역에 ‘적잖은 문제’가 있어 번역의 오류를 감수하고 읽을 수 있는 분들만 신중하게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기독교의 역사, 폴 존슨 지음, 김주한 옮김, 포이에마 펴냄, 38,000원, 전자책 있음
3천년 기독교 역사 1,2,3, 디아메이드 맥클로흐 지음, 박창훈/배덕만/윤영훈 옮김, CLC(기독교문서선교회) 펴냄
심화 - 섬세하게 나무들을 살핍시다
입문서든 통사든 어느 정도 기독교 역사의 사실관계가 파악되고 나면 세부적인 시대별로 들어가 섬세하게 나무를 살필 수 있습니다. 일반 역사에도 학자들마다 전공 시대가 있듯이 기독교 역사에서도 학자별로 전공시대 혹은 주제들이 있지요. ‘초대 교회사’, ‘중세 교회사’처럼 시대별로 살필 수도 있고, ‘교회론의 변천사’, ‘선교의 역사’등 주제별로 살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영역이 구체적으로 궁금하신 분들도 많겠지만 그 책들은 관심사별로 각자 찾아보시는 것으로 하고, 여기서는 기독교와 일반 역사의 상호 관계를 중심에 두고 살펴보는 책을 몇 권 추천해 봅니다. 기독교 역사는 단순히 교회 내부의 사건이나 교리의 발전과정만이 아니라 외부 세계, 그러니까 일반 역사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며 세계를 형성하고 자신을 형성해 왔다는 점에 주목한 책들을 마지막으로 몇 권 더 추천해보려 합니다.
첫 번째는 톰 홀랜드의 <도미니언>입니다. 이 책은 기독교의 역사 혹은 교회의 역사라기보다는 서양 문명사에 가까운 책입니다. 고전고대를 연구하며 대중적인 역사서를 많이 톰 홀랜드가 쓴 대중 교양서로 분류되지요. 실제로 일반 출판사에서 번역되었습니다. 이 책이 재미있고 센세이셔널한 것은 저자가 기독교인이 아니라 무신론자에 가까운 불가지론자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2천 년간 서구 문명의 가치관, 윤리, 정치, 사회구조, 심지어 세속주의 사상 자체까지 모든 것이 기독교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중세까지가 기독교 세계고, 근대 세계부터는 기독교로부터 멀어졌다는 통념을 거부하고 현대에 이르기까지도 서구세계는 기독교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은 기독교 입장에서도 생각할 거리가 많습니다. 저자의 치밀한 서술과 함께 아주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좀 더 신학적이고 기독교 중심의 책으로는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기독교, 그 위험한 사상의 역사>도 매우 흥미로운 책입니다. 맥그래스는 종교개혁사를 전공한 역사신학자다운 면모를 발휘해 개신교, 그러니까 종교개혁의 사상사적 영향력이 교회와 사회에 얼마나 ‘위험한’ 것이었는지를 추적합니다. ‘성경에 절대적 권위를 두면서도, 그 해석에 대한 권한은 모두에게 돌리는’ 종교개혁 사상이 얼마나 혁명적이었는지, 그 혁명의 결과 개신교는 어떤 종교가 되었는지를 흥미롭게 쓰고 있습니다. 단지 개신교가 제일 매력적이며 혁명적이라고 서술할 뿐 아니라 종교개혁 사상(성서해석의 다양성)의 명암까지 흥미롭게 살핍니다. (흥미롭다는 표현을 남발하고 있지만) 정말 위험하면서도 매우 흥미로운 책입니다.
마지막으로 데이비드 벤틀리 하트의 <그리스도교, 역사와 만나다>도 꼭 언급하고 싶습니다. 현대 신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선 굵은 신학자로 자리 잡은 벤틀리 하트는 동방 정교회 신학과 철학, 역사를 넘나들면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데요, 이 책은 ‘유대교의 한 분파에서 세계 종교가 되기까지 2,000년의 이야기’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기독교 역사의 전반을 다룹니다. 50개의 장에 50가지 주요 장면들을 짤막짤막하게 삽화처럼 그려가는 있는 책입니다. 처음 소개한 터닝 포인트와 어떤 면에서는 닮아있지만 이 책은 50개의 이야기를 다룸으로서 훨씬 더 폭넓고 다양한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과 동시에 저자가 정교회 신학자라서 동방교회 이야기를 다른 책들보다 훨씬 비중 있게 다룬다는 점에서 여타의 책들과 선명한 차별점을 갖습니다.
같은 정교회 신학자인 야로슬라브 펠리칸이 쓴 <예수, 역사와 만나다>도 ‘예수’의 수용사를 다룬 책으로 챙겨 읽어볼 만합니다.
도미니언, 톰 홀랜드 지음, 이종인 옮김, 책과함께 펴냄, 43,000원
기독교 그 위험한 사상의 역사, 알리스터 맥그래스 지음, 박규태 옮김, 국제제자훈련원(DMI.디엠출판유통) 펴냄, 40,000원
그리스도교, 역사와 만나다, 데이비드 벤틀리 하트 지음, 양세규/윤혜림 옮김, 비아 펴냄, 24,000원
추신 _ 한국교회사, 그리고 여성사
더 많은 책들을 언급하고 싶지만, 이번에 소개한 책만 읽기에도 한세월일 테고, 소개한 책을 다 읽으면 이후 이어지는 독서 목록은 꼬리를 물고 등장할 것이기에 더 이상의 책을 언급하는 것은 과유불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노파심에 몇 권의 책을 더 추천합니다. 교회의 역사를 공부하신다면, 두 가지 종류의 책은 꼭 더 찾아 읽어봐주세요.
한국 교회사 책 소개가 빠졌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따로 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지만, 일단 이덕주, 옥성득 교수님의 책들은 다 신뢰하고 보시라고 권합니다. 교과서 중심으로 충실하게 공부하실 분들은 한국 기독교 역사 연구회에서 3권으로 완간한 <한국 기독교의 역사>를 추천합니다.
그리고 여성사도 빠졌습니다. 세부 역사들 중에서 굳이 여성사를 언급하는 이유는 위의 책이 전부 남성 저자의 책이고, 남성 중심의 역사서술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온전한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여성사'를 따로 공부해야 합니다. 지면으로나마 '형식적인 소개'도 하지 않으면 심각한 균형 위반이라는 경각심이 들었습니다. 다만 저도 여성사에 대한 책은 잘 모르고, 많이 읽지 못했다는 점을 고백하며, 하희정 교수님의 <역사에서 사라진 그녀들>이 대중서로 읽기 편하고, 백소영 교수님의 <기독교 허 스토리>, 한스 큉의 <그리스도교 여성사>가 유용한 책으로 떠오른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한국 기독교의 역사 1,2,3, 한국기독교역사학회 지음,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펴냄
역사에서 사라진 그녀들 하희정 지음, 선율 펴냄, 7,000원, 전자책 있음
🖊️박현철 | <읽는신학교> 기획처장
2-4월 신간 한번 잡솨봐
교회의 시간
이종태 지음, 복있는사람 펴냄, 16,000원, 전자책 있음
개인적으로도 청어람에서도 교회력을 의식하고 호흡을 맞추며 지낸 지 여러 해가 되었다. 해가 바뀔 때마다 달력을 갈아끼며 확인하는 교회력의 날짜와 절기들은 이제 별로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막상 매일의 일상을 살며 매주 돌아오는 주일마다 마주하는 절기, 시간의 흐름은 늘 새롭다. 익숙한 듯 조금씩 달라지는 시간의 흐름, 그 속에서 발견하는 예수의 걸음걸음은 어느덧 내 신앙을 형성하는 기본 리듬이 되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시간의 리듬에 맞춰 살기를 바라기에 교회력이나 절기에 대한 책은 항상 반갑다. <교회의 시간>은 이종태 교수가 글과 말로 행한 교회력 절기 설교를 모은 책이다. 교회가 살고 있는 시간, 교회가 따라 살아야 할 시간의 흐름을 이종태 교수 특유의 문체와 리듬으로 생기있게 풀어낸다. 마치 저자가 앞에서 직접 설교를 하는 것처럼 생생하지만, 전형적인 설교문 형태가 아니라 짧은 호흡의 에세이같이 편집해서 아주 신선하게 읽힌다. 개신교 교회력 설교에서 자주 나오지 않는 만성절이나 승천절에 대한 설교가 실린 점도 인상적이다. 디자인이나 만듬새도 아주 깔끔하니 흠잡을 데 없다. 다만 두 가지 질문은 들었는데, 첫째 교회력은 일반적으로 대림부터 시작하는데, 이 책은 왜 사순부터 시작했을까? 둘째 글로 편집해 옮겼더라도 실제 ‘설교집’이라면 설교를 행한 곳과 시간은 기록해 주는 게 좋지 않았을까? 내용과는 크게 상관없을 수 있지만 어쩌면 중요할 수도 있는 질문이다.
신약 수업
김호경 지음, 뜰힘 펴냄, 27,000원
<예수가 하려던 말들>, <예수의 식탁 이야기> 같은 얇지만 묵직한 저서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김호경 교수가 신약 개론을 책으로 펴냈다. 저자는 신약 개론서를 쓰기를 오랫동안 희망해왔다고 하는데, 교수로서 은퇴 이후 비로소 개론서를 썼으니 이 책이 얼마나 무르익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신약 개론’이라는 게 뭔지 모르는 분들은 별 느낌이 없을지 모르겠지만, ‘신약 개론’을 아는 이들에게 이 책은 외형부터가 ‘신약 개론’처럼 생기지 않았다. 책을 펴보면 목차도, 본문도 신약 개론 같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좋은 개론서의 조건은 딱딱성, 두껍성, 투박성이 아니라 기초성, 포괄성, 체계성, 접근성 같은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 책은 여타의 개론서보다 뛰어나면 뛰어났지 결코 뒤질 것이 없는 훌륭한 개론서다. 성경 본문을 이해하기 위한 사전 지식과 해석의 방법론을 충분히 설명하고, 신약 27권을 책별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독자들에게 ‘책꽂이나 책상 위에 놓지 말고, 거실 바닥이나 식탁에 던져 놓고 언제든 편한 대로 읽으라.’라거나, ‘반드시 본문과 함께 읽어라.’’는 당부는 저자의 진심이 가득 느껴진다. 아름다운 표지가 괜한 겉멋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책이다.
나는 기독 청년, 교회는 안 가요
서도원 지음, 도지개 기획, 동연출판사 펴냄, 15,000원
얼마 전 20-40대에서는 ‘교회에 가지 않는 기독교인’(가나안 성도)의 비율이 40%에 달한다는 통계를 보았다. 어쩌면 ‘교회에 가는 기독교인’이 더 희귀한 시대가 곧 올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가나안 성도임을 자처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더라도 ‘가나안 성도’라는 말 자체를 쓰기가 어색하다. 가나안 성도가 된 이유가 무엇인지, 신앙생활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돌아갈 생각은 없는지 등을 묻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교회에 가는’ 것의 당위가 사라진 시대를 살고 있다. 서도원의 책 <나는 기독 청년, 교회는 안 가요>는 2021년 제출된 저자의 학위논문을 바탕으로 엮은 단행본이다. 해가 다르게 변해가는 상황에서 조금 늦은 감도 있지만, 청년 가나안 성도들에게 여전히 종교 정체성과 종교 문화적 실천이 유의미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이들을 단순히 교회 부적응자나 세속화된 탕자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책의 결론은 여전히 의미심장하다.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가나안 성도, 탈교회 등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도록 책이 출간되어 감사한 마음이다. 저자는 가나안 성도들에게 ‘왜 교회 밖으로 나갔는지’ 물을 것이 아니라 교회를 나갔음에도 ‘왜 아직 기독교인인지’를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진심으로 동감하며 세 번 아멘 한다.
아라비아로 간 바울
벤 위더링턴 3세, 제이슨 A. 마이어스 지음, 오현미 옮김, 북오븐 펴냄, 17,500원, 전자책 있음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까지 이야기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꽤 많은 사람들이 ‘큰 자’를 뜻하던 사울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작은 자’를 뜻하는 바울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했다는 전설-이는 사실이 아니다. 단지 히브리식 이름에서 헬라식 이름으로 바꾼 것 뿐-을 떠올릴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보다 우리가 더 중요하게 기억하고 알아야 할 것은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본격적으로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을 받기 전까지 아라비아에서 보낸 14년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라비아로 간 바울>은 이 ‘침묵의 시기’를 학문적 연구와 모험적 상상력으로 메꿔 이야기로 만든 역사 소설(Historical Fiction)이다. 역사소설의 서사에 학문적 해설을 곁들여 위대한 사도가 되기 전 바울의 생각과 신앙은 어떻게 형성되었을지 궁금할 만한 질문에 과감하게 답변하고, 한 인간으로서의 바울—두려움과 혼란, 그리고 열망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생생히 되살려낸다. 교리를 넘어 인물 그 자체로 바울을 만나고 싶은 독자나, 성경의 행간에 담긴 고대 세계의 풍경이 궁금한 독자들에게 이 책은 즐겁고 유용한 독서 경험을 선물할 것이다. 한가지 구매 팁은 이 책에는 역사적 배경과 사실을 설명하는 자료와 사진이 많은데, 종이책에는 흑백이지만 전자책에는 컬러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예수의 가난한 사람들
하워드 서먼 지음, 홍종락 옮김, 복있는사람 펴냄, 13,000원
‘고전’이라 불리는 오래된 책들이 번역되어 나오면, "지금 이 책을 읽어야 할까?" 하는 의문이 들곤 한다. 하지만 책을 집어 들고 읽기 시작하면, "왜 지금이었는지. 왜 지금이어야 했는지” 서서히 알게 된다. 하워드 서먼의 <예수의 가난한 사람들>도 그랬다. 1949년에 출간된 이 책은 해방신학과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지만, 그보다 훨씬 이전에 억압받는 자들의 목소리로 복음을 들려준다. 복잡한 사회 구조 속에서 예수가 누구의 편에 서 있었는지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제시하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책의 제목 Jesus and Disinherited (예수와 상속받지 못한 자들)을 예수의 가난한 사람들로 옮긴 것에 대해 처음엔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그 아쉬움은 사라지고 말았다. 번역을 비롯한 책의 완성도는 훌륭했고, 나는 서문의 첫 문장 "막다른 벽에 몰린 사람들에게 예수의 종교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것은 내게 늘 결정적인 문제였다"부터 마지막 문장 "예수여, 고맙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까지 빨려 들어가듯 읽고 마음에 새겼다.
기독교 아나키즘
김대식 지음, 대장간 펴냄, 20,000원, 전자책 있음
아나키즘은 ‘무정부주의’로 흔히 번역되고, 부정적 접두어(ana)가 붙은 만큼 기독교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상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아나키즘은 권위와 지배 구조를 비판할 뿐 아니라 공동체적 이상과 대안 사회 구축에 대한 열망이 강한 만큼 기독교, 특히 급진주의적 프로테스탄트(재세례파 등)와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 애초에 성경적으로 따져보더라도 구약에도 왕정에 대한 거부감이 일정 부분 깔려 있고, 신약에서도 예수는 이 땅의 모든 권력과 권세를 상대화시키는 존재였기에 기독교가 아나키즘의 거리가 멀지 않음을, 아니 기독교가 일정 부분 아나키즘에 영향을 주었으리라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이처럼 기독교와 아나키즘 관련 논의는 오래된 이야기지만 애석하게도 언제나 인기가 없다. 기독교와 아나키즘이라면 겨우 톨스토이 정도만 소개되던 형편이었는데 김대식 교수의 <기독교 아나키즘>은 이런 아쉬움을 해소할 반가운 책이다. 기독교 사상과 아나키즘의 친연성을 다양한 인물과 사례를 통해 소개하는데, 때로는 전통적이면서도 때로는 과감한 전유가 인상적이다. 신선하고 드문 책, 잘못(?) 걸리면 신앙과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위험한 책이다. 더불어 거의 같은 시기에 출간된 박홍규 교수의 <내 친구 예수는 아나키스트>(비공)도 함께 읽어볼 만하다.
🖊️ 박현철 | 종교/역학 신간 모니터요원
지난 호에서 지구에 유일한 '맥설'가족의 맥설윤정 님과의 인터뷰를 소개해 드렸었는데요. 답장이 왔습니다.
- 힐데가르트와 프란치스코의 동화책 소개부탁드립니다^^ → 윤정 님의 인터뷰 중에 어린이 공간에 꽂혀있던 책들을 말하시는 것 같아요. 꼼꼼히 읽어보시고 이런 제안을 주시다니. 언젠가 소개드릴만한 기획을 떠올려보겠습니다.
한 회 휴재 후 촘촘하게 돌아온 이번 호 ‘틈’은 어떠셨나요? 여러분의 솔직한 소감이나 고민, 질문 등을 답장으로 나누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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